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끝났으니 '18세 선거권' 논의 끝? 이제 시작!
[헌법 쉽게 읽기 17] 청소년은 정치적 판단능력이 없다는 꼰대에게
▲ 지난 2월 18일 열린 제16차 촛불집회에서 청소년들이 18세 선거권 보장을 요구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정대희
'헌법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1980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은 같은 해 11월 '정치풍토쇄신특별조치법'을 발표했다. 사회의 부패와 혼란에 책임이 있는 자들의 정치참여를 금지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사실상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에 저항하는 인사들의 정치참여를 금지하는 조치였다. 정치활동이 금지된 자는 행정소송 및 기타의 불복신청이 인정되지 않았고 이 법에 위반하여 정치활동을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과 1000만 원 이하의 벌에 처해졌다. 이에 따라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 인사들의 정치활동은 전면 금지되었다.
'정치풍토쇄신특별조치법'에 의해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던 신민당 인사들은 5년이 지난 1985년 1월 18일에야 해금될 수 있었다. 이들은 정치활동 금지가 해금되자 곧바로 신한민주당을 창당했다. 신한민주당은 창당하자마자 치러진 1985년 2월 12일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켜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84석을 얻어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
1985년 2·12총선 이후 야당과 재야세력은 간선제로 선출된 제5공화국 대통령 전두환의 도덕성과 정통성 결여, 비민주성을 비판하면서 직선제 개헌을 주장했다. 개헌논의는 1985년 7월 30일 여야 만장일치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신한민주당이 1000만 개헌 서명운동에 돌입하면서 개헌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의원내각제를, 야당은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함에 따라 개헌 논의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던 중 1987년 1월 14일 대학생이었던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 고문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박종철 사망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더욱 거세지자 정권유지에 위험을 느낀 전두환은 같은 해 4월 13일 모든 개헌 논의를 금지한다는 일명 4.13 호헌조치를 단행했다. 일체의 개헌 논의를 중단시키고 1988년 2월 현행헌법(대통령 간선제)에 따라 정부를 이양하겠다는 것이었다.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에 국민들의 저항은 폭발했다. 한 달여 후인 5월 18,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정부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조직적 은폐를 폭로를 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호헌철폐·독재타도를 외치는 민주시위가 일어났다. 1987년 6월 항쟁이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 개헌과 제반 민주화조치 시행을 약속하는 6·29선언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1972년 박정희의 유신헌법으로 대통령의 선출이 간선제가 된 이후 15년 만에 국민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민의의 반영'이라는 대통령 선거에서 배제된 이들
1987년 10월 29일 개정된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이다. 헌법 부칙 제1조는 헌법의 시행일을 1988년 2월 25일로 규정하고 있고 제2조 제2항은 헌법 시행과 동시에 대통령의 임기가 개시되도록 하고 있다. 6월 항쟁 이후 선출된 대통령인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까지 모두 2월 25일 임기를 시작한 것은 현행 헌법 부칙에 따라 헌법의 시행일인 2월 25일에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헌법 제68조 제1항은 후임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를 대통령 임기만료 70일 내지 40일 전에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직선거법 제34조는 대통령 선거일을 임기만료일 전 7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로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매번 대통령 선거를 12월에 치른 이유다. 그런데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12월이 아닌 5월에 치러졌다. 18대 대통령인 박근혜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국민들의 손에 탄핵되었기 때문이다. 제19대 대통령은 대통령 궐위에 따른 선출이었기에 선출과 동시에 임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대통령 선거는 임기 시작 두 달여 전인 3월, 봄에 치러질 것이다.
