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사전투표 용지'가 2가지라고 믿었을까
오기억(false memory)이 두 종류의 투표용지를 만들다
대선을 몇 주 앞둔 시점, 수개표 논란이 들끓었다. 김어준이 제작하고, 최진성이 감독을 맡은 다큐멘터리 <더 플랜> 때문이었다.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에서, 이들은 투표지 분류기를 해킹해 선거결과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확률을 높이도록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반복해 주장한다. "그럴 수 있다"는 말은 곧 "그렇다"로 둔갑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 중 어떤 것도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다. <더 플랜>은 미분류 표 중 무효표를 제외한 표의 비율이 박근혜 52.7%, 문재인 32.7%임을 들며, 이것이 전체득표율과 달라 조작이 의심된다 주장하지만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이야기다. 미분류 표 중 박 전 대통령에게 간 표가 더 많았다는 것은, 대부분의 미분류 표 중 다수가 노년층에게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음을 생각할 때 큰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 60대 이상 연령층의 지지율은 약 7 대 3에 육박했다.
이 주장의 가장 큰 문제는 분류기에 제기된 것이라는 점이다. 정상적으로 투표된 표가 '미분류'표로 분류된다고 해도 이는 수개표를 통해 '제대로' 옮겨진다. 만약 지난 대선의 개표에 선거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 만한 문제가 있었다면, 거기에는 개표인의 총체적이며 포괄적이면서도, 조직적인 개표 부정 또는 업무 태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표인은 정치적 성향으로 뽑히지도 않고, 평소에 일을 얼마나 대충하는지를 기준으로 뽑히지도 않는다. 게다가 개표장에는 수많은 참관인이 있었다.
사전투표 사용된 용지가 두 가지? 명백한 거짓
그러나 <더 플랜>의 여파 때문인지 대선이 가까워져 올수록 '투표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자신의 표가 다른 후보에게 가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를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수개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홍준표가 당선될 것이라는 불신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결정적으로 사전투표일이었던 5월 4일과 5일, 논란이 번졌다. 사전투표에 사용된 용지가 두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는 공개된, 후보자 간 0.5cm 간격이 있는 투표지이고, 하나는 간격이 좁거나 없는 투표지라는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논란이 번져갔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사전투표에서 나온 표 중 일부를 조작해 정권교체를 막으려 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증언도 속속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투표용지를 촬영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했다. 심지어는 투표지 인쇄기가 해킹당했을 가능성마저 제기됐다. 심지어 선거관리위원회가 "칸이 붙어 있는 것은 미분류표로 수개표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허위사실마저 유포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어느 개표장에서도 간격이 좁거나 없는 투표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수많은 목격담이 모두 거짓이란 이야기인가. 아마 투표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기억에 기초해서 진실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왜곡되거나 조작되어 있는 것은 사실 투표용지가 아니라 그 기억이었다. 자신이 속한 '문재인 지지그룹'의 의견과 기억을 따라 자신의 기억을 바꾼 것이다. 이는 누군가의 오기억(false memory)에 집단 동조 현상이 더해진 것이다.
오기억(false memory)이 두 종류의 투표용지를 만들다
기억은 쉽게 조작된다. 지난 12월 저널 <메모리>에 실린 워릭 대학교 연구팀의 실험에 따르면, 참가자들에게 실제로 없었던 일을 지속적으로 상상하도록 한 결과, 참가자의 절반인 53%의 사람들이 없던 일을 기억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어린 시절 열기구를 타본 적이 있다든지, 선생님에게 장난을 친 적이 있다든지, 결혼식장에서 난동을 피웠다든지와 같은 실제 없었던 기억을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암시한 결과였다.
그들 중 30%는 연구팀이 제시하지 않은 일들마저 기억해냈다. 나머지 23%의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받아들였고, 또 동의했다. 킴벌리 웨이드 박사는 연구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요인이 거짓 기억을 만들어내는지 압니다. 어떤 사람에게 사진을 보여주거나 계속 무언가를 상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간격이 없는 투표용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A Wade, Kimberley, "A mega-analysis of memory reports from eight peer-reviewed false memory implantation studies", [Memory] Volume 25)
게다가 이런 오기억은 수정 역시 쉽지 않다. 2011년,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 연구소에서는 재밌는 실험이 있었다. 30명의 지원자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상했고 며칠 후, 영화에 대한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나 1주일 후 똑같은 질문이 주어졌을 때, 참가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의 조작된 답변(fabricated responses)에 따라 자신의 기억을 바꿨다.
