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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배달앱 시장이 보여주는 독일 사회의 이면

유연해진 노동시장, 점차 편리해지는 배달 시스템... 그 뒤에는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다

등록|2017.06.01 11:43 수정|2017.06.01 11:42
유럽에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없고, 늦은 밤에 문을 여는 음식점 혹은 카페도 없다며 한국에 비해 살기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젠 이런 사람을 만나면 "도대체 언제적 유럽에 살았었냐?"고 반문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작은 도시나 시골 마을에서는 오후 6~8시 이후에는 슈퍼마켓도 열지 않는 환경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독일 주요 중소도시 그리고 대도시를 놓고 봤을 때는 다르다. 비교적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유럽의 사회 환경에 대한 생각은 그저 낡은 편견에 불과하다. 그 정도로 지난 수년 사이 유럽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독일 주요 도시들 그리고 수도인 베를린에서 음식 배달 시장의 성장세를 보면 그렇다. 이미 오래전부터 독일에선 배달이 가능한 음식점을 통해 전화 배달을 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에 발맞춰 등장한 리퍼란도(Lieferando), 리퍼헬드(Lieferheld) 그리고 피자.데에(Pizza.de) 등은 온라인을 통해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이 배달 플랫폼은 단순히 다양한 음식점의 메뉴를 한 홈페이지 안에 모아서 손님의 주문을 대행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각 음식점이 직접 고용한 배달부를 통해 음식을 알아서 배달했다. 게다가 시켜 먹는 문화가 썩 익숙한 문화는 아니었다.

이젠 독일에서도 일상이 된 배달 시스템

▲ 영국 런던의 딜리버루 배달부 ⓒ Mosieur J. [version 9.1]


2013년 런던에서 생겨난 세계적 스타트업 기업인 딜리버루(Deliveroo)는 2년 뒤 독일 시장에 진출한다. 2014년 뮌헨에서 생겨난 스타트업 기업인 푸도라(Foodora)는 2015년 리퍼헬드와 피자.데에를 인수하며 독일 주요 도시로 그 영향력을 넓혀갔다. 푸도라는 2016년 4월의 계약 규모가 1년 전에 비해 두 배가 될 정도로 성장했다. 딜리버루도 마찬가지다. 앱을 발매한 이후 매달 약 20% 가량 앱을 통한 음식 주문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도심 곳곳을 누비는 터키색 의상을 입고 가방을 맨 딜리버루의 자전거 배달부와 가방 그리고 푸도라의 핑크색 배달부 가방과 의상은 도시에서 당연한 일상의 풍경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전 음식 배달 플랫폼과 두 가지 새로운 음식 배달앱의 차이는 전자와는 다르게 후자는 손님에 입장에서는 주문을 대행해준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음식점의 입장에서는 직접 배달부를 고용할 필요 없이 배달앱에 고용된 배달부를 쓸 수 있다는 효율성 때문이었다. 손님과 가맹점의 입맛을 모두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 플랫폼 역할을 하는 앱이 그러하듯, 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간편하다. 지역을 선택하고, 지역 내 배달주문이 가능한 가맹점을 고른 뒤, 원하는 음식을 필요에 따라선 세부적인 요구사항과 함께 주문하는 방식이다. 음식 배달 문화에 좀 더 우호적인 사람들, 여행객 그리고 독일어가 불편할 수도 있는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대도시에선 손쉽게 클릭 혹은 터치 몇 번으로 시간 맞춰 배달시킬 수 있는 딜리버루와 푸도라의 등장은 큰 호응을 얻었다.

배달앱 시장은 커졌지만... 노동자의 상황은 좋지 않아

▲ 프랑스 리옹의 푸도라 광고 ⓒ Benoit Prieur


각자의 특징이나 가맹점의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두 배달앱은 손님과 더 유명한 음식점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독일 맥도날드 배달은 푸도라 혹은 딜리버루가 각 도시별로 겹치지 않게 나눠서 대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푸도라와 맥도날드의 파트너쉽 체결로 인해 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독일 전역의 맥도날드 매장 배달서비스는 푸도라가 대행하게 되었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음식배달 시장은 점점 더 커졌지만, 그 시장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배달부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앞서 언급했던대로 음식점이 직접 고용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배달앱 스타트업 기업과 배달부가 계약을 맺는 특수성 때문이다.

배달부는 음식 배달에 정해진 시간별 임금과 별도로 배달별 추가 수당을 받는다. 주말이나 밤 시간에도 보너스 수당이 주어진다. 여기에 손님이 배달부에게 주어지는 팁 또한 별도의 수익원이다. 2016년 기준으로 딜리버루의 배달부는 자영업자로 계약을 맺으며,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간당 7.5유로를 임금으로 받고, 푸도라는 직접 노동계약을 맺으며 시간당 9유로의 임금을 받는다.

시간당 얼마나 많은 배달을 할 수 있을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 이런 불안정성은 배달부들의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듯이, 배달이 몰리는 짧은 시간에 많은 배달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날이 좋으면 보통 외식을 즐기는 문화가 보편적이기에, 배달이 늘어날 때는 궂은 날씨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날씨에 자전거로 정해진 시간 내에 음식을 배달하는 데는 당연히 여러 위험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배달을 무리해서 하지 않는다면, 때로는 수 시간 동안 한 번의 배달도 못한 채 결과적으로는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경우도 발생한다.

편리함에 묻히는 근로조건, '긱 경제'의 이면

푸도라 혹은 딜리버루에서 일하고 있는 다수의 배달부는 당장 돈을 벌 직업이 필요하지만 거주권의 걱정이 없는 유럽연합 내에서 이주해온 젊은이들인 경우가 많다. 또한, 이 일을 고정적인 직업이 아니라 직장 혹은 학업 등 다음 단계를 위해 잠시 돈을 벌기 위해 거쳐가는 직업으로만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우버, 에어비앤비 등 그간 공유경제라고 불렸던 기업부터 아마존이나 이베이 같은 초국적 기업까지 '긱 경제' 혹은 임시직 경제(gig economy)로 불려야 할 기업들이 실제로 추구하는 모델이다. 자영업자로 근로자를 고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해당 국가의 까다로운 근로조건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다. 실업률은 감소하지만, 실제로 정규직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이 늘어나며 만들어지는 착시 효과인 것이다.

지난 18일 베를린에서 있었던 배달부연합 연대 사이클링 시위(Deliverunion Solidarity Cycle)가 있었다. 그리고 역시 최근에 영국 런던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도 배달앱에 고용된 배달부들의 시위가 있었다. 이러한 배달부들의 조직화와 더불어 배달앱은 그 열풍으로 인해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나마 조건이 나은 편이지만, 여전히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연합이나 연대도 없고, 시위도 할 수 없는 채로 때로는 계약서도 없이 법정 최저 임금도 못 받는 불법 노동은 꿈을 찾아 혹은 새로운 삶을 찾아 독일을 찾은 젊은이들의 노동력을 통해 채워지고 있다. 2015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상 수상작인 <빅토리아>(Viktoria)에서는 베를린의 한 카페에서 시간당 4유로 일을 하는 스페인 출신의 주인공 모습을 잠시 보여주기도 하였다. 2015년 독일 법정 최저임금은 8.5유로였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영화 속의 픽션이 아니라, 꿈을 찾아 베를린에 온 수많은 사람들이 마주한 실제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럽의 경직된 사회는 조금씩 유연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유연한 노동시장이 유지되는 것에는 경직된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여러 면에서 예전과 달리 편리해지고 있는 독일 사회와 긱 경제의 이면이다.
덧붙이는 글 이글의 내용은 경남PRIDE상품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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