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이전에 이런 대통령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미국을 세운 대통령들의 비밀 <이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이변은 없었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은 현실이 됐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던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9일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41.1%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며 마침내 청와대의 새로운 주인이 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 9년 만에 이뤄진 정권교체에 여당이 된 민주당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환호했다.
혹자는 이번 승리를 '국민의 승리'라고도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혁명이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대통령을 끌어내렸고, 정권교체를 향한 열망이 문재인 후보를 향한 표심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권하는 국정운영의 참고서
사실상 '제2의 건국'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지금 심정은 두렵고 막막할지도 모르겠다. 그 어느 때보다 국정운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멘토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 문 대통령에게 국정운영의 참고서로 읽어볼 만한 책을 한 권 추천하려 한다.
전남대 사학과 김봉중 교수가 쓴 <이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다. 책은 미국의 건국 과정에서 혼란을 극복하고 황금기를 열었던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조지 워싱턴부터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미 대륙을 통치했던 역대 대통령들 중 저자가 '이상적 대통령'으로 손꼽은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지도자, 가까운 미래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 반대파라고 할지라도 승자의 아량으로 포용하는 미덕을 갖춘 지도자,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말하는 지도자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처했던 시대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보다 더욱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운 시대였다. 안으로는 국정운영의 방향을 놓고 끊임없는 갈등이 이어졌고, 밖으로는 신생 독립국을 견제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도전을 막아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된 이들은 어떻게 혼란을 극복했을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대통령'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자못 신선하게 느껴진다.
스스로 물러난 초대 대통령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역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듯하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지휘한 총사령관이었던 워싱턴은 1789년 4월 30일,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를 창업한 초대 지도자에겐 막중한 책임과 역할이 요구된다. 국가의 제도를 정비하고 내외의 혼란을 수습해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좋은 선례를 남겨야만 하는 의무가 존재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그런 점에서 훌륭한 미국 대통령의 모범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지휘한 총사령관이었던 워싱턴은 만인의 추대를 받아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워싱턴은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선거인단의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미국인들은 심지어 그를 '대통령 폐하'라고 불렀다. 워싱턴은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종신집권이 가능할 정도로 절대적 지지와 추앙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은 두 번의 임기를 수행한 뒤 1797년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마저도 첫 번째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려고 했던 것을 참모들이 뜯어말리는 통에 4년 뒤로 미룬 것이었단다.
워싱턴의 결단은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수많은 국민들의 희생으로 이룩한 공화국 헌법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오히려 헌정을 유린하고 파괴하는 일이 빈번했던 우리네 사정을 생각하면 워싱턴의 결단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점에서 워싱턴은 200여년 전 사람이지만 우리의 오래된 미래처럼 다가온다.
반대파를 중용해 자신의 권력을 견제하다
워싱턴 뿐만이 아니었다. 이후 백악관의 주인이 된 미 대통령들은 전임 대통령과 구체적 이념과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공화국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항상 마음을 같이 했다. 자연스레 서로의 노선을 존중하는 신사적인 정치 문화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은 국정 운영의 방향과 공화국의 정체성을 놓고 연방파와 공화파가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남부 공화파 출신의 제퍼슨은 워싱턴·애덤스로 대변되는 북부 연방파 12년 통치를 마감하고 정권교체를 이룩한 첫 대통령이었다.
정권교체에 따른 보복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제퍼슨은 연방파 관료들을 그대로 유임시켰다. 정치적 보복도 없었고 외교정책도 그대로 계승했다. 심지어 전임 대통령 애덤스가 제퍼슨을 견제하기 위해 퇴임 직전 대법원장에 임명한 연방파 마셜까지도 유임시켰다. 실제로 마셜은 제퍼슨의 임기 내내 그를 견제하는 바람에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제퍼슨은 끝끝내 그를 존중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미국 헌법의 기본 정신인 '견제와 균형'에 근거한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반대파를 일부러 곁에 둔 것이라 분석한다. 바로 이러한 '다름에 대한 존중'에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뿌리가 시작된 셈이다.
