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들깨·괭이밥·까마중'은 얼마나 오래된 풀일까

[숲책 읽기] 김창기, 길지현 <한반도 외래식물>

등록|2017.05.12 11:13 수정|2017.05.12 11:13
남북녘을 아울러서 이 땅에 들어왔다고 보는 553가지 푸나무 가운데 14가지를 뺀 539가지를 다룬 <한반도 외래식물>(자연과생태 펴냄)이 있습니다. 아직 열네 가지는 '들어왔느냐 아니냐'를 놓고 이야기를 매듭짓지 못했다고 해요.

이 땅에 들어와서 들이나 숲에서 스스로 자라는 푸나무 539가지를 보면 매우 익숙한 푸나무가 있어요. 이제 막 이 땅에 들어온 푸나무가 있고요. '외래식물'은 '귀화·일시출현·침입' 세 가지로 가른다고 합니다.

한겨레가 아끼며 누릴 만큼 자리잡은 푸나무라면 '귀화'라 할 테고, 여러모로 이 땅에 안 맞는다거나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푸나무라면 '침입'이 될 테지요.

▲ 겉그림 ⓒ 자연과생태

[까마중] 전 세계에 분포하는 잡초다. 마에카와(1943)는 일본의 벼 재배에 따라 유사 이전에 들어온 사전귀화식물로 분류했으며, 임양재와 전의식(1980), 김준민 등(2000) 역시 이 견해를 따라 벼와 함께 들어온 사전귀화식물로 구분했다. 병해충에 해당하는 잡초이며(농림축산검역본부 2016), 김찬수 등(2006)이 제주도의 귀화식물 목록에 실었다.

[토마토] 이덕봉(1974)은 지봉유설(1614)에 기록이 있으므로 한반도에 오래전 도입된 것으로 추정했으나, 임록재 등(1999)은 1900년대 초부터 재배했다고 기록했다. 나카이(1914)는 제주도 재배식물로 보고했다. 집 주변이나 풀밭에 저절로 자라기도 하며(박형선 등 2009), 강화도 길상산에서는 경작지를 벗어난 곳에서 자라기도 했다(김중현, 김선유 2013).

무척 오랜 옛날 들어왔다고 하는 까마중이라고 해요. 까마중도 '외래식물'이었네 싶어 깜짝 놀랍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는 까마중을 '병해충 잡초'로 여긴다고 하니 더욱 놀랍니다. 저희는 까마중을 매우 즐기거든요. 아이들도 어른도 까마중을 즐겨요.

까마중은 잎을 훑어서 나물로 먹습니다. 열매가 까맣게 익으면 두 아이는 여름내 가으내 겨우내 신나게 먹습니다. 저희 보금자리가 있는 전남 고흥은 겨울에도 폭한 날씨예요. 저희 집 마당이나 뒤꼍에서 까마중이 12월까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요.

토마토는 이 땅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여겼는데 1600년대 책에 토마토 이야기가 적혔다는군요. 이 대목에서도 놀랍니다. 그냥 풀이 아니요, 흔한 남새가 아닐 수 있다는 대목을 새롭게 마주합니다.

[괭이밥]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잡초이며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식물 중 하나다(Holm 등 1991). 원산지를 열대 아메리카로 보는 견해도 있다(Dunn 1905). 향약집성방(1433)에 초장초라는 이름으로 처방이 기록되어 있다(동의학편집부 1986). 마에카와(1943)는 일본 유사시대 초기에 중국을 거쳐 들어와 귀화한 것으로 추정했으며, 김준민 등(2000)도 농작물과 함께 들어온 구귀화식물로 판단했다.

[서양민들레] 모리(1922)가 경성에 분포한다고 보고했다. 박만규(1949)가 외래품으로 기록했고, 임양재와 전의식(1980)이 귀화식물 목록에 실었다. 일본에서는 1904년에 발견되었고, 환경성(2015)은 중점대책이 필요한 외래종으로 지정했다. 일본생태학회(2002)는 최악의 침입외래식물 100선 중 하나로 선정했다.

▲ 속그림 ⓒ 자연과생태


괭이밥이라는 풀은 언제부터 이 땅에 있었을까요. 아마 알기 어렵겠지요. 쑥이나 마늘이라면 단군 옛이야기에도 나오니 이럭저럭 어림한다지만, 이 땅에 가득한 수많은 풀이나 나무를 놓고 꼼꼼하게 살펴서 언제부터 어떻게 있었는가를 밝힌 이야기는 알기가 어려워요.

