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소류를 도매하는 시장 풍경 ⓒ 이경모
▲ 물끄러미 TV를 주시하고 있는 할아버지 ⓒ 이경모
매일 아침 일찍 가장 부산하게 움직이는 곳은 어딜까. 시장이다. 사람 사는 맛이 물씬 나는 곳. 삶이 느슨할 때 한 번 가볼만 한 곳이다.
식당업을 시작한지 4개월이 되어간다. 이틀에 한 번씩 가는 시장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부지런한 사람들, 바쁜 사람들, 망태사랑하며 티격태격 하는 부부도 있지만 하루를 가장 알뜰하게 쓰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시장이다. 특히 아침 시장은 더 그렇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많았지만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저 텔레비전으로 많은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봤는데 처음 말하는 것하고 나중에는 많이 달라져. 오늘도 좋은 말들 많이 하는데 좀 끝까지 지키고 우리 같은 서민들도 잘 살았으면 좋겠어."
내가 거래하는 거래처 칠순 할아버지가 TV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순간 아주 오래 된 TV가 내 눈에 크게 들어왔다. 그동안 무심히 봤던, 거의 가정집에서는 볼 수 없는 TV다. 그런데 그 가게만 오래된 TV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관심 있게 보니까 내가 거래하는 거래처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TV가 아닌가.
1960년대 시골에서 봤던 흑백TV와 많이 흡사한 TV를 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 고향에서 TV에 얽힌 배고픈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100가구가 넘게 사는 동네에 고작 TV는 두서너 대였다.
그때 TV가 있는 집은 부자였다. 집주인에게 또는 친구에게 잘 보여야 TV를 볼 수 있었다.
여름에 인심 좋은 집에서는 마루에 TV를 내놓는다. 마당에 덕석을 깔아놓고 마치 영화를 보듯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TV를 봤다.
내가 기억나는 프로그램은 '임꺽정' '수사반장' '여로' '김일 선수의 프로레슬링' 등이다. TV에 문을 달아 잠궈 놓기도 했고 주파수 때문에 지글지글 끌거나 화면에 비도 많이 내렸다.
그러다가 1976년 컬러TV가 세상에 널리 보급되면서 많은 변화를 주었다. 브라운관이 있어 TV 무게가 많이 나갔지만 색의 혁명을 일으켰다. 지금은 볼펜 두께의 평면TV와 LED TV가 선을 보이며 어디까지 변화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
TV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지만 역사는 TV만큼 앞서가지 못하고 있다. 한창 영업시간이어서 바쁠 텐데 잠시 잠깐 TV에 눈을 맞추는 이유는 뭘까. 많은 대통령을 오래된 TV를 통해 봤을 것이다.
처음에는 국민에게 꿈을 심어주고 희망을 줬지만 나중에 그렇지 못한 대통령이 많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일반 국민들의 삶은 정말 힘들다. 그래서 새 대통령에 거는 기대가 커서일 게다.
5년 뒤에 가게에 놓여있는 오래된 TV 속에 청와대를 나서는 대통령에게 국민이 큰 박수를 보내고, 오바마 미국대통령처럼 퇴임 후에 많은 지지를 받는 멋진 대통령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
"사장님, 우수(덤)요. 오늘 기분 좋으니까."
대파 거래처 할머니가 비닐봉지에 대파를 한주먹 더 넣어준다.
덧붙이는 글
월간잡지 첨단정보라인 6월호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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