무려 70%의 참가자들이었다. 그 후 다시 제대로 된 정보가 주어졌을 때에도 올바르게 답변을 바꾼 이는 60%에 불과했다. 연구자 Micah Edelson은 이에 대해 "한 번 잘못된 정보에 노출되면, 추후에 그 영향을 바로잡기가 어렵다"고 기술했다. (Edelson, Micah, "Following the Crowd: Brain Substracts of Long-Term Memory Conformity", <SCIENCE> Vol 333, 2011.)
극우세력도 '선거조작설' 퍼트려
우습게도 대선 후, 일베로 대표되는 극우 커뮤니티에서도 선거 음모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홍준표 후보의 지지자 중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자유한국당 선거상황실을 찾아간 일부 지지자들이 "전자개표 못 믿겠다. 수개표 실시하라"라 외치기 시작했다. 조원진 후보의 지지자들 역시 카톡을 통해 두 종류의 투표용지를 근거로 선거조작설을 옮겼다.
정부기관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많은 부분은 공기관의 업무 미숙과 부패로 인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또 많은 부분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이어져 온 일부 민주 진영 언론인의 비합리적 의혹 제기 탓이기도 하다. 불신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리고 그 비합리적 불신의 논리를 극우-수구 지지자들이 답습하고 있는 지금을 보자. 이것이 과연 문재인 정부에 '좋은 일'일 수 있을까.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4월 <더 플랜>이 제기한 의혹에 반박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의혹 해소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투표지 현물을 직접 검증하는 것이다. 19대 대선이 끝난 뒤 제작진의 요구가 있다면 조작 여부 검증에 필요한 범위에서 제3의 기관을 통한 공개검증에 응할 것이다. 검증 결과 대선 결과를 조작한 것이 밝혀진다면 선거관리위원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것이다. 반대로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의혹을 제기한 쪽은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길 바란다."
대선이 끝났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 이제부터 '18대 대선'에 대한 검증은 시작되어야 한다. 사회적 신뢰를 위해서도 그렇고, 잘못된 기억을 위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 중 어떤 것도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다. <더 플랜>은 미분류 표 중 무효표를 제외한 표의 비율이 박근혜 52.7%, 문재인 32.7%임을 들며, 이것이 전체득표율과 달라 조작이 의심된다 주장하지만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이야기다. 미분류 표 중 박 전 대통령에게 간 표가 더 많았다는 것은, 대부분의 미분류 표 중 다수가 노년층에게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음을 생각할 때 큰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 60대 이상 연령층의 지지율은 약 7 대 3에 육박했다.
이 주장의 가장 큰 문제는 분류기에 제기된 것이라는 점이다. 정상적으로 투표된 표가 '미분류'표로 분류된다고 해도 이는 수개표를 통해 '제대로' 옮겨진다. 만약 지난 대선의 개표에 선거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 만한 문제가 있었다면, 거기에는 개표인의 총체적이며 포괄적이면서도, 조직적인 개표 부정 또는 업무 태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표인은 정치적 성향으로 뽑히지도 않고, 평소에 일을 얼마나 대충하는지를 기준으로 뽑히지도 않는다. 게다가 개표장에는 수많은 참관인이 있었다.
사전투표 사용된 용지가 두 가지? 명백한 거짓
▲ 사전투표 투표용지가 두 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case2에 투표했다고 주장한다 ⓒ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그러나 <더 플랜>의 여파 때문인지 대선이 가까워져 올수록 '투표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자신의 표가 다른 후보에게 가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를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수개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홍준표가 당선될 것이라는 불신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결정적으로 사전투표일이었던 5월 4일과 5일, 논란이 번졌다. 사전투표에 사용된 용지가 두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는 공개된, 후보자 간 0.5cm 간격이 있는 투표지이고, 하나는 간격이 좁거나 없는 투표지라는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논란이 번져갔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사전투표에서 나온 표 중 일부를 조작해 정권교체를 막으려 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증언도 속속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투표용지를 촬영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했다. 심지어는 투표지 인쇄기가 해킹당했을 가능성마저 제기됐다. 심지어 선거관리위원회가 "칸이 붙어 있는 것은 미분류표로 수개표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허위사실마저 유포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어느 개표장에서도 간격이 좁거나 없는 투표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수많은 목격담이 모두 거짓이란 이야기인가. 아마 투표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기억에 기초해서 진실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왜곡되거나 조작되어 있는 것은 사실 투표용지가 아니라 그 기억이었다. 자신이 속한 '문재인 지지그룹'의 의견과 기억을 따라 자신의 기억을 바꾼 것이다. 이는 누군가의 오기억(false memory)에 집단 동조 현상이 더해진 것이다.
