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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도 위로해주세요

[빼앗긴 숨 -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 ①] 새 정부의 해결방안을 기대하는 피해자와 가족들

등록|2017.05.23 14:33 수정|2017.05.23 14:33
'안방의 세월호'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병'으로 일컫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환경 비극입니다. 피해자가 나온 지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지도 6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건의 전체 진상, 피해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등과 관련해 해결된 부분보다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 속에 지내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시대를 맞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빼앗긴 숨-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란 연재물을 공동으로 기획해 10여 차례 싣습니다. 연재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다룰 것입니다.

여기엔 피해와 진상 규명, 그리고 피해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등이 포함됩니다. 또 정부와 국회, 사법당국, 전문가, 시민사회, 기업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겠습니다.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눈물의 편지도 몇 차례 싣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기자 말

지난 5월 18일 광주 망월동 5.18국립묘지에서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1만여 참석자들은 손에 손을 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마음껏 불렀다. 올해 37살이 된 김소형씨는 자신이 태어나던 날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진 아버지를 그리는 눈물의 편지를 울먹이며 읽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함께 울었다.

김씨의 아버지는 1980년 5월 18일 태어난 딸을 보러 완도에서 광주로 왔다가 사흘 뒤 계엄군의 총탄에 29살의 짧은 생을 마쳤다. 연단을 내려와 자리로 가는 김씨를 문 대통령이 쫒아가 뜨거운 포옹으로 위로했다. 정말 가슴 뭉클한 공감과 감동의 장면이었다. 국가의 폭력으로 아버지를 잃은 김씨는 그때서야 국가로부터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받았다.

같은 시각 경남 밀양에 사는 안은주씨도 이 장면을 TV로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 난 뒤 중증 폐질환에 걸려 죽음 일보 직전에서 살아났다.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다 2년 전 운 좋게 다른 사람의 폐를 이식받고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엄청난 수술비용으로 인한 빚더미와 그 뒤 후유증 때문에 몸과 마음의 고통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정부 피해 판정에서 3단계를 받아 기업, 정부 어디로부터도 위로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안씨의 눈물에는 김씨에 대한 공감도 있지만 자신은 여전히 국가로부터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회한도 담겨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대 거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족들'

▲ 지난 1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관계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습기 살균제 참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부터 소비자 제품화학물질 안전 참사를 '국가 재난'으로 인정하고 특별위원회를 재가동할 것과 관련 기업에 대한 형사 책임 강화 및 상한 없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및 집단소송제 도입 등을 촉구했다. ⓒ 연합뉴스


안씨를 비롯한 피해자와 가족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과 사과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이를 진짜 실천할지 의구심을 지니고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공약한 것을 차근차근 실천에 옮기는 것을 보고 자신도 조만간 김씨처럼 위로를 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SNS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안씨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7일 트위터에 올렸던 글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책에 자신의 사연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고의 환경·보건전문기자 안종주의 <빼앗긴 숨>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병, 가습기살균제 재앙의 진실을 다룬 책입니다. 우리 정치가 좀 더 일찍 관심을 가졌다면 피해가 그토록 커지지 않았을 테고, 피해자들이 덜 외로웠을 겁니다."

그는 문 대통령이 광주민주항쟁과 세월호 참사 뿐만 아니라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단단하게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최근 폐 이식 후유증으로 많은 양의 혈액을 다시 가는 등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새로운 날이 오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동안 너무나 무책임하게 딴청 부린 공무원들

▲ 가습기살균제 참사 경남네트워크는 30일 오전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제2의 옥시를 막기 위해' 전국 서명운동을 시작하고, 옥시 완전 퇴출,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법 제정에 힘을 모으자"고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피해자 안은주(왼쪽)씨가 참석했다. ⓒ 윤성효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최근 언론에서 별로 다루지 않자 안씨를 비롯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국가가 이 사건을 소홀히 다루지나 않을까하는 불안감을 지니고 있다. 분명 이 사건은 우리 역사에 기록될 전무후무한 성격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 사건의 발생과 진상 규명, 피해 배상과 피해 판정 과정에서 국가가 보여준, 너무나 안이한 자세 때문이다. 공무원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겠느냐는 것이다. 나라답지 않은 나라를 줄곧 보아왔고 공무원들은 딴 나라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첫 제품이 나왔다. ㈜유공(지금의 에스케이케미칼)이 '가습기메이트'란 이름으로 인체에 무해하다며 팔기 시작했다. 1995년 첫 피해자가 나왔다. 2006년부터는 피해자와 사망자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정부 당국이 알아차린 시점은 2011년 5월이 되어서고 그 원인을 알아낸 때는 그해 8월이었다.

