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유승민, 그가 정치를 그만 둘 수 없는 이유

[서평] 유승민의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를 읽다

등록|2017.05.15 15:38 수정|2017.05.15 15:38
19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지난 2일 오전 9시 50분, 전날 새벽 즈음부터 인터넷 기사로 올라오기 시작한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다. 바른정당 소속 의원 14명이 탈당과 자유한국당으로의 복당을 선언한 것이다.

'새로운 보수'를 만들겠다며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한지, 혁신하겠다며 친정을 박차고 나온 지 채 100여 일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게다가 탄핵 정국에서 야당만큼이나 치열하게 최전선에 앞장서며 이름을 알렸던 김성태, 장제원, 권성동 의원 등이 이 14인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국민들이 느낀 배신감의 크기는 매우 컸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았을 당의 대선후보는 도리어 침착했다. 오히려 남은 선거기간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새로운 보수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을 다시 한번 약속했다. 유승민 의원은 마지막 대선 토론에서 시간을 아껴 국민들에게 말했다.

"많은 국민들께서 지켜보고 계시고, 손을 잡아주시면 저는 개혁보수의 길을 가보고 싶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도대체 유승민이 말하는 보수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지위와 사람들을 잃으면서 까지 그가 정치인으로서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게 된 '정치인 유승민'의 맨얼굴이 담담하게 드러나 있었다.  

보수는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라는 '철학'

▲ 유승민,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2017 ⓒ 봄빛서원

'공화주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이전부터 유승민은 자신의 정치 인생에 있어 공화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작년 5월경 본격적인 준 대권 국면이 펼쳐질 무렵에도 그는 "공정경제와 공화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말을 중심으로 하여 잠룡으로서의 발걸음을 시작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공화주의란 무엇일까? 유승민은 정치인으로 살기 시작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무렵,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는 헌법의 맨 윗 조항에 관심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친숙한 민주라는 개념과 달리 공화의 이념은 경제학만을 공부해온 그에게 쉽사리 정의내리기 어려운 일이었고, 그때부터 그는 공화주의와 관련된 학자, 정치인들의 저서를 가리지 않고 탐독해 나갔다는 것이다.

"공화의 으뜸은 정의이고, 공화에는 정의, 자유, 평등, 공정, 법치, 공공선, 그리고 시민의 덕성이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그 하나 하나가 모두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에 있는 단어들이었다."(p.266)

그 과정에서 그가 깨달은 '공화'의 가치는 보수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그가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 것은 IMF로 인한 혼란이 계기였다. 그 이후로 그는 단순히 경제적 불황을 넘어 양극화, 불평등, 불공정, 그리고 저출산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다양한 문제들의 존재와 마주하게 되었다.

공화주의란 이 같이 곳곳에 산적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 그로부터 사회적 정의를 올바르게 실현하여 우리의 '공동체'를 지켜나갈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서구의 보수 정당들이 수행해온 일이자 한국의 보수주의가 맡아야 할 임무라고 정치인 유승민은 인식했다.

대개의 동료 당 의원들과 달리 그가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법안을 발의하고 노동환경 개선, 저출산 문제 대책 마련 등에 야당 의원들 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은 모두 이러한 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보수 정치인으로서 유승민은 꾸준히 국방위에 머무르며 간사와 위원장까지 역임하였는데, 군 내 의문사 문제의 해결 시도, 12.12 반란 사건에 맞서 싸우다 순직한 김오랑 장군의 명예회복 주도, 그리고 제2 롯데월드 설립 반대 등의 행보를 남겼다.

책에는 당시 그가 정부에 편승하지 않고 강한 군대, 정의로운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노력했고 그럼에도 실패했을 때 겪었던 고뇌의 과정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철학이 없는 정치를 보아 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많은 정치인들은 당장의 표를 따라서, 그리고 소속 정당 실력자의 의중을 따라서 부화뇌동하고 흔들리는 정치를 해왔다. 자신이 했던 말과 약속도 금방 180도 뒤집어 버리는 일은 다반사다. 당장의 바른정당 탈당 사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철학이 없는 정치의 가벼움.

유승민은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그 자신만의 철학으로 정치를 하는 의미와 그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을 적었다. 이번 대선을 통해 유승민에 대한 지지층이 확대되는 것은 그런 그의 모습이 가식이 아니라, '다른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많이 퍼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는 감시자에서 이제는 실행자로

이회창,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시대까지. 유승민은 정치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보수 정당의 중심 혹은 지근거리에 있었다. 시작 역시 여의도 연구소 소장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실세'로서 군림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보수 정권의 집권, 혹은 성공에 비례해 유승민의 정치적 입지는 풍파에 휩쓸리거나 좁아졌다.

그것은 KDI 연구원 시절부터 중앙에 대해, 권력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믿고 또 그렇게 실천했던 천성적인 감시자이자 비판자로서의 기질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경제학자에서 정치인으로 길을 바꾸어 걸었고 이명박 시대에는 박근혜의 비서실장이자 BBK 저격수로, 박근혜 시대에는 대표적인 '탈박' 인사로 분류된 삶을 살았다.

대선은 끝났지만 유승민의 실험, 혹은 도전은 이어질 것이다. 비(非)유승민계가 대거 그를 떠난 지금, 역설적으로 바른정당의 미래 행보에는 그의 의중이 크게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그가 꿈꾸는 개혁 보수, 새로운 보수는 어떤 모습일까?

잠깐의 일탈로 끝날지, 진정으로 보수에 새로운 바람과 변화를 불어 넣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그 스스로가 말하는 '정치를 하는 이유',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그 신념을 국민들은 천천히 지켜볼 것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