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투표동원 보도, '기적' 덕에 가능했다
[取중眞담] 기록적인 사전투표, 불법동원도 수월해져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유세가 펼쳐진 4일 오전 경북 안동 중앙로에서 지적장애인들(파란원 내 모자이크 처리)이 인솔자와 함께 홍 후보 유세에 참석하고 있다. 이 지적장애인들이 속한 시설은 자유한국당 안동 선대위에 소속 되어있는 김 아무개씨가 센터장으로 있으며 이들은 유세가 끝난 직후 사전투표장으로 가 투표를 했다. ⓒ 이희훈
지난 4일 오전 경북 안동시 삼산동.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종북좌파를 척결해야 한다'며 언성을 높이고 있던 유세 현장 청중들 속에서 지적장애인들로 보이는 무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쉽게 눈에 띄었다. 다른 청중들처럼 태극기를 흔드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연설을 하고 있는 홍 후보가 아닌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등 유세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함께 현장을 취재 중이던 이희훈 사진기자가 먼저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이들에게 다가가 "오늘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투표하러 간다"고.
유세는 끝이 났고, 인솔자로 보이는 이들은 지적장애인들을 두 줄로 세워 어디론가 이동했다. 이들은 곧 스타렉스 승합차 2대에 나눠 탔다. 택시를 타고 뒤좇아야 하는데, 당장 지갑이 없었다. 취재버스에 가방을 두고 유세현장에 온 탓이었다. 사색이 된 나에게 이 기자는 자신의 신용카드를 선뜻 내줬고, '택시 추격전'이 시작됐다.
▲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유세가 펼쳐진 4일 오전 경북 안동 중앙로에서 지적장애인들(사진 내 모자이크 처리)이 인솔자와 함께 홍 후보 유세에 참석하고 있다. 이 지적장애인들이 속한 시설은 자유한국당 안동 선대위에 소속 되어있는 김 아무개씨가 센터장으로 있으며 이들은 유세가 끝난 직후 사전투표장으로 가 투표를 했다. ⓒ 이희훈
갑자기 끼어든 화물차, 시야에서 사라진 승합차
갑자기 택시 앞에 화물차가 차선을 바꿔 끼어들어더니 그대로 멈췄다. 승합차 2대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급히 차를 돌려 나왔지만 이미 승합차의 뒷꽁무니도 보이지 않았다.
팀장에게 "놓쳤다"고 전화로 보고하는데, 뒷목이 뻐근했다. 나중에 팀장은 "그때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고 했다. 기사님에게 "꼭 찾아야 돼요", "혹시 어디로 갔을까요?"라고 채근했지만 택시기사라고 방도가 있을 리 없었다. 무작정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안동 거리를 돌다보니 다시 차분해졌다. "투표하러 간다"고 했으니 일단 주변의 사전투표소부터 하나하나 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사전투표소 두 군데를 확인했는데 승합차와 그 일행은 없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한 골목을 나오는데 기적처럼 그 승합차가 눈에 들어왔다. 지적장애인들이 나눠 탔던 2대 중 한 대였다. 이 승합차는 한 주택 앞에서 탑승자를 내려준 뒤 출발했다. 탑승자가 들어간 집을 기억해놓고 승합차를 계속 쫓았다. 또 한 사람이 내려 집으로 들어갔다. 방금 유세 현장에서 본 이들 중 한 명이 확실했다.
지적장애인인 이 센터 이용자들은 '센터에서 누구를 찍으라고 했느냐'고 묻자 "2번" 혹은 "한 칸 밑에"라고 답을 했고, 말을 하기 어려운 경우엔 손가락으로 '2'를 표시하기도 했다.
한 센터 이용자는 자신이 투표한 곳이 안기동 주민센터라고 밝혔다. 일단 그 곳으로 가서 이들이 사전투표 한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승합차·승용차에 장애인 싣고 와서 30명 가량 투표시켜"
안기동 사전투표소의 한 투표참관인은 당시 상황을 자세히 기억했다. "오전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장애인들이 단체로 30여 명이 왔다. 아가씨 같은 사람이 다 같이 데리고 와 각자 신분증을 나눠주고 투표를 시켰다", "처음엔 승합차를 타고 왔고, 뒤엔 승용차로도 싣고 왔다" 고 했다. '아 이곳이 맞구나' 싶었지만 이 참관인이 말한 투표 시각은 '택시 추격전'을 계속 하고 있었던 시각이었고, 인원도 훨씬 많았다. 투표참관인이 약간 착각했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나중에 이어진 취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주간보호센터가 센터 이용자들을 데리고 가 사전투표를 시킨 곳은 안기동이 아니라 용상동 주민센터였다. 그제서야 그 투표참관인이 말한 투표 시각과 인원 수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취재 중인 주간보호센터의 사전투표 동원은 용상동에서 이뤄졌지만, 그 전에 안기동 주민센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안기동 주민센터 사전투표 동원에 대해선 구체적인 단서가 없어 취재 진행이 불가능했다. 결국 안동시 용상동에서 이뤄진 불법적인 사전투표 동원은 확인이 됐고, 안기동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않느냐는 심증으로 이어진다. 안동시선관위는 이번 사전투표에서 장애인 투표 편의 서비스를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런 사례는 비단 안동만이 아니었다. 사전투표에 지적장애인을 불법동원했다는 첫 보도가 나간 뒤 경남 김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확인하는 데엔 실패했다. 대구에서도 한 노인복지회관이 5일 20여 명의 노인들에게 사전투표를 위한 교통편을 제공한 정황이 있어 대구시선관위가 조사 중이다. <관련기사 : 더불어민주당, 대구 노인복지회관 선거법 위반 고발> 선관위 관계자는 "시설관계자, 노인들, 당시 차량 운전자를 조사하고 있다"며 "대표는 어느 정당 소속의 당원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록적인 사전투표, 불법선거도 쉬워졌다
▲ 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4일 오후 '지적장애인 불법선거운동 의혹'이 제기된 경북 안동의 000주간보호센터에서 발견된 투표 연습용지. 이 투표용지는 실제 후보들의 정당과 이름이 똑같이 적혀 있었으며 도장을 찍으며 연습한 흔적이 남아 있다. ⓒ 이희훈
이번 대통령선거 사전투표는 26.1%라는 기록적인 투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앞서 든 사례들처럼 불법동원도 속출했다. 사전투표에 뭔가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사전투표는 등록거주지와 상관 없이 아무데서나 투표할 수 있다. 이 점은 투표율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불법동원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편리하게 악용될 수 있다. 만약, 선거일 당일에 지적장애인들을 투표소로 동원하려 했다면 일일이 각자의 주소지 투표소로 데려가야 하지만, 사전투표에 동원하는 건 모두 한 투표소로 데려가도 된다. 불법동원이 한결 수월해지는 것이다. 선거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사전투표에 있을지도 모를 불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이같은 점을 지적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입장을 물었다. 중앙선관위는 사전투표 불법동원을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범죄유형 중 하나'로 치부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7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별도의 대책이 있는 건 아니다"라며 "노인이나 지적장애인 동원은 특이한 케이스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투표소 주변을 감시하고 경찰청에 협조를 요청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가 "지적장애인이나 노인은 신고하기 어렵지 않나"라고 되묻자 "그렇기 때문에 제보와 신고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시민들의 감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사전투표에 수반되는 불법동원에 대한 별다른 대책은 없어 보인다. 한 쪽에서 '기록적인 투표율을 기록했다'며 기뻐하고 있을 동안 다른 쪽에선 '사전투표 덕분에 불법선거도 수월했다'고 웃고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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