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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경기에 기미가요 틀었다면?

[U-20 월드컵 특집 - 꿈을 안고, 희망을 쏴라 ⑦] 우루과이-일본 경기에서 칠레 국가 틀어... 대형사고

등록|2017.05.25 09:23 수정|2017.05.25 14:04

▲ 24일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D조 일본 대 우루과이 경기. 우루과이 9번 니콜라스 시아파카세가 첫 골을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대한민국의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선수들이 입장을 마쳤고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부를 준비를 끝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애국가가 아닌 기미가요(일본의 국가)가 흘러나온다.

선수들은 물론 감독과 관중들까지 황당한 표정과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방송을 통해 지켜보는 축구팬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황당하지만, 분노의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월드컵이란 대규모 축제를 개최하는 국가가, 기본을 지키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상대 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았다.  

정중한 사과가 이루어질 때까지 러시아 월드컵 조직위원회에 항의해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는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닌 가정이다. 만약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러한 일을 당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봤다. 다름 아닌 U-20 월드컵을 개최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같은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가를 잘못 튼 것이 해프닝? 이건 대형 사고다

지난 2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우리나라 경기가 아님에도 수많은 관중이 들어찼다. 우리나라가 속한 A조 못지 않은 '죽음의 조'로 불리는 D조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남미 예선을 1위로 통과한 우루과이, 아시아 우승팀 일본, '우승 후보' 이탈리아, '다크호스'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만만찮은 팀들이 경쟁을 벌이는 조다.

오후 5시가 되자 이탈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기가 시작됐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각각 우루과이와 일본에 패배를 당했기에 승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경기는 싱거웠다. 이탈리아는 강력한 수비와 빠른 역습을 선보이며 2-0으로 승리를 거뒀다. 마지막 경기인 일본전을 잘 치러낸다면, 16강 진출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오후 7시 50분이 조금 넘어서면서 문제가 터졌다. 우루과이와 일본의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입장을 마쳤고, 국가가 울려퍼질 무렵이었다. 먼저, 우루과이 국가가 연주되겠다는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가 있었고, 국가가 흘러나왔다. 뭔가 이상했다. 우루과이 선수들은 국가를 부르지 않고 몸을 풀었다. 코칭스태프 역시 표정이 어두웠다.

경기장에 울려 퍼진 것은 우루과이와 같은 남미 소속인 칠레 국가였다. 단순한 실수로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큰 사고다. 대회 조직위원회가 실수를 파악하고, 일본 국가 연주 뒤 다시 우루과이 국가를 틀었지만 이 사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3일 전 똑같은 장소에서 우루과이의 경기가 열렸고, 당시에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또한 칠레는 이번 대회 참가국도 아니다. 남미는 우루과이를 포함해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 4개국만 참가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대륙의 국가 역시 성인 대회(32개국)보다 적은 24개국뿐이다. 그런데도 대회 조직위원회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절대 해서는 안 될 실수를 범했다.

승리로 분풀이한 우루과이, 이런 사건만 1년 새 두 번째

▲ 24일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D조 일본 대 우루과이 경기. 우루과이 9번 니콜라스 시아파카세가 첫 골을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루과이는 대회 조직위원회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흥분할 수도 있었지만, 침착함을 유지했다. 흔들릴 수도 있었지만, 냉정을 찾아 경기에만 몰입했다.

우루과이는 남미 우승팀다웠다. 전반 10분 만에 디에고 델라크루스의 압박과 슈팅이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했고, 안정적인 수비와 활발한 측면 공격을 앞세워 분위기를 주도했다. 세밀한 패스 축구를 앞세우는 일본과 중원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고, 전반 37분에는 선제골을 뽑아냈다.

페널티박스 우측 부근에서 볼을 잡은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가 달려 들어오던 니콜라스 스키아파카세를 향해 패스를 내줬고, 스키아파카세가 수비수 3명 사이를 뚫어내 슈팅까지 연결하며 득점을 뽑아냈다. 전반 44분에는 레알 마드리드 2군팀(카스티야)의 주전인 페데리코 발데르데가 멋진 프리킥을 선보이는 등 일본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일본은 장기인 패스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졌고, 결정력도 아쉬웠다. 전반 19분 만에 오가와 고키가 부상을 당하며, '15세 특급' 쿠보 타케후사를 조기 투입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쿠보는 후반 12분 수비수 2명을 따돌린 뒤 강력한 슈팅을 시도했고, 이와사키 유토를 향한 멋진 노룩 패스를 성공시키는 등 남다른 재능을 뽐냈지만, 득점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 24일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D조 일본 대 우루과이 경기. 일본의 쿠보 타케후사가 상대 문전으로 드리블 돌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루과이는 일본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낸 뒤, 후반 추가 시간에 추가골까지 터뜨렸다. 왼쪽 수비수 마티아스 올리베라의 절묘한 침투 플레이에 이은 강력한 슈팅이 코지마 료스케 골키퍼를 뚫고 골망을 흔들었다. 이로써 우루과이는 대회 2연승과 16강 진출의 기쁨을 맛봤고, 강력한 우승 후보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이날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앞서 열린 이탈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경기도 그랬고, 남미 우승팀의 저력을 뽐낸 우루과이와 일본의 맞대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경기력과 득점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우루과이의 국가 대신 칠레의 국가를 튼 대회 조직위원회의 대형 실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루과이는 1년 전에도 이와 똑같은 일을 경험했다.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열린 2016 코파 아메리카대회 조별리그 1차전 멕시코와 경기에서 국가 연주 실수가 나왔다. 이때도 우루과이가 아닌 칠레 국가가 연주됐고,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지면서 연주는 중단됐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당시 코파 아메리카 조직위원회는 "(인간이 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가 빚어졌다"라면서 우루과이 축구협회와 대표팀, 국민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했지만,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우루과이 축구협회는 성명을 내고 "이는 무례한 실수이며 우루과이 축구에 대한 모욕"이라며 조직위원회를 성토했다.   

윌마르 발데스 우루과이 축구협회장 역시 "경기 시작 전 국가연주는 매우 특별한 순간"이라면서 "이번 사건은 우루과이 축구협회와 대표팀, 국민을 욕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루과이 축구협회는 "대회 조직위원회가 우루과이에 돌이킬 수 없는 모욕을 끼쳤다"라면서 "어떻게 이 상황을 보상할 것인지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까지 남겼다.

우리나라는 2002 한일 월드컵을 포함해 FIFA가 주관하는 4대 이벤트 중 3개 대회를 치러낸 경험이 있다. 이번 U-20 월드컵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낸다면, 4개 대회 모두를 개최한 국가가 된다. 그래서 더욱 이번 실수가 뼈아프다. 기본적인 것만 지켰더라면, 나오지 않았을 실수다. 절대 나와서도 안 될 실수였다.

기니와 아르헨티나를 꺾고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한 신태용호도 중요하지만, 세계인이 지켜보는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더욱 대회 조직위원회의 반성과 사과, 재발 방지 약속이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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