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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있는 글, 맞춤법이 전부가 아니다

[서평] 글은 독자를 위한 것 <품격 있는 글쓰기>

등록|2017.05.11 10:38 수정|2017.05.17 22:19
<품격 있는 글쓰기>, 입시교육에 밀려 책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사람에겐 한숨이 먼저 나올 제목이다. 기껏해야 수험서나 읽고 자란 탓에 '읽기'도 어려운데 '글쓰기'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사람은 분명 '꼰대'였을 것이다. '이런! 품격 있는 글쓰기'를 이야기하면서 '선생님'을 꼰대라고 했으니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다.

저자 김세중은 국어연구소 연구원을 시작으로, 1991년 국립국어연구원 개원 때부터 27년간 국립국어원에서 근무했다. 학예연구관, 어문자료연구부장, 국어생활부장, 공공언어지원단장을 지내고 명예 퇴직한 저자는 "신문 기사든 책이든 개인의 글이든 한국어 문장이 좀 더 다듬어지고 명료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글을 시작하며 저자를 '꼰대'라고 한 건 시비를 걸고자 함이 아니다. 옛 어른들은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고 했다. 요즘처럼 사회관계망에서 속사포처럼 외마디 뱉어내는 글에 익숙한 세대에게 '글쓰기'를 이야기하면서 '품격'을 곁들이라고 해서 한 말이었다.

▲ <품격 있는 글쓰기> 김세중 지음, 푸른길 출판 ⓒ 푸른길

<품격 있는 글쓰기>는 제대로 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훈련받지 않은 사람에겐 어쩌면 어렵고 너무 고리타분한 이야기이다. 국어선생님에겐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외면받기 딱 좋은 주제다. 그 어려운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섰다니 대단한 용기다. 평생 우리말을 다듬고 연구했던 선생님의 용기에 무조건 박수를 보낸다. 그 열정에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국립국어원 재직시 보고서로 <신문 문장 분석>을 낸 바 있다. 기자들에겐 자신들의 글쓰기 오류를 그대로 드러냈던 뼈아픈 보고서였을 것이다. 이 책 역시 최근 신문 기사에 나타난 국어 오류를 지적하고 바로잡고 있다.

직업이 글쓰기인 신문기자는 맞춤법은 기본이고, 정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기사에서 발견한 오류를 갖고 500쪽 가까운 책을 냈으니 기자들이 반성을 해도 많이 해야겠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갖기 쉬운 직업병이 있다. 어떤 간판이나 간단한 문장을 봐도 맞춤법, 띄어쓰기, 표현이 적당한지 등을 따지려 든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해외에서 초대장을 한 장 받았을 때 나 역시 그런 직업병이 있음을 확인했다. 한국국제협력단 한국해외봉사단원으로 2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쳤던 후배가 보내온 초대장은 행사에 참석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며 나름 성실하게 활동했음을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어서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받아본 순간, 직업병이 도졌다. 초대장 한 장에 띄어쓰기가 틀린 곳이 왜 그리 많은지, "한국어과에서 만든 초대장치곤 심하다"고 꼬집고 말았다. 외국 가서 고생하는 건 해외봉사단원만이 아니라 한글도 마찬가지였다.

'채 운'→'채운', '그 동안'→'그동안', '찾아 뵙니다.'→'찾아뵙니다.'

어디 해외에서만 한글이 고생할까.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글은 고생하지만, 누군가는 행복하기만 한 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 풍경을 잠깐 들여다보자.

"지금 뭐하세요?"
"유리하세요."
"요리한다는 거지요?"
"…네~"


"하루에 몇 번 식사하세요?"
"매일마다 삼 번씩 밥 먹어요."
"하루에 세 번 식사하는군요."
"네~"


"어디 아파요?"
"감기 있어요~머리가도 아파요~"
"감기 때문에 머리 아프구나."
"네~"


"김밥 드세요~"
"아니요. 식사세요. 맛있게 해요."
"아, 밥 먹었구나. 맛있게 들라는 거지요?"
"
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걸로 봐서 선생님은 통역의 은사를 받았음이 분명하다. 온갖 방언을 접하고 살다보면 통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5월 연휴가 최장 11일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겐 그림의 떡인 이야기다. 그나마 떡고물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감지덕지인 사람도 있다. 긴 연휴 탓에 생산 물량을 맞추려고 일요일에도 근무하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다.

비록 조사와 어법이 이상한 경우는 있지만, 발음은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려는 노력이 가상하게 보일 때가 많다. 그들은 '닭을', '달글'이라고 제대로 읽고, '여덟이'를 '여덜비'로 정확하게 발음한다. 한국 사람도 '다글, 여덥이'라 틀리기 쉬운 발음인데, 선생님이 잘 가르친 모양이다. 이처럼 시간을 쪼개며 한국어를 공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은 한국인들이 본받을 부분이다. 비록 한국어, 한글을 고생시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어교실에서 하는 말실수는 말을 배우는 과정이란 걸 이해한다면 애교 수준이다. 반면, <품격 있는 글쓰기>는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글쓰기마저 우려할 수준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맞춤법이 다가 아니다!"고 말한다.