자신감 회복을 위한 처방전 '뉴딜정책'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을 입버릇처럼 언급하곤 했다. 공약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제기되어왔지만 유력 대선 후보의 파격적인 제안은 취업지옥에 시달리는 젊은 청춘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취업 걱정을 하며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필자의 지인조차 "문재인에게 한 표 던지고 공무원이나 준비해야겠다"고 선언할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 그만큼 청년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절박한 문제다. 해방구 하나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문 대통령의 일자리 81만개 공약은 유일한 희망이었다는 뜻이다.
80여 년 전 미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유례없는 대공황으로 나라 전체가 부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뉴욕의 고층 빌딩에서 투신자살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채 거리를 전전하는 부랑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실업자들의 농성이 이어지고 대학생들은 공산주의의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니라 시장경제에 근거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3년 3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경제공황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봤다. 그래서 저자는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대해서도 "외형적으로는 경기부양책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감 부양책"이었다고 주장한다. 길을 닦고 공원을 만드는 공공 부문의 용역으로 실업 청년들을 고용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문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 역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과 흡사해 보인다. 문 대통령이 실제 뉴딜정책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든 그렇지 않든 뉴딜정책이 근본적으로 추구했던 목적, 즉 미국인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어주고자 만들어진 정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재원이 부족하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전락한다면 이 땅의 청춘들은 다시는 정치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리라. 문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공약을 지켜야만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얘기하다
"리더가 어떠한 시각과 시선으로 과거를 보느냐의 차이 하나가 그 나라와 세계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거대한 갈림길이 되고 말았다. 과거를 현재의 문제에 대한 책임 전가의 도구로 이용하느냐, 아니면 희망의 그루터기로 보느냐의 시각 차이가 가져온 결과는 엄청났다. 마찬가지로, 과거를 차갑고 어두운 시선으로 보느냐 아니면 따뜻하고 밝은 시선으로 보느냐의 차이 또한 인류사에 잊지 못할 역사적 유산을 남겨놓았다." - p.69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국민들에게 늘 희망을 말했다. 남북전쟁의 상처 속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부르짖었던 링컨과 대공황의 위기 한가운데서도 "오직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뿐"이라며 희망을 역설했던 루스벨트까지. 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얘기했고, 그를 현실로 승화시켰다.
유례없는 국정농단 사태로 무너져버린 민주주의 시스템,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 등 한반도 전역을 뒤덮은 미세먼지만큼이나 잿빛 절망에 사로잡힌 우리네 현실에도 이렇듯 희망을 말하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단순한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을 동반하는 희망 말이다. 국민 모두의 바람을 업고 대한민국호의 새로운 선장이 된 문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다.
여전히 유효한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물음
2009년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에 취임한 버락 오바마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이룩한 공로를 상기시키며 "자유라는 소중한 선물을 후대에 무사히 전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2016년 12월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그는 고별사에서 "대통령으로서 8년을 보낸 뒤에도 그것을 믿는다"고 자부했다.
이처럼 워싱턴에서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저마다 노선의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미국 헌법이라는 최상위 규범을 존중하고 계승하고자 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한편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요구되는 역할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중 헌법을 존중하고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던 이들이 몇 명이나 됐던가 돌이켜보면 씁쓸한 웃음만 나온다. 대통령조차 헌법을 누더기 취급하는 상황이니 국민들도 헌법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던 것 아니겠는가. 지난 겨울 광장을 뒤흔들었던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도 바로 그런 의문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이제 문 대통령에게는 무너진 헌정을 바로 세우고 대통령의 역할을 재정립해야만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뿐이랴. 광장을 반으로 갈라놓은 촛불과 태극기의 민심을 하나로 봉합하고 화해와 치유의 시대를 여는 길잡이 역할도 요구된다. 무겁고 험난한 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앞서간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지나간 역사는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거울이다. 미국의 혼란기를 극복하고 황금기를 열었던 미국 대통령들에게서 문 대통령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문 대통령에게 당부하노니 부디 이제는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물음에 "이게 나라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달라.
