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면 출범할 새 정부, 블랙리스트 해결할 수 있을까
[기고]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긴 싸움이, 이제 시작이다"
▲ 지난 1월 11일 오후 문화예술인들이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앞에 모여 조윤선 장관 모형에 '검은' 먹물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유지영
지난 2006년 2월 2일, 외교통상부 주최의 '한미 FTA 공청회'가 있었다. 결과론적으로 이 공청회는 끝까지 진행되지 못했다. 언론을 통해 한미 간의 FTA 공식협상이 시작되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형식적으로 전락한 공청회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그 주요 원인이었다.
생뚱맞게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11년 전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블랙리스트가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살펴야 그와 관련된 적폐청산 방안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와 닮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 지난 1월 11일 오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저항하는 예술인들이 정부세종청사 건물을 따라 행진하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은 '블랙리스트 버스'를 타고 서울 광화문에서 세종시까지 와 블랙리스트 사태의 책임자인 문화체육관광부 조윤선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 유지영
'한미FTA의 추진과정'은 여러 가지로 분석될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당시의 정부가 '성과주의'에 기반을 두어, 절차적 민주주의를 형식적으로 전락시킨 것이라고 본다. 즉 '생산된 내용의 질' 즉, 정책의 질과 추진의 명분을 가장 우선시하고, 그 결과물이 충분히 여론전을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추진 집단 내에 있었을 것이다.
문화예술 행정 역시 위의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분명 거버넌스가 과감하게 이루어졌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논리를 정교하게 가다듬을 수 있는 단체를 통해 많은 정책이 실행되었다. 수많은 자문회의, 토론회, 공청회가 이루어졌다. 다만 이를 주도했던 인력풀과 단체는 광범위하지 못했고, 정책의 실현 과정에서 나타난 행정상의 미비점 역시 존재했다. 공과는 분명히 있겠지만 '참여정부'는 배제의 리스트를 짜는 것에 신경을 쓴 것이 아니라, 정책을 함께 개발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찾았다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대선 과정에서 발표한 문화예술 정책은 참여정부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차용과 부분 변형을 통해, 그럴듯하게 포장했고, 껍데기 공약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와 연관성을 기준으로 단체들을 배제해 나갔고, 그 명분은 '반정부시위단체에 대한 교부금 지원 중단'과 같은 법적 수단과 대대적인 감사를 통한 행정수단을 통해 찾았고, 직접 압력을 통한 기관장의 교체를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약화해 나간다. 공청회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이명박 정부 때부터다. 박근혜 정부는 주지하듯이 이명박 정부의 성과(?)에 더해 특정 개인, 작품, 단체, 회사 등에 대한 광범위한 배제 작업을 시도했다. 그래서 '이명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라고 명명하는 것이 옳다.
이런 블랙리스트 작성이 가능하게 되었던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 정책개발과 그 실행과정의 로드맵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공청회가 사라진 이유는 단순하게 민주주의적 절차의 퇴보로만 볼 것이 아니다. 심각한 무능이 그 밑바탕에는 깔렸다. 내세울 만한 정책이 없으니, 못한 것이다. 공개적으로 배제의 근거를 찾지 못하니, 음성화된 리스트를 작성한 것이다.
둘째, 표현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진영 논리의 프레임이 문화예술 행정에 투영되었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같은 논리가 대표적이다. 우파 정부가 좌파를 배제하는 것은 당연하며, 좌파정부 역시 우파를 배제했다는 논리이다. 소위 보수 사이트에서 나돌던 '좌파문화예술인 리스트' 역시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홍준표 지사는 적어도 '헌법에 명기된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초헌법적 발언을 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가 모른다. '위에서 시켰으니 어쩔 수 없다'는 일선 공공기관의 직원들 역시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인들의 광범위한 상황 공유와 대응 행동의 미진함도 상당 부분 일조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셋째, 절차적 민주주의의 파괴이다. 투명성과 공정성의 모든 원리가 공공기관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그들은 그 모든 근거를 이른바 파편화된 '자문회의'에서 찾는다. 뭔가 했다는데, 그 명단은 찾을 수 없고, 그 모든 자문회의의 결과는 공청회와 같은 형태로 귀결되지 못한다. 회의록의 축소 발표, 심사 명단의 비공개 등등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다.
적폐청산, 블랙리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 지난 1월 12일 오전 8시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30여 명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들이 모여 조윤선 장관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11일부터 1박 2일 동안 '블랙리스트 버스'를 조직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의 책임자인 조윤선 장관의 사퇴과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 유지영
그 외에도 많은 것이 있겠지만, 위와 같은 조건에서 블랙리스트가 가능했다면 향후 적폐청산의 방식 역시 그 조건을 극복하는 데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첫째, 관계부처의 장 및 공공기관장으로 집중되었던 블랙리스트 작성 실행자 처벌을 넘어서 공공기관 실무자들이 실행한 위헌적 행정집행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 및 책임자의 처벌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저 공무원의 윤리강령을 강화한다는 귀결로서는 재발 방지는 요원하다.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다. 자료조사 및 고발은 모든 공공기관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대선주자와 국회는 이에 대한 실행계획을 밝혀야 한다. 국회는 국정조사로, 새 정부는 공개적이고 민간 참여가 보장된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둘째. 공청회와 같은 공개적인 공론화 과정이 전제되지 않는 모든 대책에 저항하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사업계획입안'을 위한 자문회의 역시 공론화 과정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즉각 중지해야 한다. 사실 상당수의 문화예술인이 사업의 시급성을 전제로 이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공론화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하고, 관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약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참여하지 않는 것이 옳다. 또한, 이와는 별개로 적폐해소 방안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토론회 역시 광범위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셋째, 문화예술 행정에서 드러난 위헌적 요소들을 찾아내어 헌법소원을 비롯한 강력한 법 개정 작업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국민의 알 권리를 기반으로 사업 진행 절차의 프로세스를 명문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00공공기관의 장은 당해연도 사업의 공청회를 반드시 실시해야 하며,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와 같은 형태이다.
넷째, 위와 같은 모든 방안을 직접 당사자들의 광범위한 참여 속에서 이루어 나갈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영화인 모임'이라는 밴드 활동이 그 경험 중의 하나이다. 내가 속한 마을에서는 박근혜 탄핵을 위한 카카오톡 방이 개설되었다. 선도적인 블랙리스트 투쟁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면, 광범위한 문화예술인들이 모이는 집단지성과 동시다발적인 행동 전의 아이디어가 집약되어야 한다.
비록 고단한 과정이 될 터이지만, 적폐해소는 한 두 달 사이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루어졌던 정책논리개발 입안자와 논의 프로세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문화예술인 피해자들의 사례를 보다 정교하게 세분화해야 한다. 관계 부처와 공공기관의 행정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하고,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긴 싸움이 이제 시작되었다.
'적폐청산 문화예술인 버스'를 탑시다 |
- 일시: 2017년 5월 17일 - 일정: 세종시 문체부 청사, 전남 나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사 방문 - 출발: 5월 17일 오전 9시, 광화문 광장에서 시국선언 후 출발(서울 기준) * 지역 출발 : 대전·충남권 등은 11시 문체부 세종시 청사 앞으로 도착 영·호남권은 15시 나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앞으로 집결 - 참가비: 3만 원 - 문의 및 신청: 010-6577-2007(이해성, '블랙타파') / 010-7711-3948(이두찬, 예술행동위) - 주관: 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연극인회의 '블랙타파' - 주최: <박근혜퇴진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참가단체 * 기본 일정 외 세부 계획은 변동 있을 수 있습니다. |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고영재 시민기자는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