맞춤법은 한눈에 맞고 틀리고가 드러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틀리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하지만 뜻이 명료한가, 문법적으로 반듯한가,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매끄러운지 등은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틀리고도 잘 모르고 넘어가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대충 뜻만 통하면 더는 문제 삼지 않는 풍조마저 자리 잡기도 했다고 저자는 개탄한다. 그 중에는 기본인 맞춤법마저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주의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글을 쓸 때 '한글맞춤법을 잘 지키는 것은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서 글쓰기의 기본이다'는 저자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한글맞춤법은 기본적으로 매우 규칙적이어서 쉽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을 뿐이다. 받침을 잘못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의심스러우면 사전을 찾아서 확인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13쪽

저자는 서문에서 "글쓰기는 습관이기 때문에 나쁜 습관을 바로잡아 주는 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고 밝힌다. 그래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실제 쓰인 생생한 예문을 놓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더 반듯하고 뜻이 또렷이 드러나는 문장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한 마디로 국어선생님께서 기자들 글을 놓고 빨간 펜으로 밑줄 좍좍 그은 셈이다. 더불어 이 책에서 일관되게 염두에 둔 것은 '글은 독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독자가 읽고 쉽게 뜻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 세상의 글 중에서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는 글은 일기밖에 없을 것이다. 글은 쓰는 사람 개인이 쓰지만 써 놓는 순간 독자를 위한 것이 된다." -7쪽

책을 읽다 보면 깐깐한 선생님인 저자가 상당히 조심스럽게 글을 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평생 국어를 다듬으며 '국어사전'만 펼쳐도 시빗거리도 아닌 일로 시비 거는 이들과 치열한 논쟁을 했던 경험이 그를 조심스럽게 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령 이런 부분이다.

"정부의 수출대책은 PC 시대인 2000년대 초반 수준이다. 기업 규제를 단두대에 올리고, 전통적 제품 생산에 쏠린 인력을 줄이는 대신 글로벌 시장과 소통하는 인력을 늘리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0223, ㄷ일보)

저자는 위 예문에서 '기업 규제를 단두대에 올리고'의 '단두대'가 지나치게 생경한 단어 선택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언어는 늘 비유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는 하지만 지나쳤다고 생각된다. '단두대'는 사람의 목을 잘랐던 그 옛날의 형벌 도구다. 지금은 없지만 있다 해도 사람을 처형할 때 쓰는 도구이다. 규제 제거를 굳이 단두대에 올렸다고 할 필요가 있겠는가. '과감히 철폐하고'라고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55쪽

위 글에서 두 번이나 '생각된다'라고 한 표현이 주는 느낌은 상당히 방어적이라는 것이다. 비록 표준국어대사전에 '생각되다'가 어떤 일에 대한 의견이나 느낌을 갖게 된다고 나와 있다고 하지만, 기자들의 글에 빨간 펜을 그어대던 선생님의 기백이 보이지 않는다. 말이나 글은 행동을 지배할 수 있다. 말이나 글에 '보여진다', '생각된다'는 식의 표현은 능동성을 가로막을 여지가 있다. "~것 같아요"라는 말에서는 자신감이나 확신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품격 있는 글쓰기>는 워낙 많은 예시가 있어서 잘못된 글쓰기를 이해하고 바로잡는데 유익하다. 한 가지 국어선생님 앞에 감히 아쉬운 부분을 이야기하라면 이런 부분이다. 기사에서 발췌한 오류들을 예문으로 쓰다 보니 너무 많이 알려져서 굳어진 오류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비켜갔다는 것이다.

순댓국은 '순대국'에서 맞춤법으로는 '순댓국'이 맞다. ⓒ 고기복


'순댓국, 방앗간, 진돗개'를 예로 들어 보자.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순대를 넣고 끓인 국을 '순댓국'이라고 쓴 간판을 본 적이 없다. 방아를 두고 곡식을 찧거나 빻는 곳인 '방앗간'도 마찬가지다. 우리 동네 간판은 모두 '순대국'과 '방아간'으로 돼 있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보호 육성하는 천연기념물인 '진돗개' 관련 보도 자료를 낼 때마다 진도군은 '진도개'라고 쓴다.

그 밖에도 감정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말해주는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표현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고객에게 무례하다'는 말을 피하기 위한 감정 노동자의 고단함이 배어 있는 이런 표현을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해야 할까?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그 약속이 변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점에서 시대상을 반영하는 언어 오류들은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기자들이 범하는 오류라면 일반인들도 글을 쓸 때 자주 범할 것이다. 그런 점을 떠올린다면 <품격 있는 글쓰기>가 정말 어렵고 골치 아픈 일이라며 지레 손사래를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말과 글을 다듬는 노력은 전문가에게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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