▲ 론세스바예스 이틑날 론세스바예스에서 출발하기 전에 찍은 사진 ⓒ 이유민
여행을 하면서 가장 설레는 일은 내가 만나는 뜻밖의 일들에 있다. 나는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부른다. 그 뜻밖의 일들이 나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더 너그러운 마음과 다름이라는 것을 좀 더 쉽게 수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며 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고 나의 신념들을 세워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점점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름다워지길 포기하고 떠난 여행에서 되려 나는 아름다움을 찾은 것이다. 나는 항상 배낭을 메고 여행길에 오른다. 옷은 내일 당장 버려도 되는 옷으로, 그리고 지금 당장 잃어버려도 아무 지장이 없는 것들로만 가방을 꾸린다.
평발인 나는 프랑스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800km를 걸었다. 왼발은 족저근막염 오른발은 무지외반증 때문에 힘들었고, 온 발이 물집안의 물집으로 피멍이 들고 발톱이 빠져나가며 무릎통증으로 약국에서 제일 싼 무릎보호대 하나로 10킬로가 넘은 가방을 지탱해 걸어나갔다.
나는 별명이 달팽이일 정도로 순례자들 가운데서 가장 걸음이 느렸다. 내가 이렇게 못걷고 체력이 안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 곳에 가서야 깨달은 것이다. 결벽증과 강박증이 심한 나는 남의 집에 가는 것도 누가 나의 집에 오는 것도 누가 내 물건을 보거나 만지는 것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핸드폰, 리모컨, 마우스 그리고 문 손잡이까지 맨손으로 절대로 잡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균을 무서워해 습한 곳은 절대로 가지 않고 한겨울에도 추위를 무릅 쓰고 항상 집안의 공기를 환기시키지 않으면 숨을 못쉬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길거리에서 손도 씻지 않은 채 철퍼덕 앉아 빵을 뜯어먹고, 다른 사람들과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유하며, 같이 자고 생활하는 것까지 나 자신을 많이 변화시켜 나갔다. 여행하기에 최악의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행복하게 이겨나갔다.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나의 발자국을 찍겠다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 때문에 나는 행복했다. 예쁘게 안보여도 좋고, 좋은 가방 없어도 좋고, 화장 못하고 못 씻어도 아무 상관없다. 내 가방에 침낭과 먹을 것만 있으면 나는 이 평평하기 짝이 없는 이 두 발로 세상을 기쁘게 걸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힘들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나 자신이 원하는 것과 나만의 가치를 세우는 데까지 그 길을 걷는 게 힘들었다. 왜냐하면 주위의 시선들 때문이었다. 나는 항상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엄마의 자랑이 될 만한 것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 엄마가 나에게 그런 것을 원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고 그것 때문에 내가 가야할 길을 볼 수가 없었다. 항상 비교를 당하고 뭔가를 이루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받다가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고.. 나는 여기서 그냥 건강하고 행복하면 되는 거라고. 뭔가를 할 필요도 보여주기 위해 애써야 할 필요도 없다고. 그런건 그냥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내가 지금 뭘 하는게 가장 행복한지 그것만 생각하자고...
세상에 이런 부담감을 많이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네 인생을 살라고.. 남을 위해 남의 꿈을 위해 살지 말라고. 너는 그 누구하고도 비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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