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MBC, '리셋'할 방법은 이것
[돌아올까? 마봉춘④] 방송법 개정이 첫 단추, 청문회도 필요
지난 19일 MBC는 이른바 '반성 동영상'을 올린 막내 기자 등 7명에게 무더기 징계를 내렸습니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 YTN 조준희 사장은 자진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세상은 봄에서 벌써 여름으로 바뀌고 있지만, MBC는 아직 '겨울'인 듯 합니다. MBC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까요. 지난 '9년' 동안 있었던 '사람의 변화'를 짚어봤습니다. MBC 사람들,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 광장 가득 MBC노동자들의 사원증 2월 23일 오후 MBC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김장겸 보도본부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한 가운데,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본사앞 광장에서 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김연국) 조합원들이 규탄집회를 열었다. MBC사옥앞 광장에는 조합원들의 이름이 적힌 대형사원증이 놓여 있다. 이들은 김장겸 보도본부장에 대해 '2011년 이후 MBC 뉴스 파탄의 주역이자 총책임자'라며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 누락' '문재인 의원 변호사 겸직 대형오보' '세월호참사 유가족 향한 막말' 등을 지적했다. ⓒ 권우성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MBC 정상화'를 이야기했다.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이어져온 MBC 사태가 전환점을 맞을 거라는 기대가 많다.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문제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처럼은 못 할 것"
MBC는 공익법인인 방송문화진흥회(아래 '방문진')가 주식의 70%를, 나머지 30%는 정수장학회가 소유하고 있다. 대주주인 방문진이 MBC 사장 선임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방문진 이사회는 청와대·여당·야당이 각각 이사를 3명씩 추천하게 돼있다. 사실상 여당이 6명의 이사를 추천하고 다수결로 MBC 사장을 선임하는 구조다. 이렇게 이사회가 MBC 사장 인사를 쥐고 있어, 방문진 이사가 바뀌지 않는 한 MBC 사장은 물론 MBC 경영진을 교체하기 힘들다.
김장겸 현 MBC 사장은 지난 2월 취임해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았다. 김 사장을 임명한 방문진 이사진들의 임기도 1년 반 정도 남은 상태다. 이들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현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렇다고 '정연주 전 KBS 사장'의 사례를 반복할 수도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임명된 정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당시에도 임기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정 전 사장에게 사퇴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정 전 사장이 거부하자 정부 차원에서 국세청과 검찰을 동원해 배임혐의로 그를 기소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정 전 사장은 15개월 임기를 남겨두고 사장직에서 내려왔다. 이는 공영방송 사장이 정권에 좌지우지된 사례로 남았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부가 현 사장을) 쫓아낼 수 없고, 쫓아내려면 KBS 정연주 전 사장의 케이스를 밟아야 하는데 이는 좋은 방안이 아니다"라면서도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이야기 해 온 것이 있으니 이명박, 박근혜 정부처럼은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법 개정안' 통과, MBC 리셋으로 가는 합법적 길
MBC 사태에 대한 해결책으로 '방송법 개정안' 통과를 말하는 목소리가 많다. 방송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시작과 함께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발의했다. 공영방송 이사 정수를 9명에서 13명으로 늘려, 여당 추천과 야당 추천 이사 수를 기존 6대3에서 7대6으로 바꾸고 이사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사장을 선임할 수 있게 하는 '특별다수제' 도입이 주 내용이다.
무엇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방문진 이사회를 새로 구성해야한다. MBC 사장을 임명·해임할 수 있는 방문진 이사들이 바뀌어, 현 MBC 경영진들도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박성호 MBC 해직기자는 "만병통치약은 없다"면서도 "일단 국회에 가 있는 방송법 개정안의 처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박 기자는 "최선은 아니지만 일단 현 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며 "이를 통해 MBC를 '리셋'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 개정안이 통과돼야만 해직자 문제도 빛을 본다. 해고자 복직은 사장이나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라 대통령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개정안이 통과돼 방문진 이사진을 바꾸고 MBC 경영진을 교체해야 막혀있는 해직자 복직 문제도 풀릴 수 있는 것이다.
▲ 언론노조 MBC본부 '분노의 날' 지난 2월 23일 오후 MBC대주주 방송문화진흥원(방문진)이 김장겸 보도본부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한 가운데,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본사앞 광장에서 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김연국) 조합원들이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특별다수제' 도입... 청문회 개최 필요성도 제기
정부가 공영방송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제한하는 조치도 필요한데, 방송법 개정안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아래 'MBC노조')와 언론학계의 중론이다. 여야가 6대3으로 방문진 이사장을 추천하고 다수결로 각종 사안을 결정하는 지금 구조에선 이사의 수가 더 많은 여당 쪽이 사장 임명 같은 주요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갖기 때문이다.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여야 구성이 7대6으로 바뀌고 사장 임명을 의결할 때 이사 2/3의 동의를 받아야 해, 이전처럼 여당이 단독으로 사장을 임명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국회 차원에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지난 9년 동안 MBC,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을 정권이 장악했고 그 결과 어떤 보도가 쏟아졌는지 실체를 규명하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진봉 교수는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치적 색깔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 사장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도 "(지난 9년 동안) 언론이 얼마나 타락했고, 정권이 얼마나 언론을 쥐고 흔들며 장악했는지 국민이 알아야 하며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청문회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국회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개정안 통과를 반대한 이후 법안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직 (정권이 교체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특별히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MBC) 정상화를 해야 한다. 어느 정권에 친한 언론을 원하지 않는다. 언론다운 언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전했다.
"구겨진 종이를 다시 펴도 자국은 그대로 남아있다."
MBC 기자 A씨는 현재의 MBC를 '구겨진 종이'에 비유하며 "정권이 바뀌고 사장이 바뀌어 다시 편다고 펴도 자국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MBC가 입은 내외부적 상처와 전·현직 경영진 처벌문제, 노동조합과 경력직 기자들과의 화합 등 산적한 문제들을 다 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자국은 남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종이를 펴는 방법에 따라 남은 자국의 정도는 달라질 수 있고 그 종이로 충분히 다른 미래를 그릴 수 있다. 구겨진 MBC를 원상태로 최대한 되돌리는 일은 MBC노조와 언론학계가 말하는 '방송법 개정안' 통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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