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2일부터 21일까지 경남 하동군 북천면 일대에서 열리는 '꾳양귀비'축제 ⓒ 김종신
경남 하동 북천면 직전리는 온통 붉은 꽃양귀비 천지다. 12일부터 21일까지 하동 북천면 일대에서 꽃양귀비 축제가 열리고 있다. 양귀비의 유혹에 쉽게 발걸음을 옮기기 어렵지만, 산들바람 시원하게 맞으며 걷다가 길 건너 해발 360m 계명산(鷄鳴山)이 둘러싼 직전(稷田)마을로 방향을 틀었다.
진주-하동 국도가 지나는 2차선 길을 건너자 삼우당 문익점 비가 먼저 반긴다. 비를 지나 마을 속으로 걸으면 마을회관이 나온다. 마을회관 오른편으로 돌담길을 따라 좀 더 올라가면 개오동나무와 옴나무로 멋들어지게 감싸진 작은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맞은 편 커다란 은행나무 뒤에 대문이 아름다운 고택이 나온다. 삼우당 문익점의 17세 손인 황남 문영빈(1891~1961) 선생의 생가다.
▲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 있는 삼우당 문익점의 17세 손인 황남 문영빈(1891~1961) 선생의 생가 대문 ⓒ 김종신
직전마을은 삼우당 문익점 선생의 10세 손인 직하재 문헌상(1652~1722) 선생이 벼슬에 뜻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조선 숙종 5년(1679년)에 처음으로 이사와 정착한 이래 강성 문씨 집성촌이 되었다. 직하재 선생은 산 중턱에 서원에 버금가는 '직하정'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다. 처음 들어선 곳에서 5번이나 옮겨 현재와 같이 마을 가운데에 이른다.
생가는 사랑채와 안채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러나 한때 사랑채 주위에 객사만 6채에 이르는 등 500석 부자였다. 황남 선생이 독립운동에 헌신하면서 많은 자산을 독립운동에 쏟았기 때문이다. 선생은 1910년 경술국치 때 중국 상해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의 전신인 배달학회(주석 이시영, 외교부장 여운형)에서 활약했다. 귀국해서는 1919년 백산 안희제가 운영하는 백산상회 설립에 참여했다.
마침 찾아간 날에는 '옛 아름다움으로 초대 한옥에서 살다- 따뜻한 밥상, 전통 혼례보, 소목가구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열린 대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휴~'하고 누각에 높이 올라보니 쓸쓸한 기운이 가을을 재촉하고 천년에 걸쳐서 장사의 한 때문에 긴 강물도 '부르르'떨며 흐르지 못하는구나'라는 황남이 촉석루에 올라 읊은 시가 적혀 있다. 나즈막이 읊조리며 마당으로 들어서자 하동녹차를 권한다. 우전차로 몸 안 가득 초록을 채웠다. 옆에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내 맘처럼 녹차 빛으로 다가섰다. 찰진 밤떡을 덩달아 맛있게 먹었다.
▲ 하동 문영빈 선생 생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한켠에서 하동녹차를 권한다. 우전차로 몸 안 가득 초록을 채웠다. ⓒ 김종신
▲ 하동 문영빈 선생 생가에서 열린 ‘옛 아름다움으로 초대 한옥에서 살다- 따뜻한 밥상, 전통 혼례보, 소목가구 전시회’ ⓒ 김종신
전통 혼례보와 소목장 전시가 열리는 사랑채 위로 푸른 하늘 사이로 옅은 구름이 스쳐 지난다. 사랑채를 돌아 안채로 간다. 안채 곁에 있는 회화나무와 팽나무 사이에 널따란 빈터를 만났다. 빈터는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느라 가세가 기운 흔적이다.
돌담을 지나자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나온다. 숲 아래 작은 샛길을 따라 내려갔다.
작은 개울이 지나 '황남공원'으로 향했다. 2011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는 숲에 나를 맡겼다.
편편하고 보드라운 숲길이 온 마음으로 내게 손을 내민다.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물 흐르는 소리, 살짝 어루만지는 바람결에 깊고 고요한 숨을 내쉬었다. 붉은토끼풀들이 분홍빛으로 바람에 흔들거린다. 바람이 지나가면서 작은 연못에 빠진 초록빛도 덩달아 일렁인다. 눈과 마음이 즐겁다.
숲은 꽉 막혀 있던 가슴마저 시원하게 뚫는다. 양귀비의 유혹을 이겨낸 풍경이다. 짙고 푸른 열정이 나를 기다리는 나만의 정원이다.
▲ 문영빈 선생 생가 사랑채 위로 푸른 하늘 사이로 옅은 구름이 스쳐 지난다. ⓒ 김종신
▲ 하동 문영빈 선생 생가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초록빛을 자랑한다. ⓒ 김종신
▲ 하동군 북천면 직전마을은 2011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숲에 나를 맡겼다. ⓒ 김종신
▲ 편편하고 보드라운 숲길이 온 마음으로 내게 손을 내민다. ⓒ 김종신
▲ 하동군 직전마을 숲은 꽉 막혀 있던 가슴마저 시원하게 뚫는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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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찬솔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