1987년 국민들은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겠다는 전두환의 호헌조치를 끌어내렸다. 30년 후 다시 국민들은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다. 모든 선거는 민심을 반영해야 하지만 특히 1987년과 2017년 대선은 국민의 손으로 만들어낸 것이기에 더욱 민심이 반영되어야 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민심은 투표로 나타난다. 박근혜를 탄핵시킨 민심은 19대 대통령으로 문재인을 선택했다. 문재인은 당선이 확정된 직후 광화문을 찾아 시민들을 만났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광화문의 민심을 이어받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전두화의 호헌조치를 무너트려 직선제를 만들었고 박근혜를 탄핵시켰음에도 이어진 대통령 선거라는 민의의 반영에서 배제된 이들이 있다. 청소년들이다.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법률이 정하는 바'는 구체적 기준을 하위법률에 위임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직선거법' 제15조는 만 19세 이상의 국민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결국 만 19세 미만 청소년들은 선거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에 국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 할 수는 없다. 선거는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를 운영할 대표자를 선택하는 것이기에 최소한의 판단능력은 요구되기 때문이다.
선거에 필요한 판단능력의 유무는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지능지수와 같은 정신능력을 기준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능지수의 개인의 판단능력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설령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고 해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지 객관적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더해 자칫 지적 수준에 따라 국민을 분류하고 정치적 참여를 제한함으로써 차별하게 될 위험성도 있다.
선거연령은 온전히 '사회적 합의'의 문제
▲ 정의당 이영봉 부산시당 청년위원장과 권혁준 울산시당 청년위원장, 이승우 경남도당청년학생위원장은 지난 2월 1일 오전 경남도의회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만18세 선거권 연령 인하'를 촉구했다. ⓒ 윤성효
다음으로 현행과 같은 연령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같은 연령이라 하더라도 모두 판단능력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선거능력을 부여할 연령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설정할 수 없다는 지능지수에서와 동일한 문제점도 있다. 다만 연령은 1년 단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확히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기준의 객관성은 담보할 수 있다.
결국 연령에 따른 선거권 부여도 완전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는 없으나 고려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연령을 선거권 부여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과연 몇 살부터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이 올바를까. 앞서 언급하였듯 연령이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될 수 있지만 개인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 기준은 될 수 없기에 선거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객관적 기준으로써의 연령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선거연령은 온전히 사회적 합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그것은 만 19세인 것이다.
대한민국 선거인 연령은 1948년 건국 당시 만 21세였으며 1960년, 당시 민법상 성인이었던 만 20세로 낮춰졌다. 이는 다시 2005년 6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만 19세로 하향조정 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만 19세인 선거연령이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민주주의의 역사가 긴, 소위 선진국들의 선거인 연령은 모두 만 18세 이하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브라질 등은 만 16세까지 선거권을 인정하고 있다.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한국의 만 19세는 지나치게 높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청소년 선거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법을 개정하여 선거연령을 낮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선거연령을 몇 세로 하는 것이 자신들의 득표에 도움이 될지 여부만 계산하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의 탄핵을 요구한 2016년 11월 19일 제4차 범국민행동 '시민발언대'에 오른 "오늘은 알바비 7만 원을 포기하고 왕복 버스비를 내고 이곳에 왔다"며 자신을 소개한 여고생 "어른들이 항상 말하잖아요. 너희들이 정치적 책임이 있냐고.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이 나라의 주인을 농락하는 것을 학교에서, 그리고 집에서 주머니에 손꼽고 구경하는 것이 어른들의 정치적 책임이라면 저는 어른이 되는 걸 포기하겠습니다"며 청소년들을 어린이 취급하는 어른들의 정치적 무능을 비판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 비용을 포기하면서까지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고자 차비를 들여 광화문에 나온 청소년들에게 과연 선거에 참여하기 어린 나이라고 할 수 있을까.
10월 20일은 학생의 날이다. 학생의 날은 일제 강점기에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제에 항거한 광주학생항일운동이 그 기원이다.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은 당시 16살이었다. 4.19민주혁명은 대학생들의 소극적 저항에 반발한 고등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계기가 되었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에서도 수많은 고등학생들이 거리에서 독재정권에 항거했다. 과연 정치적 판단능력이 부족하다며 청소년의 선거권을 부정하는 것이 정당한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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