혹자는 이번 승리를 '국민의 승리'라고도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혁명이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대통령을 끌어내렸고, 정권교체를 향한 열망이 문재인 후보를 향한 표심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권하는 국정운영의 참고서
▲ <이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책 표지 ⓒ 위즈덤하우스
전남대 사학과 김봉중 교수가 쓴 <이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다. 책은 미국의 건국 과정에서 혼란을 극복하고 황금기를 열었던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조지 워싱턴부터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미 대륙을 통치했던 역대 대통령들 중 저자가 '이상적 대통령'으로 손꼽은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지도자, 가까운 미래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 반대파라고 할지라도 승자의 아량으로 포용하는 미덕을 갖춘 지도자,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말하는 지도자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처했던 시대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보다 더욱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운 시대였다. 안으로는 국정운영의 방향을 놓고 끊임없는 갈등이 이어졌고, 밖으로는 신생 독립국을 견제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도전을 막아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된 이들은 어떻게 혼란을 극복했을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대통령'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자못 신선하게 느껴진다.
스스로 물러난 초대 대통령
▲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 위키피디아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역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듯하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지휘한 총사령관이었던 워싱턴은 1789년 4월 30일,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를 창업한 초대 지도자에겐 막중한 책임과 역할이 요구된다. 국가의 제도를 정비하고 내외의 혼란을 수습해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좋은 선례를 남겨야만 하는 의무가 존재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그런 점에서 훌륭한 미국 대통령의 모범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지휘한 총사령관이었던 워싱턴은 만인의 추대를 받아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워싱턴은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선거인단의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미국인들은 심지어 그를 '대통령 폐하'라고 불렀다. 워싱턴은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종신집권이 가능할 정도로 절대적 지지와 추앙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은 두 번의 임기를 수행한 뒤 1797년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마저도 첫 번째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려고 했던 것을 참모들이 뜯어말리는 통에 4년 뒤로 미룬 것이었단다.
워싱턴의 결단은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수많은 국민들의 희생으로 이룩한 공화국 헌법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오히려 헌정을 유린하고 파괴하는 일이 빈번했던 우리네 사정을 생각하면 워싱턴의 결단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점에서 워싱턴은 200여년 전 사람이지만 우리의 오래된 미래처럼 다가온다.
반대파를 중용해 자신의 권력을 견제하다
▲ 미국 제퍼슨 기념관에 세워진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동상 ⓒ 위키피디아
워싱턴 뿐만이 아니었다. 이후 백악관의 주인이 된 미 대통령들은 전임 대통령과 구체적 이념과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공화국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항상 마음을 같이 했다. 자연스레 서로의 노선을 존중하는 신사적인 정치 문화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은 국정 운영의 방향과 공화국의 정체성을 놓고 연방파와 공화파가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남부 공화파 출신의 제퍼슨은 워싱턴·애덤스로 대변되는 북부 연방파 12년 통치를 마감하고 정권교체를 이룩한 첫 대통령이었다.
정권교체에 따른 보복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제퍼슨은 연방파 관료들을 그대로 유임시켰다. 정치적 보복도 없었고 외교정책도 그대로 계승했다. 심지어 전임 대통령 애덤스가 제퍼슨을 견제하기 위해 퇴임 직전 대법원장에 임명한 연방파 마셜까지도 유임시켰다. 실제로 마셜은 제퍼슨의 임기 내내 그를 견제하는 바람에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제퍼슨은 끝끝내 그를 존중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미국 헌법의 기본 정신인 '견제와 균형'에 근거한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반대파를 일부러 곁에 둔 것이라 분석한다. 바로 이러한 '다름에 대한 존중'에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뿌리가 시작된 셈이다.
