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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이런 공부를 하렴

우리는 스스로를 분만하는 예술 작품이자, 삶의 예술가란다

등록|2017.04.28 17:55 수정|2017.04.28 17:55

▲ 필자의 7살 아들 ⓒ 김주희


아들아!

오늘은 봄볕이 화창한 날이구나. 네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엄마는 도서관에 다녀왔어. 주로 엄마 책을 빌리기 위한 걸음이지만, 너 또한 도서관과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네 책도 한 권씩은 꼭 빌려오곤 한다.

너에게 벌써 공부 이야기를 하는 건 엄마 욕심이겠지만, 네가 크거든 이 당부를 꼭 세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적는다. 엄마도 학창시절엔 재미도 없는 '공부'를 왜 꼭 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 외할아버지께서는 엄마를 야단치실 때 마다 "학교 공부만 공부가 아니야"라고 항상 말씀하시곤 했는데, 엄마는 그 말뜻을 성인이 되고나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은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이라는 책을 빌려왔어. 신영복 선생님은 1960년대 후반 억울하게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20년간 수감 생활을 하셨다. 그 시절엔 사회주의와 관련된 서적만 읽어도 '간첩'으로 몰릴 수 있는 암흑기였고, 신영복 선생님 또한 대학 강의를 하던 지식인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따지면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극악무도한 범죄자와 동급인 무기징역수가 되었단다. 한 사람의 인생이 국가의 폭력 앞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독재자의 폭력 앞에 '너무 간단하게' 무참히 붕괴될 수 있던 시절이었단다(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중요한거야).

죽음 외의 다른 미래는 꿈꿀 수도 없는 무기수임에도 불구하고, 신영복 선생님은 좌절하기 보다는 더욱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하셨다. 자신의 인생을 이지경으로 만든 세상에 분노하기 보다는, 감옥에서마저 '공부'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셨다. 그래서 탄생하게된 책이 세간에 가장 많이 알려진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이야. 엄마 또한 깊게 감명을 받았고 그 책을 읽은 후로 신영복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었지.

공부얘기를 하려했는데 서두가 너무 길어졌구나. <담론>의 일부를 적을게.

"공부는 한자로 '工夫'라고 씁니다. '工'은 천天과 지地를 연결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夫'는 천과 지를 연결하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공부란 천지를 사람이 연결하는 것입니다. 갑골문에서는 농기구를 가진 성인 남자로 그려져 있습니다. 인문학人文學의 문文은 문紋(실로 짜서 나타낸 무늬)과 같은 뜻입니다. 자연이라는 질료에 형상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이 한다는 뜻입니다. 농기구로 땅을 파헤쳐 농사를 짓는 일이 공부입니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세계는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고 나 또한 세계 속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입니다. 자연, 사회, 역사를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입니다.

옛날에는 공부를 구도求道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도에는 반드시 고행이 전제됩니다. 그 고행의 총화가 공부입니다. 공부는 고생 그 자체입니다. 고생하면 세상을 잘 알게 됩니다. 철도 듭니다. 이처럼 고행이 공부가 되기도 하고, 방황과 고뇌가 성찰과 각성이 되기도 합니다. 공부 아닌 것이 없고 공부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달팽이도 공부합니다. 지난 여름 폭풍 속에서 세찬 비바람 견디며 열심히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공부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입니다."

신영복 선생님 말씀처럼 공부는 '시험'이나 '지식습득'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야. 공부는 "자연이라는 질료에 형상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공부하면 이 말 뜻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거야. 질료는 쉽게 말해 재료 같은 거야. 도자기를 만들 때 '흙'이 필요한 것 처럼 '질료'가 이에 해당되고 '형상'이 완성된 도자기를 뜻하지. 도자기를 만드는 건 '사람'이고, 아무나 도자기를 만들 수 없듯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과 숙련도를 얻기 위한 '과정'이 '공부'에 해당되는 거야. 공부를 할 수록 더 멋진 '도자기'가 완성될 수 있겠지?

이 말을 다시 삶에 대입해본다면 "경험이라는 질료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삶의 형상이 달라진다"라고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공부'라고 표현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자기성찰'이 있을 때에만 올바르게 의미도 부여할 수 있겠지?

네가 살면서 겪게 될 무수한 체험들 속에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배움'을 얻게 된다면 훌륭한 '형상'으로 거듭 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배움을 통해 지혜를 얻는 과정'이 곧 '공부'란다. 그러니 삶을 네가 원하는 형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부가 꼭 필요하겠지? 질료만 있다고 저절로 형상이 만들어지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니체의 말처럼 우리는 스스로를 분만하는 예술작품이자, 삶의 예술가란다. '열공'해서 네 삶의 멋진 예술가가 되길 항상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네이버 블로그 <느리게 걷는 여자>에도 중복게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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