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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알면서도 프랜차이즈 창업하냐는 당신에게

[주장] 대한민국 프랜차이즈, 그 가혹한 팩트... 차기 공정위 위원장에게 바란다

등록|2017.05.25 16:57 수정|2017.05.25 16:57

▲ 피자집 사장님은 왜 공정위에 본사를 제소했나. ⓒ pixabay


지난 2014년경 프랜차이즈 피자집을 운영하던 저는 본사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비슷한 처지에 있던 자영업자들과 함께 '가맹점주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가맹 본사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제소했습니다.

가맹점주협회가 가맹 본사를 부당거래행위 등으로 공정위에 제소한 후 본사의 태도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가맹점주 단체가 설립되었음에도 인정할 수 없다며 대화를 거부하던 본사가 갑자기 이견을 좁혀보자고 하니, 본사가 생각보다 많이 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프랜차이즈 피자집 사장의 전쟁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본사는 이미 자신들의 행위가 도를 넘었음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본사가 불공정한 행위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대출까지 받아 투자한 가맹점주들이 그것을 모두 걸고 저항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과, 자신들과 비슷한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지금까지 이런 방법으로 무탈하게 잘먹고 잘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들이 그렇게나 무시하던 가맹점주들이 단체를 만들어서 자신들을 공정위에 제소한 겁니다. 이후 우리는 본사의 바뀐 태도와 제소 초기 공정위 담당자들의 비교적 긍정적인 응대에 '아직 이 나라의 법과 정의는 약자의 편'이라고 생각하며 드디어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에 매우 고무됐습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상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금방 해결될 것 같던 분위기는 조금씩 지지부진해졌습니다. 3개월이 넘게 흘렀을 무렵 본사는 예전의 고압적인 태도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공정위에서 최종 결정이 나기 몇 주 전, 세 번째로 열리는 본사와 가맹점주협회간 '협의회' 때 사장 대리로 나온 상무는 그 일정이 몇 주 전에 상호 협의하에 결정됐는데도 자신은 선약이 있어 나가야 하니 회의를 빨리 끝내 달라 재촉했습니다. 동석한 이사와 부장은 시종일관 무성의하고 빈정거리는 말투로 임했습니다. 급기야 화가 난 우리들이 이들의 태도에 강하게 항의하자 상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계속 불만이 많으신 것 같은데 여기서 그러지 마시고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국회를 가든지, 거 좋아하시는 시민단체나 언론 같은 데 가서 울고불고 하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우리가 알아보니 여러분들이 제소한 거 다 무혐의 처리된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때 그 모멸감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며칠 후 우리는 공정위 담당자들의 전화를 받았고 상황이 예상한 것과 반대로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정위 직원 한분은 아침 일찍 전화해, 우리가 제소한 약관 대부분이 프랜차이즈들의 관행이라며 우리만 그렇게 바꾸기는 어려우니 제소를 취하해 달라고 했습니다. 난 왜 그런 제소를 해야 했는지 조목조목 반박했고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서로를 설득하는, 교차점 없이 평행선만 달리는 통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자 그 담당자는 지쳐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장님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충분히 알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해결해 드리지 못하는 것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나를 설득시켰습니다.

그나마 이 담당자는 미안한 마음으로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또 다른 담당자의 태도는 본사만큼이나 무성의했습니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재계약때 본사가 계약서를 가맹단체와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바꾼다'고 하니 "계약서가 마음에 안 들면 계약 안하시면 된다"고 했습니다. 또 본사가 광고비 명목으로 가맹점주들에게서 수억 원의 돈만 징수하고 사용처에 대한 증빙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본사에서 이미 광고비 사용 내역을 보여줬다고 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했습니다. 

수년 치를 A4지 한 장에 정리한 집계표로 무엇을 검증할 수 있느냐고 항변하자, 담당자는 "우리는 법에 규정된 행위를 했느냐 안했느냐를 따질 뿐 그 행위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확인하는 기관은 아니다"라고 잘랐습니다. 통화 말미에는 "기업은 단체를 싫어한다. 그것이 기업의 생리인데 차라리 개인적으로 불만을 이야기하지 왜 단체를 만들었나? 그래 가지고는 협상이 안 된다"라는 친절한 조언까지 덧붙였습니다. 

너무 명쾌한, 요즘 애들 말로 '쿨 내 나는' 공정위 담당자분의 말씀에 난 눈물이 날뻔 했습니다. 가뜩이나 울고 싶은데 낯모르는 사람이 귀싸대기를 때려준 기분이라 할까요.

대한민국 프랜차이즈, 그 가혹한 '팩트'

가끔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과 관련된 기사가 포털에 뜨면 상당수 사람들은 동정 어린 댓글을 올립니다. 그런데 그 동정 어린 글 속에서도 또는 아예 대놓고 "대한민국에서 프랜차이즈의 '갑질'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나? 도대체 그걸 알면서 그 바닥에 뛰어든 사람이 문제 아닌가?"라는 글들이 적잖게 보입니다.