자신감 회복을 위한 처방전 '뉴딜정책'
▲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초상화 ⓒ 위키피디아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을 입버릇처럼 언급하곤 했다. 공약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제기되어왔지만 유력 대선 후보의 파격적인 제안은 취업지옥에 시달리는 젊은 청춘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취업 걱정을 하며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필자의 지인조차 "문재인에게 한 표 던지고 공무원이나 준비해야겠다"고 선언할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 그만큼 청년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절박한 문제다. 해방구 하나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문 대통령의 일자리 81만개 공약은 유일한 희망이었다는 뜻이다.
80여 년 전 미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유례없는 대공황으로 나라 전체가 부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뉴욕의 고층 빌딩에서 투신자살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채 거리를 전전하는 부랑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실업자들의 농성이 이어지고 대학생들은 공산주의의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니라 시장경제에 근거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3년 3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경제공황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봤다. 그래서 저자는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대해서도 "외형적으로는 경기부양책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감 부양책"이었다고 주장한다. 길을 닦고 공원을 만드는 공공 부문의 용역으로 실업 청년들을 고용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문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 역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과 흡사해 보인다. 문 대통령이 실제 뉴딜정책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든 그렇지 않든 뉴딜정책이 근본적으로 추구했던 목적, 즉 미국인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어주고자 만들어진 정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재원이 부족하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전락한다면 이 땅의 청춘들은 다시는 정치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리라. 문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공약을 지켜야만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얘기하다
"리더가 어떠한 시각과 시선으로 과거를 보느냐의 차이 하나가 그 나라와 세계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거대한 갈림길이 되고 말았다. 과거를 현재의 문제에 대한 책임 전가의 도구로 이용하느냐, 아니면 희망의 그루터기로 보느냐의 시각 차이가 가져온 결과는 엄청났다. 마찬가지로, 과거를 차갑고 어두운 시선으로 보느냐 아니면 따뜻하고 밝은 시선으로 보느냐의 차이 또한 인류사에 잊지 못할 역사적 유산을 남겨놓았다." - p.69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국민들에게 늘 희망을 말했다. 남북전쟁의 상처 속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부르짖었던 링컨과 대공황의 위기 한가운데서도 "오직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뿐"이라며 희망을 역설했던 루스벨트까지. 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얘기했고, 그를 현실로 승화시켰다.
유례없는 국정농단 사태로 무너져버린 민주주의 시스템,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 등 한반도 전역을 뒤덮은 미세먼지만큼이나 잿빛 절망에 사로잡힌 우리네 현실에도 이렇듯 희망을 말하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단순한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을 동반하는 희망 말이다. 국민 모두의 바람을 업고 대한민국호의 새로운 선장이 된 문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다.
여전히 유효한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물음
2009년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에 취임한 버락 오바마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이룩한 공로를 상기시키며 "자유라는 소중한 선물을 후대에 무사히 전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2016년 12월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그는 고별사에서 "대통령으로서 8년을 보낸 뒤에도 그것을 믿는다"고 자부했다.
이처럼 워싱턴에서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저마다 노선의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미국 헌법이라는 최상위 규범을 존중하고 계승하고자 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한편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요구되는 역할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중 헌법을 존중하고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던 이들이 몇 명이나 됐던가 돌이켜보면 씁쓸한 웃음만 나온다. 대통령조차 헌법을 누더기 취급하는 상황이니 국민들도 헌법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던 것 아니겠는가. 지난 겨울 광장을 뒤흔들었던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도 바로 그런 의문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이제 문 대통령에게는 무너진 헌정을 바로 세우고 대통령의 역할을 재정립해야만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뿐이랴. 광장을 반으로 갈라놓은 촛불과 태극기의 민심을 하나로 봉합하고 화해와 치유의 시대를 여는 길잡이 역할도 요구된다. 무겁고 험난한 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앞서간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지나간 역사는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거울이다. 미국의 혼란기를 극복하고 황금기를 열었던 미국 대통령들에게서 문 대통령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문 대통령에게 당부하노니 부디 이제는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물음에 "이게 나라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달라.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heigun)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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