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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 하루라도 온 누리에 진정한 자비 광명이... 정유년 초파일의 산사

절경 속에 기도 영험 소문 따라, 삼성산 염불사를 찾다

등록|2017.05.04 09:04 수정|2017.05.04 09:04

안양 삼성산 염불사의 초파일정유년 초파일 염불사 풍경.연등탑이 이채롭다. 김영배 기자 ⓒ 김영배


음력 4월 8일. 일명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이다. 세계인이 추앙하는 4대 성인 석가모니의 탄신일이다. 철이 아름답고 화사로운 때라 더욱 사람들의 심신을 안온하고 청량하게 만든다. 매년 사찰의 연등 아래 모여 두 손을 모은 채 절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늘 경건한 가운데 편안해 보인다. 올해는 관악산에 연한 삼성산의 명찰 안양 석수동 '염불사'를 찾았다.

부처님은 BC 624년 4월 8일 해 뜰 녘에 북인도 카필라 왕국(네팔) 왕 슈도다나와 왕비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의 책력을 적용한다면 실제로는 음력 2월 8일이라고 한다. 두 달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탄일은 현재 3개로 나누어져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 불탄일은 음력 4월 8일로 정해져 내려와 1975년엔 공휴일로 지정됐다. 네팔 등지에서는 양력 5월 15일을 불탄일로 하고 있고, 유엔은 양력 5월 중 보름달이 뜬 날을 탄신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초파일은 불교 신자를 초월해 오랜 세월 동안 민족 고유의 명절이 됐다. 농군들은 일하지 않고 하루를 쉬었고, 관청, 민가, 저잣거리에도 등간을 세우고 밤에는 불을 밝혔다. 심지어 불교를 배척하는 유학을 익히는 서당의 학동들도 이 날은 떡과 음식을 장만해 훈장을 대접했다. 민속놀이도 생겨났다. 부수희라고 해서 물장고 또는 물박치기라고 한다. 물동이에 물을 담고, 그 위에 빗자루로 두드리면서 소리를 내는 놀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 불교가 도입된 시기는 삼국시대 고구려 때다. 소수림왕 2년에 중국 전진의 승려 순도가 불상과 불경을 전한 것에서 비롯된다. 백제는 12년 뒤에 침류왕 원년인 384년에 동진의 마라나타가 전했다. 신라는 수난을 겪은 끝에 법흥왕 14년인 527년에 이차돈의 순교로 공인됐다. 왕실 중심으로 도입됐기에 호국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됐다. 많은 국난을 겪으면서 오늘날까지 이 전통은 이어져 호국불교의 정신은 오늘도 살아 있다.

염불사의 위용은 대단하다. 평소에도 많은 신자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초파일의 인파는 길이길이 이어지는 장사진이다. 명산의 정상부 가파른 언덕 지대를 계단형으로 깎아서 만든 곳이지만 대웅전, 염불전, 칠성각, 범종각, 지장전, 삼신당 등등 사우도 짱짱하다. 절벽 상층부의 칠성당에서 내려다보는 산세의 절경을 접하다 보면 절로 도가 트일 것 같다.

염불암이 위치한 이 삼성산에는 원래 두 가지 유래가 있다. 하나는 원효, 의상, 윤필 등 신라의 세 성인이 이 산에 들어와서 절을 지은 데 기인한다고 한다. 원효대사는 삼막사, 의상대사는 연주암을, 윤필거사는 염불암을 각각 짓고 수도했다는 설이 전하고 있다. 또 하나는 고려 말 삼막사에 지공, 나옹, 무학이 머물렀던 까닭에 삼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안양 삼성산 염불사 미륵불정유년 파일에 찾은 염불사의 미래에 온다는 미륵불 얼굴이 자애롭다. 김영배 기자 ⓒ 김영배


기록에 의하면 염불암은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했다는 유래도 있다. 이때 이름은 안흥사로 곧 염불암의 시초로 전해진다. 조선 태종 7년에 안양 쪽에서 보면 백호에 해당하는 관악산의 산천기맥을 누르기 위해 왕명으로 사찰을 대중창했다.

이후 계속 중수해 조선 후기 철종 때에 이르러 도인 스님에 의해 칠성각을, 1992년 청봉 스님에 의해 요사채와 대웅전이 완공돼 그 위용을 갖추게 됐다. 대웅전 뒤편에 위치한 높이 8m의 미륵불은 1947년 성공 기석 화상이 주지로 부임 후 낡고 퇴락한 전각을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불사를 준비하던 중 꿈에 미륵보살이 나타나 마애불상을 새겨 널리 중생을 구제하라는 현몽을 받들어 1964년부터 5년의 불사 끝에 완공된 것으로 전해 온다.

사찰 선방 주변에 있는 조선 시대 부도 중 '마애부도' 2점은 매우 특이한 형태로 부도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알려져 있다. 경내에 있는 수령 600여 년의 보리수(도 지정 보호수 5-2)는 염불사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지금은 벼락 맞은 부분을 절단하고, 잔해를 살려내 성장시킴으써 신수목으로 보호하고 있다.

안양유원지를 통해 진입하는 주변도 깨끗하게 정비돼 불편이 없다. 조계사처럼 시가지에 있는 사찰도 있지만, 수도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산사야말로 사찰의 백미다. 아름다운 산세와 신록의 절경과 어우러진 청량한 염불사의 하루 속에 불자는 신심을, 일반은 심신을 수양한다.

메뚜기도 한철이란 말이 있지만, 연중의 하루인 초파일이라 주지 스님은 상면치 못했다. 부모님을 따라 유년시절부터 이 절을 찾고 있는 이옥연(55) 서울시 안전감시단 동작구 총무(순찰1조장)은 "염불사는 일찍이 영험 있는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절로서 인생사를 통해 부처님의 가호를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어수선한 선거판의 와중에 종교의 향기와 가치가 새롭게 와 닫는 하루다.

안양 삼성산 염불사 초파일 공양간정유년 초파일 염불사 공양간의 인파. 김영배 기자. ⓒ 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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