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읽어줬을 뿐인데, 몇 번이고 펼쳐봅니다
[그림책 읽는 아버지] 김윤정 <엄마의 선물>
▲ 겉그림 ⓒ 상수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운차게 뛰놀던 아이가 곯아떨어집니다. 곯아떨어지는 아이는 마루에서고 마당에서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몸에 기운이 다 빠진 아이는 어디에서나 그대로 곯아떨어져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잠든 아이는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저를 고이 품어서 잠자리에 살며시 눕혀 주리라 믿습니다. 어머니를 믿고 아버지를 기대기에, 아이는 언제 어디에서나 씩씩하게 뛰놀고 나서 스스럼없이 곯아떨어져요.
아이는 곯아떨어지고 난 뒤에는 꿈나라에서 날아오르면서 놉니다. 눈을 뜬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땅을 박차며 뛰어논다면, 잠이 들어 꿈나라로 가면 '날개 없이도 나는 신나는 놀이'를 누려요. 이때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 이마를 쓸어넘기거나 가슴을 살살 토닥여 주면, 아이는 한결 느긋하면서 넉넉하게 꿈나라를 누비고, 밤새 고이 잠을 자고 나서 아침에 새로운 기운이 솟아 번쩍 눈을 뜨지요.
▲ 속그림 ⓒ 상수리
엄마는 말했죠.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면,
언젠가는 너에게 돌아온단다. (2∼6쪽)
김윤정 님이 빚은 그림책 <엄마의 선물>(상수리 펴냄)은 어머니가 아이한테 '손'하고 '말'로 사랑을 속삭입니다. 이 그림책은 '어머니'만 말하는 얼거리로 흐르지만, '아버지'도 얼마든지 손이랑 말로 아이한테 선물을 해요. 아이를 사랑하는 어버이는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함께이니까요.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서로 사랑으로 만나서 아이를 낳아요.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받고 싶으며, 아버지한테서도 사랑을 받고 싶어요. 두 어버이 사랑을 고루 받으면서 새롭게 피어나는 숨결로 어여쁜 사람으로 자라고 싶어요.
▲ 여느 그림책이 아닌 '겹겹이 그림책'입니다. ⓒ 최종규
▲ '속이 비치는 종이'를 넘기면 새로운 그림이 태어나요. ⓒ 최종규
▲ 남한테 보낸 주먹이 나한테 돌아오는 새 그림이 됩니다. ⓒ 최종규
이겼다고 기뻐하거나 졌다고 슬퍼하지 말아라.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단다. (11∼14쪽)
비 맞을까 두려워 너의 길을 멈추지 마.
너에게는 커다란 우산이 있잖니. (15∼18쪽)
남한테 손가락질을 하면 나한테 손가락질이 돌아온다지요? 남한테 웃음꽃을 건네면 나한테 무엇이 돌아올까요? 남한테 노래주머니를 건네면 나한테 무엇이 돌아올까요? 남한테 이야기꽃을 내밀면 나한테 무엇이 돌아올까요? 남한테 기쁨주머니를 건네면 나한테 무엇이 돌아올까요?
다만 '내가 무엇을 받기를 바라는 뜻'이기에 남한테 무엇을 주지 않아요. 나 스스로 기쁘며 아름답게 피어나는 길이기에 둘레에 마음껏 나눌 수 있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서 사랑을 돌려받으려고 사랑을 주지 않아요. 어버이는 아이가 그저 아이로서 애틋하며 반갑고 기쁘기에 온사랑을 고이 물려줍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그저 좋으며 살갑고 흐뭇하기에 온마음을 담아 웃음을 터뜨립니다.
▲ 아이 손하고 어머니 손이 처음에 따로 있지요. ⓒ 최종규
▲ 손 하나가 날아와요. ⓒ 최종규
▲ 두 손에 만나 하나로 됩니다. ⓒ 최종규
힘이 들면 가만히 손을 내밀어 보렴.
나는 항상 너의 곁에 있단다. (23∼26쪽)
그림책 <엄마의 선물>은 짤막한 몇 마디하고 단출한 그림 몇 점으로 엮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서로 겹쳐요. 속이 비치는 얇은 종이가 사이사이 깃들어요. 처음에는 '고요한 모습 하나'가 있는데, '속이 비치는 얇은 종이'를 넘기면, '저쪽에 있던 손 그림'이 이쪽으로 넘어와서 새 이야기를 빚어냅니다.
내가 남한테 손가락질을 하거나 주먹질을 할 적에, 이 손가락질이나 주먹질이 나한테 고스란히 돌아오는 모습을 '속이 비치는 얇은 종이' 하나로 새삼스레 보여주어요. '비추어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맑은 샘물을 들여다보듯이 '비추어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 마음이 저마다 맑은 샘물이니, 이 맑은 샘물 같은 우리 마음을 스스로 바라보면서 곱게 가꾸자는 뜻을 읽을 수 있다고 할 만해요.
▲ 따사롭게 사랑을 들려주는, '손'으로 '말'을 새롭게 빚는 그림책입니다. ⓒ 최종규
▲ 아이한테 한 번 읽어 주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아이들은 몇 번이고 넘기고 되넘기면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누립니다. ⓒ 최종규
어머니랑 아버지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아 따스한 기운을 담습니다. 이 따스한 기운을 아이한테 펼쳐서 아이가 비를 그을 수 있는 지붕을 빚어요. 이 따스한 기운을 아이한테 뻗어서 아이 등에 날개를 달아 주지요. 아이는 걱정이 아닌 꿈을 품고서 제 길을 씩씩하게 걸어요. 아이는 두려움이 아닌 사랑을 받고서 제 길을 힘차게 나아가요.
가만히 돌아보아요. 어버이나 어른인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어요. 어버이나 어른인 우리는 모두 어릴 적에 '우리 어버이'한테서 기쁜 사랑을 넉넉히 받으면서 느긋하고 신나게 새로운 길을 걸어올 수 있었어요. 우리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우리 아이들은 차츰차츰 슬기롭게 자라면서 저희가 받은 사랑을 앞으로 새로운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습니다.
선물 하나는 오래오래 흐릅니다. 어머니 손을 거치고 아버지 손을 타면서 사랑은 새롭게 자랍니다. 아이는 사랑을 먹으면서 큽니다. 어버이는 사랑을 주면서 자랍니다. 아이도 크고 어른도 자라요. 아이도 자라고 어른도 크지요. 우리는 몸만 크지 않고 마음도 커요. 주고 또 주어도 다시 샘솟는 사랑이요, 나누고 또 나누어도 새롭게 나눌 수 있는 사랑입니다.
손으로 들려주는 따스한 사랑을 생각합니다. 곯아떨어진 아이를 어루만지는 어버이 사랑을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기쁘게 지어 나누는 어버이 사랑을 헤아립니다. 함께 살림을 가꾸고 세간을 돌보는 어버이 사랑을 되새깁니다.
덧붙이는 글
<엄마의 선물>(김윤정 글·그림 / 상수리 펴냄 / 2016.3.25. / 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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