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꼼수에서 시작된, 군대 내 '개죽음'
[헌법 쉽게 읽기 21] 국가 위해 희생했지만 손해배상 청구할 수 없는 사람들
헌법 제29조 제2항 :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다소 불편한 표현이지만 '군대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건 중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의문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망사고에 대한 적정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가 크다.
군에서의 죽음이 적정한 보상이 받을 수 없는 이유는 헌법 규정 때문이다. 헌법 제29조 제2항은 군인 등이 전투나 훈련 중 사망하였을 경우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는 매우 특이한 조항이다. 같은 조 제1항이 국가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바로 다음 항에서 군인 등의 경우는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사항을 규정하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항은 하위 법률에 위임하는 최상위 규범으로써 헌법의 특징을 고려해봐도 군인 등의 배상청구권과 같은 개별적 사항을 직접 헌법이 제한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사망 2명 - 중상 2명... 국가 대상 손해배상청구는 원활치 못했다
▲ '예비군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한 다음날인 2015년 5월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강동송파예비군훈련장 내 사격장에서 사고현장이 공개 되고 있다. ⓒ 이희훈
헌법 제29조 제2항에 따라 실제로 적정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현실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2015년 5월 13일 서울 강남의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훈련 중이던 예비군이 총기를 난사해 아수라장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장 왼쪽 1사로(사격 구역)에서 사격을 준비 중이던 최아무개 예비군은 표적을 향해 한 발을 쏜 후 갑자기 일어서 1사로 부사수(다음 사격을 준비하는 사격수)와 오른쪽 2, 3, 5사로 예비군들에게 총탄 7발을 난사했다.
그는 총기 난사 직후 아홉 번째 총탄을 자신의 머리에 쏘아 자살했다. 부상자들은 삼성의료원, 국군수도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이송됐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박아무개 예비군은 머리에 관통상을 입어 이미 현장에서 사망한 상태였다. 윤아무개 예비군도 폐 등에 총상을 입어 응급수술을 했지만 과다출혈 및 허혈성뇌손상으로 같은 날 오후 9시 40분께 사망했다. 나머지 두 명도 폐와 얼굴에 총상을 입어 중상을 피하지 못했다.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해당 예비군 훈련장에는 총 20개의 사로가 있었는데, 사고 당시에는 20개 사로를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매뉴얼대로 한다면 각 사로마다 1명의 사격통제요원이 배치돼야 했지만, 실제로 배치된 사격통제인원은 6명뿐이었다.
더욱이 사격통제요원 6명 중 3명은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등병이었다. 때문에 총기를 들고 일어나는 최아무개 예비군을 사격통제요원이 즉시 제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더해 총구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돌릴 수 없도록 총기를 거치대의 안전고리에 연결해야 함에도 담당 조교는 안전고리 결합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고리가 연결됐거나 사로 당 1명의 사격통제요원이 배치됐다면 예비군 훈련장의 총기난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군 당국의 명확한 잘못이 있었다. 그리고 2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은 명확한 피해도 있었다. 국가가 손해배상청구를 피하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은 원활히 진행되지 못했다. 헌법 제29조 제2항 때문이었다. '향토예비군 설치법' 제9조 제1항은 "예비군대원으로 동원되어 임무수행 또는 훈련 중에 부상을 입은 사람과 그 가족 및 사망한 사람의 유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또는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상 대상자로 한다"라고 규정돼 있었다.
왜 군인 등의 국가배상을 제한하는 걸까
▲ 지난 2014년 12월 2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306보충대에서 입영장정들이 공개전산부대분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앞서 살펴보았듯, 헌법 제29조 제2항은 군인 등이 다른 법률을 통해 보상을 받을 경우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있다. 때문에 피해를 입을 예비군들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나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으므로 그에 따른 배상금 액수 등과는 무관하게 국가를 상대로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유독 군인 등만 국가배상청구권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이 형식에 어긋나면서까지 군인 등의 국가배상을 직접 제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같은 의문은 헌법 제29조 제2항의 연혁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헌법 제29조 제2항은 1972년, 제8호 헌법에서 처음 도입됐다. 제8호 헌법은 소위 '유신헌법'이라 불린다. 유신헌법은 박정희 정권이 영구집권을 노리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도입해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토론 없이 선출하도록 규정한 매우 목적성이 강한 헌법이었다. 그리고 197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중요하다. 당시는 1965년부터 시작된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 막바지였다. 한국은 이듬해인 1973년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한국은 베트남 파병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경제적 원조를 받는 등 경제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한국의 베트남 파병의 결정적 계기가 된 브라운 각서의 주요 내용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베트남전의 상이군인이나 전사자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국은 베트남에 총 32만여 명의 군인을 파병했다. 이중 5000여 명이 전사했고 1만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때문에 이들이 모두 국가배상을 청구한다면 적지 않은 금액의 지출이 예상됐다.
박정희 정권은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시작한 직후인 1967년, 국가배상법을 개정해 군인 등의 국가배상을 제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당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대법원 1971. 6. 22. 선고 70다1010 전원합의체 판결). 헌법재판소가 1988년 개소하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대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맡고 있었다.
대법원의 결정까지 무시할 수 없었던 박정희 정권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곧 묘수를 찾아냈다. 법률이 헌법에 위반된다면 법률 자체를 헌법에 넣어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헌법이 헌법을 심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헌법 제29조 제2항(당시는 제26조 제2항)은 1972년, 유신헌법과 함께 헌법에 들어오게 됐다.
그런데 헌법 제29조 제2항에는 헌법의 형식 외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미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에서 기존 헌법체계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조항을 헌법에 삽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모든 법률의 규율하고 국가의 정체성의 규정하는 최상위 규범으로 통일된 체계성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이미 다른 헌법 조항들과 충돌되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명된 조항을 그대로 헌법에 삽입한다는 것은 헌법 스스로 헌법의 체계성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문제의 조항 '헌법 제29조 제2항'... 시작은 '유신'이었다
실제로 헌법 제29조 제2항의 위헌성이 문제되기도 했다. 1993년 6월 10일 훈련 중 포탄의 폭발해 예비군 1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역시 강남 예비군 훈련장 사건과 동일한 이유로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적정한 배상을 받을 수 없었다.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한 유가족들은 헌법 제29조 제2항가 자신들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제한한다며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위헌심사의 대상이 되는 규범은 '법률'이며, 여기서 '법률'이라고 함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제정된 이른바 형식적 의미의 법률을 의미하므로, 헌법의 개별규정 자체는 헌법소원에 의한 위헌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면서 각하했다(헌재 1996. 6. 13. 94헌마118 등).
헌법 제5조 제2항은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한다고 규정한다. 헌법에 따르면 군인은 국가를 지키는 신성한 의무를 수항하는 사람이다. 국가를 위한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일 것이다. 국가가 국가를 위해 희생당한 자를 돌보지 않는다면 아무도 국가를 위해 희생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헌법까지 고쳐가며 국가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에 대한 보상을 막고 있는 것이다. 1972년 유신헌법은 헌법으로써의 정당성을 상실한 헌법이라고 하더라도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인 현행 헌법까지 해당 조항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정상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87년 개헌 이후 30년이 넘도록 개헌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행 헌법이 개정된다면, 헌법 제29조 제2항은 가장 먼저 삭제돼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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