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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통장 있다, 그 돈 장례비로 써라"

마지막까지도 자식들에 부담 주지 않으시려 애쓴 아버지

등록|2017.06.03 15:12 수정|2017.06.03 15:12

▲ 아버지. 지난해 5월 화순 적벽을 배경으로 찍은 모습입니다. ⓒ 이돈삼


"집 ○○○에 통장하고 도장 있다. 그 돈, 장례비로 써라. 내 장례 잘 치러라.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나 죽는다고 눈물 바람 하지 말아라. 형제들끼리 화목하게 잘 살아라."

아버지께서 타계하기 전, 몇 차례에 걸쳐 자식들한테 남긴 말씀입니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중환자실로 들어가시기 전에는 어머니한테 "그동안 밥 해주느라 고생했다. 고맙다"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속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병상에서도 당신이 돌아갈 묏자리까지 직접 챙기셨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자식들에게 부담 한 줌 안 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심지어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할 때면 '일당'까지 챙겨주셨습니다. 가끔은 송구스러울 만큼 용돈도 두둑하게 주셨습니다. 그 아버지께서 지난 24일 새벽,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 분향소. 지난 5월 24일 오전, 바로 차려진 분향소 모습입니다. ⓒ 이돈삼


저는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말을 못 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용서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뱉지 못했습니다. 그런 말을 할 면목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생전 아버지의 성격 그대로인지 모르겠습니다.

숨이 멎은 아버지의 몸이 빠르게 식어갔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달려온 운구차가 아버지를 모시고 어두운 밤길을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마음이 급해진 건 그때였습니다. 운구차를 급하게 쫓아갔습니다. 체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뵙고 싶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주검이 냉장실로 들어가기 직전, 다시 마주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입맞춤을 했습니다. 난생처음이었습니다. 한 번, 두 번, 또 한 번 더 입을 맞췄습니다. 마음속으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를 되뇌었습니다.

▲ 염을 마친 아버지. 입관에 앞서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가 흐느끼고 계십니다. ⓒ 이돈삼


▲ 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처. 지난 5월 26일 담양 선영에서 셋째 며느리가 흙 한 삽을 올리고 있습니다. ⓒ 이돈삼


분향소가 차려졌습니다. 아버지 영전에 향을 피우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당신을 위해 살지 않으셨습니다. 자나 깨나 자식을 위해 사셨습니다. 마지막 숨을 내쉬는 그 순간에도 자식만을 생각하며 "눈물 바람 하지 말고, 화목하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조문객들이 다녀가고, 늦은 밤이 되면 연거푸 술을 마셨습니다. 맨정신으로 앉아있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껏 술에 취해본 적이 없었지만, 취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취한 몸을 이끌고 아버지의 영정 앞에 엎드렸습니다. 영정 속 아버지의 눈과 마주치자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향을 피우고, 겨우 두 번 절을 하고 엎드려 울었습니다.

영원히 다른 세상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염을 할 때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아무 말 못 하고, 눈시울만 적셨습니다. 아버지의 차가운 얼굴을 두 손으로 만져보고, 입술에 저의 온기를 전하며 영면을 빌었습니다.

▲ 아버지의 안식처. 지난 5월 26일 아버지의 둘째 아들이 묘지 조성 작업을 거들고 있습니다. ⓒ 이돈삼


▲ 부디 영면하시길... 지난 5월 26일 아버지의 묘 앞에서 손녀들이 절을 올리고 있습니다. ⓒ 이돈삼


아버지는 90년을 사셨습니다. 일찍 세상을 달리한 분들에 비하면, 오래 사셨습니다. 하지만 황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셨으니까요. 지난해엔 고흥 거금도, 화순 적벽에도 다녀오셨습니다. 지난 4월엔 세월호가 옮겨진 목포신항에도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지난 9일 대통령 선거 날엔 병원에서 외출해 소중한 주권까지 행사하셨습니다. 초기 방광암을 치료하던 중 병세가 악화돼 급성 간암에 폐렴까지 겹친 게 결정타였습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지 닷새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산천이 짙푸르게 물든 봄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동생 옆자리에 아버지를 모시고 밤하늘의 초승달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제가 유별나게 좋아하는 초승달입니다. 이왕지사,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받고 가신 데 대해 위안을 삼았습니다. 이제 자식들 걱정 다 털어버리시고, 아버지께서 평소 좋아하시던 여행 많이 하시길 빌었습니다.

▲ 아버지의 마을 친구분들. 지난해 4월 고흥 거금도 여행 때 김일체육관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오른 쪽에서 네 번째가 아버지입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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