현재 5천 명이 넘는 우리 이웃들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당했다고 정부에 신고했다. 사망자 신고자만 1천 명이 훌쩍 넘는다. 이 가운데 실제로 피해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정부의 모르쇠와 굼뜬 조처로 사건 발생 6년이 지나도록 전체의 20% 정도에 머물 정도로 소수에 그치고 있다. 실제 가습기살균제 노출자는 수백만 명에 이르고 피해자 또한 수만 내지 수십만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은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등 제품을 제조·판매한 가해 민간 기업에게서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 영세기업은 사건 직후 부도로 폐업해 피해자들이 단 한 푼의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2016년에는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수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사건의 전말에 대해 상당 부분 알게 됐다. 가해자들에 대한 단죄도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피해 판정은 아직도 중증 폐질환에 대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호흡기질환과 기타 질환에 대해서는 언제 어떻게 할지 오리무중이다. 전문가들은 판정 대상 질환과 판정 기준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환경부는 '전문가 의견 존중'을 핑계로 합의된 결과만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하세월이다. 사회적 합의에 의한 해결이 시급하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지금 분노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문재인 정부가 하루빨리 팔을 걷어붙이고 완전히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5월 10일 새 정부가 출범한 뒤 이들이 연일 광화문에서,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기자회견을 하고, 대통령에게 보내는 요구 사항을 낭독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세먼지나 4대강 등 다른 현안에 밀려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뒷방 신세로 전락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그들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해결해야 할 숙제들 산적해 있어

▲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지난 1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거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가습기살균제피해 엉터리판정을 규탄과 피해구제법안을 대폭 보안해 국회 법사위를 통과시킬것"을 촉구하고 있다. ⓒ 최윤석


가습기살균제 문제와 관련해 해결해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먼저 아직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설혹 이들이 피해를 신고해도 제때 판정을 해주지도 않는다. 피해 판정도 폐섬유화를 동반한 중증 폐질환에 국한하고 있다. 환경 행정이 너무나 굼벵이 행보를 하고 있다.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정부가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공감·소통형 환경 행정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대대적인 역학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동물 독성실험과 함께 피해 신고를 해온 사람과 가습기살균제 비노출자를 대조군으로 한 대규모 역학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수백 명 수준이 아니라 수천 명 수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피해 판정 대상 질환과 판정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수억, 아니 수십억 원의 연구비가 들더라도 이는 당장 해야 한다.

셋째, 유해 제품이 그렇게 오랫동안 무방비로 팔리게 된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공무원의 무사안일을 파헤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환부를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책임을 물을 사람이 있으면 책임을 묻고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려면 즉각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주요 정당들이 내놓은 가습기살균제 재발 방지공약 가운데 같거나 비슷한 것은 즉각 입법처리하고 정부나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행정명령이나 시행령 등을 고쳐 새로운 생활화학물질 관리 시대를 열어야 한다.

넷째, 현재 1단계와 2단계 피해 판정자에 대해서만 구상권을 전제로 한 구제 대상으로 삼는 원칙을 재고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그에 걸맞게 적어도 3단계 피해자까지는 피해구제를 해주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단계별 판정 방식이 아니라 가습기살균제 사용이 확실하고 살균제로 인한 질환 가능성이 있는 피해 신고자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해주는 방식의 판정을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한다.

다섯째,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수사 부실은 없었는지도 중요하다. 피해자 단체들은 가습기살균제 원료를 제조·판매하고 제품도 만들었던 에스케이케미칼과 옥시레킷벤키저 쪽과 결탁해 소송 과정에서 연구 내용을 왜곡·은폐했던 회사 쪽 법률 대리인 김앤장법률사무소 관계자들에 대한 재수사도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내용도 들여다보아야 한다.

6월 5일 환경의 날, 새 정부의 해결방안 발표 기대

생후 3일 만에 아버지 잃은 김소형씨,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생후 3일 만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끝으로 문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가족을 끌어안았듯이 이른 시일 안에 직접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만나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국가 책임 인정과 사과는 물론 문제 해결을 위한 새 정부의 의지와 해결을 위한 방안을 드러내고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오는 6월 5일이 세계 환경의 날인만큼 이날 가습기살균제를 비롯한 환경 피해를 입은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갖는 게 좋을 듯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미세먼지와 달리 많은 특정 피해자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세먼지, 4대강 문제와 같은 환경 재난 등과 함께 시급히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의 긴급 의제임이 분명하다. 다른 문제를 핑계로 더는 미룰 사안이 아니다. 미세먼지 해결이 매우 더디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성격이라면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마음먹기에 따라 새 정부 임기 내에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안종주씨는 가습기살균제 책 <빼앗긴 숨> 저자, 보건학 박사, 전 <한겨레> 보건복지전문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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