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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홀인원과 백 살 나이 절구통

등록|2017.05.08 09:06 수정|2017.05.08 09:06

▲ 지인은 홀인원의 감격을 작품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작품이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홀인원, 이미 훌륭한 작품 아닌가. 그 내용을 작품으로만 꾸미면 되는 일이다. ⓒ 손인식


지인의 동반 플레이어가 홀인원을 했다. 지인 부부와 동반 라운딩을 하던 부부 중 남편이다. 홀인원이란 본인이 하기도 어렵지만, 동반 플레이어가 홀인원을 하는 것을 보기도 쉽지 않은 일. 홀인원 당사자나 동반 플레이어에게 행운이 따른다는 속설이 아니더라도 골프를 즐기는 이들에게 홀인원은 꿈이다.

홀인원을 하면 기념패를 남기는 것이 상례다. 지인은 홀인원의 감격을 작품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작품이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홀인원, 이미 훌륭한 작품 아닌가. 그 내용을 작품으로만 꾸미면 되는 일이다. 홀인원을 기념해 함께 가꿔온 두 분의 오랜 우정도 아울러 새기고 싶다고 했다.

걸맞은 소재를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미 나무로 태어난 지 족히 백 년을 넘겨 골동품이 된 러숭(Lesung)이 선택되었다. 러숭은 곡식을 갈고 빻는 인도네시아 농가의 절구통이다. 저녁거리를 위해 작은 바구니 하나 달랑 들고 나가 벼 모가지 한 줌 꺾고, 텃밭의 채소 몇 잎, 고추 몇 개 거둬 와, 방아를 찧어 밥을 짓는 그런 생활환경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다. 인도네시아 절구통은 크기나 형식이 여러 가지다. 한국의 절구통처럼 원형인 것이 있다. 한편 외양간 소 여물통이나 돼지우리의 밥통처럼 길쭉한 것도 있다.

인도네시아 농부들은 50여 년 이상 튼실하게 자란 단단한 재질의 나무를 러숭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선택한다고 했다. 농부의 투박한 솜씨로 빚은 절구통, 그 가족을 위해 기꺼이 헌신한 수십 년의 시간, 낡고 헌 후에는 뒤뜰에 방치됐겠지. 버려진 채 얼마나 많은 세월을 더 견뎠을까? 세월이 깎고 다듬은 러숭의 표면이 이미 예술이 되어 있다. 땔나무로 사라지지 않았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러숭의 텁털함이 골프 이미지와는 반대다. 그러므로 더욱 잘 만난 셈일까? 곡식을 갈고 빻던 공간에는 서예작품을 넣기로 했다. 고르고 간추린 信以竝(신이병 : 신뢰로서 서로 함께하다), 석 자를 휘호해 배치했다. 형상미가 있는 서체인 전서(篆書)로 썼다. 특히 '함께 할 병(竝)'자는 두 사람이 손잡고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표면에는 함께 라운딩을 즐긴 부부의 환호 순간, 홀인원 내용을 새겼다.

▲ 고르고 간추린 信以竝(신이병 : 신뢰로서 서로 함께하다), 석 자를 휘호해 배치했다. 형상 미가 있는 서체 전서(篆書)로 썼다. 특히 ‘함께 할 병(竝)’자는 두 사람이 손잡고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 손인식


▲ 표면에는 함께 라운딩을 즐긴 부부의 환호 순간, 홀인원 내용을 새겼다. ⓒ 손인식


골프 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는 수학자 프랜시스 실드 박사에게 의뢰하여 홀인원의 희귀성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일반 아마추어 골퍼가 홀인원을 할 확률은 1만2천분의 1이라 한다. 주로 주말에 라운딩을 즐기는 주말 골퍼가 홀인원을 할 확률을 따져본다면, 약 3천 라운드로서 57년 동안 매주 쉬지 않고 라운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골프다이제스트는 또 프로 골퍼의 홀인원 가능성은 3천분의 1임을 밝혔다. 곧 아마추어라 하더라도 핸디가 낮을수록 홀인원을 할 확률은 그만큼 높아지리라.

박종천 덕가(德家)의 홀인원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행운이란 나눌수록 좋은 것, 홀인원의 행운이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자카르타 경제신문 사이트 PAGI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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