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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과세 또 2년 유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장 주도... 개신교계 시민단체 반발

등록|2017.06.02 11:57 수정|2017.06.02 11:58

▲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서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첫 회의에서 김진표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종교인 과세 유예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종교인 과세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시기인 지난 2015년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법안 소위원회가 종교인 과세를 시행하는 내용이 담긴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법제화됐다. 1968년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이 "성직자에게도 갑종근로소득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지 47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여야는 종교인 과세 시행 시기를 2018년 1월로 유예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정치권은 2016년 총선거, 그리고 2017년 대통령 선거 등 굵직한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따라서 시행시기를 2018년으로 정한 건 종교인 과세 법제화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을 차기 의회 및 정부에 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총선은 예정대로 치러졌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지난 9일 대통령 보궐 선거가 치러져 새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종교인 과세는 새 정부에서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종교인 과세를 2020년으로 늦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만들어 서명받고 있다는 소식이 지난달 25일 <한겨레>를 통해 전해졌다.

김 의원은 28일에도 재차 "(관련 당국이)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각종 갈등과 마찰이 불 보듯이 일어날 것"이라며 종교인 과세 유예에 힘을 싣는 발언을 내놓았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문재인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김 의원의 발언은 새 정부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진표 위원장, 보수 대형교회 이해 관철시키나 

사실 종교인 과세 유예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종교인 과세에 대해 아래와 같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과세당국이 각 종교, 종단 등과 긴밀히 협의해 종교인 소득에 포함되는 다양한 소득원천과 지급방법에 대해 상세한 과세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시행 유예 등을 비롯한 다각적인 정책 방향을 검토해 추진하겠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의 입장도 과세 유예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따라서 어느 후보가 집권했든 종교인 과세는 유예를 피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뒷맛은 개운치 않다.

종교인 과세 유예를 주도하는 김 위원장은 "과세 대상 소득을 파악하기 쉽지 않고 홍보 및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종교계에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대로 종교 단체의 과세 대상 소득을 파악하기 쉽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가톨릭의 경우 1994년부터 교구별로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해 왔다. 개신교 교파인 대한성공회 역시 마찬가지다.

개신교계의 경우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경영연구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바른교회아카데미, 재단법인 한빛누리 등 5대 개신교계 시민단체가 꾸린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은 삼화회계법인의 도움을 받아 2014년부터 목회자 소득세 신고 지원 활동에 나선 바 있다. 소득세 신고를 하려 해도 인력이나 정보가 부족한 교회나, 스스로 세무 당국에 소득을 신고하려는 목회자가 있다면 이 단체를 통하면 쉽다.

이에 종교인 과세 유예 소식이 전해지자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이 단체는 29일 논평을 내고 "이제 와서 단순히 준비가 안 되었다고 유예를 주장하는 것은 공평 과세로 국민화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라면서 "지금이라도 국세청과 종단이 함께 과세기준을 상세하게 만들면 된다"고 강조했다.

1968년 이후 갑론을박 이어진 종교인 과세

홍보와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앞서 지적했듯 종교인 과세가 처음 공론의 장에 오른 시점은 1968년이다. 이후 47년 동안 종교인 과세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다 2015년에 와서야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그동안 종교인 과세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특히 박근혜 전 정권이 이를 본격 추진하면서 종교인 과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됐다.

기획재정부가 종교인 과세를 포함한 '2013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던 당시 개신교계 시민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국민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때 전체 응답자의 85.9%, 그리고 개신교를 종교로 둔 응답자의 71.8%가 종교인 과세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종교인 과세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개신교계, 특히 보수 대형교회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번에도 보수 기독교계 연합체인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대표회장 정서영)은 31일 논평을 내고 "종교인 과세는 지난 정부에서 2년 유예 기간을 둔 후 내년 1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정부는 시행에 따른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개선안을 내놓거나, 종교계와의 의견을 좁히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지난 정부가 발표한 대로 당장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경우 그 혼란과 마찰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이미 많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있거나 납부 대상이 아닌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이 80% 이상이다. 그런데도 마치 모든 목회자들이 납세의 의무를 거부하고 호의호식하고 있는 것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일부에서 종교인 과세 예외를 우리 사회의 오랜 적폐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정치권은 종교인 과세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기독교계, 특히 보수 기독교계의 표를 의식해 몸을 사려왔다. 공교롭게도 김진표 의원은 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인 종교자유정책연구원(종자연)은 30일 성명을 냈다. 종자연은 성명에서 김 의원을 정조준해 이같이 밝혔다.

"이미 대선 과정에서 김진표 의원은 개신교계를 향해 종교인 과세를 유예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힌 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의 민심에 힘입어 출범한 문재인 정부이기에 종교 권력 앞에서도 당당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5년 밑그림을 그린다는 국정기획 자문위원장에 임명되었고, 급기야는 보수 개신교계의 입장을 그대로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반영하려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종교인 과세는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국정과제로 종교인에 대한 특혜는 국민의 뜻에 어긋난 적폐 중의 하나가 아니었던가! 이렇게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호는 헛구호가 될 우려가 높다."

종교인 과세는 전 정권이 남긴 얼마 되지 않은 긍정적 유산이라고 본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연속성이 필요한 정책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발굴해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가야 한다. 종교인 과세가 그중 하나다.

이와 관련,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31일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되는 종교인 과세를 위해 하반기 설명회를 여는 등 막바지 실무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환영할 일이다. 종교인 과세는 예정대로 시행하는 게 맞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인 과세 유예는 안 될 말이다.
덧붙이는 글 미주 한인매체 <미주 뉴스앤조이>에 동시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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