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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메모리얼 데이'... 기억하는가, 기억을 만드는가

미국인들이 기억하고 싶은 미국과 마주하다

등록|2017.06.02 08:51 수정|2017.06.02 08:51

▲ 메모리얼 데이 ⓒ happyeaster


참 묘한 행사였다. 지난달 29일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를 맞아 미국 워싱턴 DC에서 참여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행사는 기묘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행사였다.

한국전에 참전한 군인들을 기린다면서 정작 이들이 기념하는 것은 "위험에 처한 가련한 한국을 도운 미국의 영광"이었다. 어차피 미국을 위한 자리이니 개인의 이름으로 죽어간 군인도 영문도 모르고 전쟁고아 딱지를 얻거나, 무연고 사망자 처리된 이들도 없다. "코리아"라는 공허한 명칭만 울려 퍼지던 이 행사에는 이 땅에 살며 냉전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수천수만의 시민들도, 살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던 어린 병사들도 없다.

울려 퍼지던 노랫말도 퍽 참담해지는 내용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각축전 아래 펼쳐진 한국전쟁을 "위기에 처한 한국을 구하는 전쟁", "잊혀진 승리"라고 칭하며 거의 기억 편집에 가까운 미화를 하는 것도 모자라 미국이 가해자임을 부정할 수 없는 베트남전,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모조리 선택받은 미국의 숭고한 업적으로 포장하는 것은 차라리 집단 최면에 가까웠다.

행사장 곳곳에 나부끼는 깃발에 쓰인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 soldier)".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그래 봐야 "군인"이라는 저 단어로 떠올릴 수 있는 특정한 개인의 얼굴은 아무도 없다. 군인을 기억하는 사이 무명으로 죽어간 이들은 혼조차 수습할 길 없는, 오늘날까지도 "잊혀진" 존재들일 뿐이다. 이름을 찾을 길도 없다. 이미 전쟁이라는 참상 속에서는 철저하게 무명이기를 강요받은 자들이니.

한복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헌화하는 군인을 한 사람 한 사람 안내했다. 마치 '한복'으로 '한국'이라는 추상적 형체에 실체를 부여해 온 한국이 '빨갱이'의 위협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가던 우리를 구해주어 참 황송하다고 이야기하듯이.

우리는 도대체 이들에게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가? 명령과 복종의 메커니즘만이 허락된 군대에 속해 의지와 무관하게 전쟁에 참여하고, 이로 인해 평생을 트라우마로 보내고도 "영웅" 타이틀 하나에 삶을 이어가는 생에 대한 애착에 감사해야 할까? 매해 빠지지 않고 꾸준히 같은 장소를 찾는 끈기에 감사를 보내야 할까?

엄밀해지자. 이것은 위로할 것들이지 감사해야 할 것들이 아니다. 전쟁 영웅을 기억하는 일은 결국 전쟁의 한편을 미화하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떤 전쟁에도 영웅은 없다. "영웅" 타이틀은 전쟁이 할퀴고 간 자리가 아프다고 이젠 짐을 내려놓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최소한 자기 인생을 자기 의사대로 소비하고 처분할 기초적인 기회조차 박탈한다. "영웅"이라는 훈장은 전쟁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려는 재갈일 뿐이다.

승리도 없다. 아직도 땅을 파 내려가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백골이 쏟아져 나오고, 누가 묻어두었는지도 모를 지뢰에 수십 년 뒤의 신체가 잘려나가는데 도대체 무엇을 승리라고 말하는 것인가. 위대한 미국(The Great America)이라는 고귀한 이름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은 미국인들의 정신승리이다.

"메모리얼(Memorial)"의 의미를 전장에서 죽어간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자리로 이해한 내가 너무 순진한 것일까. 국가 유지의 도구로 전락시킨 이들이 무자비한 것일까.

6월이다. 이제 곧 한국에도 전쟁의 비릿함과 항쟁의 비명을 기억하는 물결이 인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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