만 해라든지 십만 해라는 나날이라면, 또는 백만 해라든지 천만 해라는 나날이라면, 좀처럼 어림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유적지에서 찾아내는 씨앗으로 어림해 보기도 한다지만, 유적지에 남을 씨앗보다는 유적지에 안 남을 씨앗이 더 많아요. 들이나 숲에서만 자라는 푸나무일 적에는 '오랜 씨앗 자국(종자유체)'을 유적지에서 찾기란 더더욱 어렵기 마련이에요.

[들깨] 신석기시대 유적지인 진주시 평거 4-1지구에서 종자유체가 발견되었다(안승모 2013). 따라서 가장 오래전에 한반도로 들어온 외래식물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도 조몬시대 초기 유적지에서 식물유체가 발견되었다(Noshiro, Sasaki 2014). 홍순형과 허만규(1994)가 부산의 귀화식물 목록에, 양영환과 김문홍(1998)이 제주도의 귀화식물 목록에 각각 실었다. 박형선 등(2009)은 재배구역에서 퍼져 나가 저절로 자라는 것도 있지만 자연식물상에 들어가 개체군이 유지되는 경우는 없다고 평가했다.

▲ 괭이밥. 이 풀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고 해요. ⓒ 최종규


민들레는 으레 '민들레'하고 '서양민들레'로 가릅니다. 거의 꽃받침을 살펴서 가르지요. 민들레 가운데 흰꽃이 피면 '민들레'요, 노란꽃 가운데 꽃받침이 꽃송이를 위로 곱다시 받치면 이때에도 '민들레'입니다. 다른 모든 노란꽃 민들레는 '서양민들레'이고요.

오늘날 시골이나 도시를 살피면 거의 모든 곳을 서양민들레가 차지합니다. 서양민들레라고 미워할 까닭이 없고, 미워할 수도 없어요. 더 오랜 민들레라고 해서 더 아끼거나 지키기 어렵기도 합니다. 나물이나 약으로 쓸 적에는 '민들레'만 쓰기 마련이고, 이 가운데 흰민들레를 쓰곤 하는데, 서양민들레가 더 빠르게 씨앗을 맺어서 더 널리 퍼진다기보다는 흰민들레를 나물이나 약으로 쓰려고 '보이는 족족' 캐는 손길이 많은 탓에 좀처럼 못 퍼질 수 있어요.

제가 사는 시골에서 대여섯 해 앞서까지만 해도 마을 논둑이나 길가에 흰민들레가 매우 많았어요. 이제는 저희 집 마당하고 뒤꼍을 빼고는 거의 못 보아요. 농약에 죽기도 하지만, 나물로 뿌리까지 모조리 캐는 분이 아주 많아요.

▲ 속그림 ⓒ 자연과생태


▲ 속그림 ⓒ 자연과생태


[소리쟁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는 종 중 하나다(Holm 등 1991). 향약집성방(1433)에 처방 기록이 있으며(동의학편집부 1986), 세종실록지리지(1454)에도 약재로 기록되어 있다. 임양재와 전의식(1980)은 구귀화식물로 추정해 귀화식물 목록에서 제외한 반면, 박수현(1994)은 개항 이후 북미와 일본을 경유해서 이입된 귀화식물로 판단했다. 한반도 전역에 분포한다. 병해충에 해당하는 잡초다(농림축산검역본부 2016). 일본에는 1891년경에 들어왔으며 환경성(2015)은 종합대책이 필요한 외래종으로 지정했다.

지난해에 소리쟁이 씨앗을 들에서 훑은 뒤에 마당하고 뒤꼍에 살짝 뿌렸습니다. 올봄에는 이 소리쟁이잎을 훑어서 효소로 담급니다. <한반도 외래식물>에서도 밝히지만, 소리쟁이는 씨앗만 훑어서 가볍게 흩뿌렸을 뿐인데, 가을겨울 지나고 봄이 될 무렵 아주 잘 돋습니다.

