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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치고 싶은 나른한 날, 내 삶을 돌아보게 한 진주 여행

진주 망경동성당 형구돌을 찾아서

등록|2017.05.22 15:51 수정|2017.05.22 15:51

▲ 옛 진주역 광장 한쪽에는 도로원표라 적힌 선돌이 있다. 신의주 734.5km, 서울 375.2km, 목포 246.7km 괜스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 김종신


싱거운 날이다. 소금을 치고 싶은 나른한 날이기도 했다. 지난 14일, 6일 근무 후 맞은 휴일. 경남 진주시 하대동 집을 나와 뭘 해도 밍밍하니 재미없는 날, 슬그머니 옛 진주역으로 향했다.
 

▲ 옛 진주역은 음식점으로 변했다. ⓒ 김종신


옛 진주역 광장이었던 한쪽에는 도로원표라 적힌 선돌이 있다. 신의주 734.5km, 서울 375.2km, 목포 246.7km 괜스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볕이 따스하게 내리는 긴 의자에 밤새운 노숙자가 햇살에 샤워하듯 기지개를 켠다.
 

▲ 1925년 경전선과 호남선을 개통하면서 당시 진주역에 만든 출입구 2개를 나란히 아치형으로 있는 ‘진주역 차량정비고’. ⓒ 김종신


냉면과 생선구이 집으로 변한 옛 진주역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기차가 지나지 않는 길에 비둘기 떼들이 먹이를 쫓아 종종거린다. 비둘기 무리는 내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고 제 할 일만 한다. 비둘기 떼를 지나자 "컹컹" 사냥개처럼 생긴 개가 나를 보고 경계심을 소리로 드러낸다. 또 다른 개 한 마리는 은행나무에 걸쳐 기다랗게 옆으로 매인 줄을 따라서 오며 짖는다.
 

▲ 근대문화유물인 ‘진주역 차량정비고’는 이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독특한 분위기로 인해 지역 사진가들에게 알려진 이색적인 사진 명소였다. ⓒ 김종신


걸음을 멈춘 곳은 출입구 2개를 나란히 아치형으로 있는 '진주역 차량정비고'다. 1925년 경전선과 호남선을 개통하면서 당시 진주역에 만든 것이다. 붉은 벽돌 벽면에는 한국전쟁 때 총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독특한 분위기로 인해 지역 사진가들에게 알려진 이색적인 사진 명소였다. 지금은 주위에 철조망으로 접근을 막았다.
 

▲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버려진 경전선 철길은 지금 학생들과 진주시민들의 즐거운 자전거 길이 되었다. ⓒ 김종신


다시 옛 진주역 밖으로 나와 천전동 주약철도 건널목 삼거리로 향했다. 이곳은 천전동과 가호동을 연결하는 최단거리 구간의 시작점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버려진 철길은 지금 학생들과 진주시민들의 즐거운 자전거 길이 되었다.
 

▲ 옛 진주역 뒤편 폐선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천주교 망경동성당이 나온다. ⓒ 김종신


옛 철도 건널목을 지나 옛 철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었다. 붉은 장미 넝쿨이 반기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천주교 망경동 성당이다. 주일을 맞아 미사 봉헌하러 오는 이들로 성당 입구는 분주하다.
 

▲ 천주교 진주 망경동성당 ⓒ 김종신


성당으로 가지 않고 입구에서 바로 지하로 내려가는 지하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바로 '돌'을 보러 가기 위해서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장미 넝쿨 뒤편에 있는 이 돌은 1866년 조선 조정(朝廷)에서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을 학살한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잔혹하게 처형하기 위해서 조정의 지시로 고안된 교수형 모양의 형구 돌이다.
 

▲ 진주 망경동성당에 있는 형구돌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한쪽에 있다. ⓒ 김종신


2016년 7월 3일, '형구돌'을 설치하고 축복했다. 형구돌은 2년 전 진주시 주약동 산자락 공사 현장에서 돌을 예사로 보지 않은 천주교 신자에 의해 발견했다.
 

▲ 진주 망경동성당에 있는 형구돌은 가로 60㎝, 세로 47㎝, 두께 30cm의 둥글납작한 형구돌은 가운데 중앙에 지름 20㎝ 구멍이 나 있다. 천주교 신자들을 더 쉽게 사형 집행하도록 만든 도구로 올가미 밧줄을 사형수의 목에 걸어 가운데 구멍 뒤에서 지렛대를 이용해 죽을 때까지 잡아당기는 형구였다. ⓒ 김종신


가로 60㎝, 세로 4㎝, 두께 30cm의 둥글납작한 형구 돌은 가운데 중앙에 지름 20㎝ 구멍이 나 있다. 구멍은 깔때기처럼 점차 좁아져 뒤쪽에는 5㎝로 작은 구멍이 뚫려있다. 천주교 신자들을 더 쉽게 사형 집행하도록 만든 도구로 올가미 밧줄을 사형수의 목에 걸어 가운데 구멍 뒤에서 지렛대를 이용해 죽을 때까지 잡아당기는 형구였다.
 

▲ 형구돌 구멍에서 바라본 예수상 ⓒ 김종신


구멍에서 바라보이는 예수님은 평온하게 두 손을 벌려 반긴다. 문득 이 형구 돌을 보면서 지난해 당시 나와 같은 마흔다섯에 죽음을 선택했던 순교자 정찬문 안토니오가 떠올랐다.
 

▲ 진주시 사봉면에 있는 순교자 정찬문 안토니오 묘소 ⓒ 김종신


진주시 사봉면 묘소 앞에서 모진 고문 속에 천주교를 버리고 목숨을 구걸하라는 종교 배반과 알고 있는 천주교 신자를 털어놓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배신을 마다하고 기꺼이 죽음을 맞았는지 물었다.
 

▲ 진주 망경동 성당에 있는 형구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 하루 꼬박 힘들어도 다시 빛나는 삶을 위해 열심히 살라’라며 당부한다. ⓒ 김종신


형구 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 하루 꼬박 힘들어도 다시 빛나는 삶을 위해 열심히 살라'라며 당부한다. 또한, 나에게 묻는다. 불혹의 나이, 유혹에 흔들림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덧붙이는 글 경상남도 인터넷뉴스 <경남이야기>
<해찬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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