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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수상] 여름의 길목, 입하

등록|2017.05.05 15:01 수정|2017.05.07 09:21
오늘 5월 5일은 24절기 가운데 입하(立夏)가 시작되는 날이다. 달력상으로는 아직 늦봄이지만 절기력에서는 입하일부터 입추 전날까지를 여름으로 친다. 그러나 "입하가 지나면 여름"이라는 말이 있듯이, 실은 입하 절기가 지나야 본격적인 여름 날씨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온난화 현상으로 여름이 더 빨리 오는 경향이 있다. 입하에 이르면 한반도에서 입춘 어간부터 엎치락뒤치락하던 시베리아의 냉기류와 북태평양의 온기류의 밀고 당기기가 후자의 승리로 끝나면서 봄 날씨의 특징이던 큰 일교차와 변덕스러움이 사라지고 날씨가 상당히 안정된다.

입하 어간에 지상은 연중 매우 화창한 날씨에 신선한 대기 그리고 싱그러운 신록으로 차게 된다. 대기에는 싸늘한 냉기도 없고, 햇볕은 적당히 따뜻하고, 어수선한 바람도 없는 때다. 날씨로만 본다면 동물이나 식물이나 살기에는 연중 가장 좋은 시절이라 할 수 있다. 이때야말로 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흐드러진다는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계절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 때다. 그래서, 한 시인의 표현처럼, "오월엔 / 아무데고 귀 기울이면 / 둥둥 북소리 / 천지를 울려 / 빛과 바람과 온갖 / 풋 향기 향연"[성낙희, <오월> 중에서]이 펼쳐진다.

이 무렵에는 온도가 차지도 덥지도 않아 생명활동에 좋은 조건이 형성되어 동식물들이 부쩍부쩍 성장하게 된다. 이때는 농작물도 잘 자라지만 해충도 번성하고 또 잡초까지도 잘 자라서 농가는 병충해 방제는 물론 각종 잡초 제거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오늘날은 입하 무렵이면 묘판에는 볍씨의 싹이 터서 모가 한창 자라고, 밭에서는 보리 이삭들이 패기 시작한다. 그러나 과거 재래종 벼로 이모작을 하던 때에는 주로 입하 어간에 못자리를 했는데 바람이 불면 씨나락이 몰리게 되므로 못자리 물을 빼서 그에 대처해야 한다는 뜻으로 "입하 바람에 씨나락 몰린다"는 속담이 있었다.

이 무렵부터 여름철새인 뻐꾸기와 꾀꼬리가 출몰한다. 그리고 안정되고 포근한 날씨에 푸르러지는 하늘과 초목의 싱싱한 새싹으로 푸름이 충만하게 된다. 이 시기는 <어린이날 노래>(윤석중 시, 윤극영 곡)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는 가사에 가장 잘 맞는 철이다. 이런 점에서 1961년 제정되어 공포된 아동복지법이 '어린이날'을 5월 5일 즉 입하일로 정한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이때가 연중 날씨는 가장 온화하고 초목은 가장 싱그러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를 포함하여 어린 새싹들이 가장 빛나고 소중한 때인 것이다.

무성화(無性花) 또는 장식꽃이 여럿이 둥근 공처럼 뭉쳐 피고 그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음력 4월 초파일(금년은 양력 5월 3일)을 전후해 꽃이 만발하므로 절에서 정원수로 많이 기르는 불두화(佛頭花: 백당나무의 일종)도 이 시기에 꽃이 핀다. 콩과의 밀원식물(蜜源植物)인 등나무도 입하 어간에 총상(總狀)꽃차례로 연한 자줏빛의 꽃을 피운다. 가장 대표적인 밀원식물로서 짙은 향기와 많은 양의 꿀로 유명한 아까시나무의 개화도 입하 무렵 먼저 남쪽에서 시작되어 차츰 북상하는데 총상꽃차례로 핀 하얀 꽃의 수가 잎의 수보다도 더 많다. 꽃이 많기로는 이팝나무도 아카시나무 못지않다.

입하일의 이팝나무꽃.이팝나무는 입하에 그 꽃이 핀다 하여 원래 입하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사진은 입하일에 찍은 이팝나무의 꽃으로 며칠 후 만개하면 잎은 보이지 않고 흰 쌀밥 같은 하얀 꽃만 보일 것이다. ⓒ 이효성


입하 어간에 그 꽃이 핀다고 해서 본래 입하목(立夏木)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하여 이팝나무가 되었다. 꽃이 피면 흰색의 꽃잎이 네 개로 길게 갈라져 흰 쌀밥 같이 보이는 꽃이 나무를 뒤덮어 위에서 보면 잎은 보이지 않고 하얀 꽃만 보인다. 그래서 '이팝'나무 또는 '쌀밥'나무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 귀룽나무, 층층나무, 산사나무 등의 하얀 꽃과 장미과의 황매화, 덩굴장미, 찔레꽃, 해당화, 모과나무 등의 꽃도 입하 절기 중에 핀다.

입하 어간에 채취한 차나무의 고운 잎순과 펴진 잎을 따서 만든 차를 세작(細雀) 또는 입하차라 부르는데 우전차에 버금가는 것으로 친다.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艸衣禪師)는 우전보다는 입하차를 더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입하차는 섭씨 70도 정도의 물에 우려 마신다. 한국 최대 녹차 생산지인 보성의 다향제는 대체로 입하 직전이나 어간에, 그리고 한반도에서 최초로 차나무를 재배한 하동의 야생차문화축제는 입하 어간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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