이 소리쟁이를 놓고도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는 '병해충 잡초'로 여긴다는 대목을 다시금 읽습니다. 그렇지만 소리쟁이는 까마중 못지않게 잎이 보드라운 나물입니다. 봄맛을 알리는 수많은 들풀 가운데 하나라고 느껴요.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감자나 고구마나 당근이나 배추도 매한가지예요. 이러한 남새는 처음부터 이 땅에서 자라지 않았으나 차근차근 받아들여서 어느새 우리 밥상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익숙합니다. 익숙할 뿐 아니라 대단히 즐기지요.

오늘날 우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시로 가서 사느라 들풀을 마주하거나 들풀로 들나물을 삼는 일이 드물어요. 들풀로 효소를 담그기도 만만하지 않을 테고요. 소리쟁이는 잎을 효소로 담그거나 나물로 먹기도 합니다만, 씨앗을 건사해서 베갯속으로 삼을 수 있어요. 이처럼 알뜰히 살려서 잘 쓸 수 있는 길을 하나하나 찾아낸다면, '병해충 잡초'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우리 곁에서 지켜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 소리쟁이 씨앗. 이 씨앗은 베갯속으로 쓰면 몸에 좋다고 하지요. ⓒ 최종규


[무화과나무] 청동기시대 초기부터 지중해와 서아시아에서 올리브, 포도와 함께 재배했다(Zohary 등 2012). 한반도에서는 남부와 제주도에서 재배한다(임록재 등 1996). 모리(1922)가 수입종으로, 정태현(1965)은 제주도에 야생한다고 기록했다. 홍순형과 허만규(1994)가 부산의 귀화식물 목록에 실었다. 김하송(2012)은 신안군 칠발도에서 무화과나무 조림이 소규모로 이루어졌고, 무화과나무의 번식력이 강해 기존 상록활엽수림 지역의 새로운 교란수종이 되면서 분포를 확장한다고 했다.

[삼] 바빌로프(1992)는 구세계에서 인간 역사 초기부터 유목민 캠프와 함께 이동한 식물로 추정했다. 섬유, 기름, 식품, 약, 마약 등 여러 용도로 이용되었고 때로는 재배지를 벗어나 잡초가 되기도 했다(Schultes 등 2001). 울산 상연암 Ⅱ 지구 등 청동기시대 유적지에 종자유체가 발견되었으므로(안승모 2013) 가장 오래전에 국내로 이입된 외래식물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도 재배식물로 기록되어 있다. 밀스(1921)는 동래강변에 많이 재배되던 삼이 재배지를 빠져나와 강변 모래사장에서 자라는 것을 보고했다.

'삼'이라는 풀이 있기에 옷을 입습니다. 삼이나 모시가 없다면 한겨레는 추위를 못 견뎠을 수 있어요. 풀 한 포기는 들풀이기도 하고 나물이기도 하지만, 한겨레를 비롯해서 지구별 모든 나라에서는 풀포기에서 실을 얻었습니다. 짐승털에서 실을 얻고 풀포기에서 실을 얻어요.

삼은 까마득하도록 오랜 옛날 이 땅에 들어왔으리라 여긴다지요. 삼이라는 풀에서 실을 얻어서 옷을 지을 수 있던 먼 옛날, 틀림없이 그 옛사람은 매우 기뻐하면서 고마워했으리라 생각해요. 올리브, 포도와 함께 키웠다는 매우 오래된 나무 가운데 하나라는 무화과나무를 놓고도 무화과알을 얻던 옛사람은 더없이 기뻐하면서 고마워했을 테고요.

▲ 서양민들레하고 '민들레' ⓒ 최종규


얼핏 보면 그냥 나무 한 그루요 풀 한 포기입니다. 그러나 발자취를 살피면 사람 곁에서 사람을 살린 이웃이라 할 만해요. 사람과 함께 살아오며 역사를 이룬 푸나무요, 사람 곁에서 온사랑을 듬뿍 내어준 푸나무이지 싶습니다.

656쪽에 이르는 두툼한 <한반도 외래식물>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풀을 헤아립니다. 먼먼 나라에서 들어온 풀을 헤아려 보고, 먼먼 옛날에 들어온 나무를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이 땅에 갑작스레 넘치는 온갖 '외래식물'을 놓고 앞으로 백 해나 오백 해나 즈믄 해쯤 뒤에는 우리 뒷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마주할 수 있을까 하고도 헤아려 봅니다.
덧붙이는 글 <한반도 외래식물>(김창기·길지현 글·사진 / 자연과생태 펴냄 / 2017.4.10. / 48000원)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