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야기에 안주머니 수첩 꺼내든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 여야 대표·원내대표 면담... '화기애애'했지만 국회는 심상치 않은 기류
▲ 박주선 "이낙연 총리, 문 대통령과 인사 장면 인상적이데요"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한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와, 전날 이 총리 임명장 수여식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나누던 장면을 화제삼아 환담하고 있다. ⓒ 남소연
"어제(5월 31일) 임명장 수여식이 인상적이더라.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며) 원래 인사를 그렇게 하는 건가?"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 다음 날인 1일 국회를 찾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건넨 첫마디다. 박 위원장은 양 손으로 인사하는 모습을 표현하며,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이 총리에게 임명장을 주며 허리를 90도로 숙인 장면을 거론했다. 이러한 박 위원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회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막걸리로 이 총리와 공감대를 나눴다.
이낙연 국무총리 : "꼭 정해진 회의 뿐만 아니라 비공식적 소통도 많이 하려고 한다. 총리 공관이 역사상 막걸리를 가장 많이 소모한 공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다른 재주는 없어도 그 재주는 있다. (중략) 노 원내대표와 저는 같은 막걸리 집을 단골로 둔 관계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 "(중략) 제가 총리실 막걸리 맛을 보고난 후에 총리실에 없는 막걸리 한 통을 갖다드리도록 하겠다."
야당에 허리 숙여 "큰 결단 감사"
▲ 이낙연 총리의 '폴더인사'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한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가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만나 허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이 총리는 이날 국회를 찾아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대표·원내대표를 연달아 만났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당 대표 권한대행)는 "이 총리 임명은 문재인 정부의 독선"이라며 만남을 거절했다(관련기사 : 정우택의 몽니? "이낙연 방문 요청, 안 만나겠다").
이 총리는 오전 9시 45분부터 약 2시간 동안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 김동철 원내대표(이상 국민의당), 주호영 원내대표(바른정당), 심상정 대표, 노회찬 원내대표(이상 정의당), 추미애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이상 더불어민주당)를 차례로 만났다.
분위기는 대체로 부드러웠고, 특히 이 총리는 야당과의 만남에서 농담을 던지거나 과거 인연을 거론하며 "정부가 더 낮은 자세로 야당을 섬기고 국민의 뜻을 잘 받들겠다"라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박주선 위원장을 만나 "박 위원장은 제가 스무살 어린아이였던 시절부터 늘 흠모하고 따르던 형님이다. 앞으로 그런 마음가짐으로 계속 기대며 부탁 드리겠다"라고 말했다.
또 이 총리는 주호영 원내대표와의 만남에 배석한 박인숙 바른정당 의원을 향해 "박 의원은 선천적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난 제 조카의 의사였다. 박 의원 덕분에 제 조카가 살아나 곧 목사가 될 것 같다"라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 이낙연 총리 맞이한 '매너' 심블리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한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를 맞이하며 손수 의자를 빼주고 있다. ⓒ 남소연
이어서 만난 심상정 대표가 "총리 취임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1700만 촛불의 산물이고, 촛불 혁명의 통로'라고 말했는데 제 생각과 전적으로 같다"라고 말하자, 이 총리는 "지구상에서 제 취임사를 가장 완벽히 숙지하고 있는 분이 심 대표다"라고 화답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 총리는 이날 야당을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의 조기 안착과 부족하고 부덕한 제가 총리로 임명되는 것에 야당이 큰 결단으로 물꼬를 터 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책임총리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 당정 관계, 특히 야당과의 소통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총리는 "오늘은 당장 오후에 가뭄 현장에 가보려고 한다"라며 "국민들이 아파하시는 곳에 빨리, 가까이 가는 총리가 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라고 강조했다.
또 윤영일 국민의당 의원(전남 해남·완도·진도)이 유류 피해 등 세월호 참사로 인한 현지 주민의 고충을 거론하며 "(이전) 정부에서 피해보상 대책을 촉구했으나 어떤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해보상 대책이) 추가경정예산에 포함됐으면 한다"라고 말하자, 이 총리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 기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수첩메모'하는 이낙연 총리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한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는 여야 지도부를 만난 자리마다 뒷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메모했다. 기자 출신인 이 총리가 꺼내든 수첩이 인상적이다. ⓒ 남소연
인사청문회·추경·4대강·사드, 야당 반발 기류
이날 이 총리와 국회의 화기애애한 만남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 사이엔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일단 정우택 원내대표가 이 총리 임명에 항의하며 '여야정협의체 구성' 약속을 파기했다. 여야정협의체는 문 대통령이 직접 여야 5당 원내대표를 만나 제안한 것으로, 이후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4당 원내대표가 만나 협의체 구성에 합의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정 원내대표는 매주 월요일 진행하기로 했던 '국회의장-여야 4당 원내대표 회동'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각 당 별로 생각은 다소 다르지만, 인사청문회·추가경정예산(아래 추경)·4대강·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정부여당과 야당 간의 갈등 요소도 산적해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물론, 국민의당까지도 이날 '칼날 인사청문회'를 예고했다.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은 "대통령의 인사 5대 원칙은 이미 깨졌지만 그래도 강경화, 김상조 두 후보자는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것이 중론이다"라며 "자격 없는 후보자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7일 예정돼 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는 7, 8일 이틀 동안 진행된다.
또한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은 문재인 정부의 첫 추경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일자리 공약 예산이 포함된 추경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사드 문제의 경우, 국민의당은 국회 비준을 거쳐야 한다는 문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이지만,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은 배치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국면 속에서 더불어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는 이날 '사드 발사대 추가배치 보고 누락'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문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의 재조사를 지시한 것을 두고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정치보복"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이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도 "지난 정부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이 나라 전체의 손해다"라며 "지난 정부에서 그 정책을 추진할 때도 온갖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옳다고 해서 진행한 것이니 그런 점을 잘 고려해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 국민의당 방문한 이낙연 총리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한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가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실에 들어서고 있다. ⓒ 남소연
이에 이 총리는 "청문회 때도 말했지만 정부의 연속성을 부정해선 안 된다. 저는 확고하게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라며 "단지 지나간 일 중에 뭔가를 다시 봐야 한다면 그건 미래를 위한 개선이지 어떤 사람을 겨냥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총리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당장 수질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라며 "거기에 초점을 두고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총리는 이날 자유한국당이 회동 제안을 거절한 것을 두고 "좀 더 봐보자.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늘 반응하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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