전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업이 버젓이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면 이건 국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요?

다 좋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우리 가맹점주들의 멍청함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래서 전 새로 임명되실 공정거래위원장님에게 외람되지만 한가지 부탁을 드립니다. 앞으로 프랜차이즈들의 가맹점 모집 광고에는 보험 모집 광고시 등장하는 주의 사항이나 담배나 약품의 포장지에 부작용을 표시하는 것처럼,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도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이 '주의사항' 몇 가지만이라도 명시되도록 조치해주시길 건의 드립니다.

'을에 공급하는 물품의 가격은 갑의 재량이므로 언제든지 마음대로 올릴 수 있음 '
'을은 매장 운영에 필요한 재료의 대부분을 반드시 갑으로부터 구매하여야 하며 그 종류는 언제든지 갑이 정하고 바꿀 수 있음'
'가맹점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제품 가격의 폭리 여부는 소비자의 여론에 따르나 갑이 을에게 판매하는 재료비의 폭리 여부는 규정할 수 없음'
'재계약시 계약서는 일방적으로 갑의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음'
'갑은 계약 약관에는 없는 사항도 상황에 따라 을에게 요구를 할 수도 있음'
'광고비 등 때에 따라 필요한 비용은 을에게서 징수하며 을이 원하면 그 사용내역을 보여줄 수는 있으나 검증은 불가함'
'갑이 시행하는 할인 및 각종 이벤트에 대해 을은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으나 반영한다는 보장은 없음'
'갑은 을의 매장을 수시로 방문하여 구석구석 뒤지고 매출장부를 들여다 볼 수 있으나, 반대로 을은 갑에 대한 어떠한 감사나 검증을 할 수 없음'
'갑의 귀책사유로 가맹 해지 시 갑이 정한 약관에 따라 반환금은 없거나 가맹비중 갑이 임의적으로 정한 일부만 반환함, 단 가맹점 귀책 사유 해지시는 갑이 정한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함'
'갑은 법정 공휴일을 준수하나 을은 불가함'

'을은 단체를 구성할 수 있으나 갑은 그 단체와 협상할 의무는 없음'

이렇게라도 '주의사항'이 전달된다면 당하는 사람들이 아마 덜 억울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면 어떻게 가맹점을 모집하냐고요? 그래도 가맹할 사람들은 합니다. 담배 갑에 흉측하고 혐오스러운 경고 사진을 붙였다고 담배가 안 팔리던가요? 인터넷을 뒤져 보니 계약이란 상호간 동등한 위치 그리고 간결하고 명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체결하는 것이라 하더군요, 그러하다면 긍정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정보 또한 명확하게 제공되어야, 그게 투명하고 공정한 계약 아닐까요?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소심한 주인공 '월터 미티'가 부조리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상상'처럼 저도 현실성 없는 '상상' 한번 해봤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위의 내용이 프랜차이즈 업계의 '현실'이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팩트'라는 겁니다.

문득 공정위에 본사를 제소할 무렵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오릅니다. 공정위에 제소한 서류를 어느 가맹거래사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분께서 천천히 살펴보시고는 이렇게 이야기하시더군요

"잘 만드셨는데... 기업에게 도덕 교과서를 들이대신 거네요..."

내가 바라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본사와 분쟁이 시작되고 1년이 흐른 후 우리 가맹단체의 주요 회원들 대부분은 강제로 가맹해지를 당하거나 매장을 헐값에 넘기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가맹본사는 가맹계약서(정보공개서 포함)의 약관들을 전보다 더 불공정하게 강화했습니다. 한달에 한두 번이라도 자율 휴무를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던 영업일수는 여전히 연중무휴에 머물렀습니다. 영업시간은 오히려 하루 12시간에서 13시간으로 늘었으며, 가맹점들의 사전 휴무신청의 절차는 더욱 까다롭게 바뀌었습니다. 본사가 가맹점들에게 공급하는 필수 구입 재료 종류도, 이전에 가맹점주들이 시중에서 자유로이 구매했던 제품 상당수를 반드시 본사로부터 구매해야 하는 '강제 품목'으로 바꾸었습니다.

한마디로 '혹 떼러 갔다가 혹만 하나 더 붙여' 나왔습니다.

본사는 '악'이고 가맹점주들은 '선'이라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존 롤스라는 철학자의 '사회적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하게 결정된 정책이 바로 사회 정의에 가장 가깝다'라는 고상한 '정의'에 대한 명문을, 우리나라의 최규석이라는 작가가 웹툰 <송곳>에서 무릎을 탁 칠정도로 정말 멋지게 해석한, 시시한 우리들을 위한 '정의론'.

"선한 약자를 위해 악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

우리는 더도 덜도 말고 바로 이런 공정거래위원회를 바랍니다.

참고로 전 현재 프랜차이즈와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가맹점주도 그렇다고 독립자영업자도 아닙니다.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래에 링크된 제가 그전에 올린 수기까지 읽어보시면 나름 재미지실 겁니다. 찰리 채플린 어른신의 말씀처럼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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