오기억(false memory)이 두 종류의 투표용지를 만들다
▲ 영화 <더 플랜> ⓒ 엣나인필름
기억은 쉽게 조작된다. 지난 12월 저널 <메모리>에 실린 워릭 대학교 연구팀의 실험에 따르면, 참가자들에게 실제로 없었던 일을 지속적으로 상상하도록 한 결과, 참가자의 절반인 53%의 사람들이 없던 일을 기억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어린 시절 열기구를 타본 적이 있다든지, 선생님에게 장난을 친 적이 있다든지, 결혼식장에서 난동을 피웠다든지와 같은 실제 없었던 기억을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암시한 결과였다.
그들 중 30%는 연구팀이 제시하지 않은 일들마저 기억해냈다. 나머지 23%의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받아들였고, 또 동의했다. 킴벌리 웨이드 박사는 연구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요인이 거짓 기억을 만들어내는지 압니다. 어떤 사람에게 사진을 보여주거나 계속 무언가를 상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간격이 없는 투표용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A Wade, Kimberley, "A mega-analysis of memory reports from eight peer-reviewed false memory implantation studies", [Memory] Volume 25)
게다가 이런 오기억은 수정 역시 쉽지 않다. 2011년,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 연구소에서는 재밌는 실험이 있었다. 30명의 지원자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상했고 며칠 후, 영화에 대한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나 1주일 후 똑같은 질문이 주어졌을 때, 참가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의 조작된 답변(fabricated responses)에 따라 자신의 기억을 바꿨다.
무려 70%의 참가자들이었다. 그 후 다시 제대로 된 정보가 주어졌을 때에도 올바르게 답변을 바꾼 이는 60%에 불과했다. 연구자 Micah Edelson은 이에 대해 "한 번 잘못된 정보에 노출되면, 추후에 그 영향을 바로잡기가 어렵다"고 기술했다. (Edelson, Micah, "Following the Crowd: Brain Substracts of Long-Term Memory Conformity", <SCIENCE> Vol 333, 2011.)
극우세력도 '선거조작설' 퍼트려
▲ 인간의 기억은 부정확하다 ⓒ pixabay
우습게도 대선 후, 일베로 대표되는 극우 커뮤니티에서도 선거 음모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홍준표 후보의 지지자 중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자유한국당 선거상황실을 찾아간 일부 지지자들이 "전자개표 못 믿겠다. 수개표 실시하라"라 외치기 시작했다. 조원진 후보의 지지자들 역시 카톡을 통해 두 종류의 투표용지를 근거로 선거조작설을 옮겼다.
정부기관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많은 부분은 공기관의 업무 미숙과 부패로 인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또 많은 부분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이어져 온 일부 민주 진영 언론인의 비합리적 의혹 제기 탓이기도 하다. 불신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리고 그 비합리적 불신의 논리를 극우-수구 지지자들이 답습하고 있는 지금을 보자. 이것이 과연 문재인 정부에 '좋은 일'일 수 있을까.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4월 <더 플랜>이 제기한 의혹에 반박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의혹 해소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투표지 현물을 직접 검증하는 것이다. 19대 대선이 끝난 뒤 제작진의 요구가 있다면 조작 여부 검증에 필요한 범위에서 제3의 기관을 통한 공개검증에 응할 것이다. 검증 결과 대선 결과를 조작한 것이 밝혀진다면 선거관리위원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것이다. 반대로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의혹을 제기한 쪽은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길 바란다."
대선이 끝났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 이제부터 '18대 대선'에 대한 검증은 시작되어야 한다. 사회적 신뢰를 위해서도 그렇고, 잘못된 기억을 위해서도 그렇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