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집도, 옷도, 음식도 공유하는 댄싱 래빗 공동체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여행 13]매일 울던 나를 매일 웃게 한 댄싱 래빗 에코 빌리지

등록|2017.06.03 19:19 수정|2017.06.03 19:19
댄싱래빗 공동체

ⓒ 조수희


'나 괜찮을까? 불안해서 손, 발이 또 저리잖아. 영어도 못 하고, 마음도 힘들고....... 공동체 가서 내가 여기 왜 왔지 하면서 혼자 우울하게 있는 거 아닐까?'

미국 미주리에 있는 댄싱래빗 공동체로 가는 10인용 경비행기 안에서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남미를 여행하는 내내 미국에 방문하고 싶은 공동체, 구경하고 싶은 대안 주택, 만나고 싶은 활동가 등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꼼꼼히 작성했다. 막상 미국에 갈 날이 다가오자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지금 왜 이런 여행을 하는 거지?", "그냥 남들처럼 유명 관광지 가고 그러면 안 돼? 그냥 편하게 놀고 싶어. 왜 여행을 의무감에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까?"

왜 집 떠나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남들처럼 마추픽추니 티티카카니 하는 데는 안 가고 왜 공동체 따위를 돌아다니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의구심이 들건 말건, 이미 내 몸은 2주 동안의 방문자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댄싱래빗 에코 빌리지로 향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프로그램 참가자는 성인 15명, 아이 4명이었다. 공동체에는 10명의 아이를 포함해 총 45명이 살았다. 어딜 가나 사람들이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자기 소개를 하며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다.

'나 여기 왜 있는 거지? 지속가능성? 알게 뭐야. 착한 일 좀 하고 싶다는 의무감으로 여행하는 걸까. 그냥 울고 싶어.'

내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프로그램 분위기가 망가질 것만 같아 무너지는 마음을 기도로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아침 7시 반부터 밤늦게까지, 방문자 프로그램 스케줄은 꽤 빡빡했다.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개인 시간이 있었지만, 혼자 있기 두려워 마을 사람들이나 방문객과 어울렸다. 온종일 사람들과 같이 있으니 무너지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공동체 공용 거실에 혼자 앉아 여행의 목적을 상실한 두려움에 울고 있었다.

공동체 방문자인 제이콥이 울고 있는 나를 봤다.

"수희야, 왜 그래? 다 얘기해도 괜찮아. 들어줄게."

결국 제이콥에게 왜 댄싱래빗에 온 건지 모르겠고, 지속가능성이란 여행 테마가 무거운 의무처럼 느껴지고, 여행을 왜 떠난 건지 모르겠다고 누런 콧물까지 흘리며 털어놓았다.

"사실 네가 무슨 말하는지 잘 모르겠어. 네 마음은 너만 알지. 가식적으로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위로하진 않을게. 근데 다만 내 이야기는 언제든지 들어 줄게. 솔직하게 얘기해도 괜찮아."

그때부터 조금씩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체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1시간씩 한 게 큰 도움이 됐다. 방문객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2명의 공동체 멤버들도 같이 참여한다. 자신의 정신적, 감정적, 영적 상태를 솔직하게 나누는 시간이다.

댄싱래빗에서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몸이 아프지는 않은지, 영적으로는 건강한지 등을 솔직하게 나눈 덕에 방문자들의 관계는 급속도로 강해졌다. 방문객 빌은 "댄싱래빗에서 문화적 충격을 겪고 있습니다.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댄싱래빗 공동체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아도 되고,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넘치는 곳이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뒤에서 험담하지 않는 건 댄싱래빗 공동체의 규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신뢰하지 못해 같이 살 수 없다. 회원 간의 갈등 해결을 위한 비폭력 대화를 연습하고, 갈등 해결 전담팀을 두고, 개인 인격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는 등 댄싱래빗 공동체는 사람 간의 신뢰를 단단히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분위기가 2주라는 짧은 기간만 방문하는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방문자인 제이콥 말고도 공동체 회원인 로렌에게도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로렌, 나 미국 여행하려고 이런저런 여행 잔뜩 세워 놨는데요, 지금은 모든 계획에 다 확신이 없어요. 어딜 가야 할지, 뭘 하고 싶은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지속가능성이니 공동체니 하는거 의무감에 여행하는 것 같아요."
"수희야, 네가 만든 계획이잖아. 두려워할 거 없어. 네가 만든 계획인데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 뭐 있니? 마음 바뀌면 바뀌는 데로 가는 게 여행이지."

로렌과 이야기하며 공동체라는 게 사람들이 모여 태양열을 쓰고, 유기농업을 하고, 카 쉐어링 등 대안적인 생활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공동체 사람들은 때로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같이 밥을 먹는 식구였다.

2010년, 직장암에 걸려 33살의 나이로 죽은 타마라의 집은 아직도 공동체 안에 있다. 공동체 사람들은 타마라의 병간호는 물론 장례까지 치러줬다. 그의 무덤은 댄싱래빗 공동체 놀이터의 맞은편에 있다. 타마라는 "사람들도 안 다니고, 나무만 있는 데다 날 묻지 마. 마을 사람들이 매일같이 돌아다니는 곳에 나를 묻어줘. 매일 들려서 나에게 인사도 하고, 말도 걸어줘"라는 유언을 남겼다. 타마라의 무덤은 아직도 놀이터 맞은편에 있다. 이미 7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회원들은 타마라를 떠올리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댄싱래빗 공동체가 늘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건만은 아니라고 했다. 공동체에서 15년쯤 산 테드는 공동체 회원 중 베어, 알리사, 타마라와 실험을 했다. 댄싱래빗 전체 공동체는 개인의 수입을 공유하지 않지만, 테드를 비롯한 3명의 사람만 1년 정도 수익을 공유하며 생활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실패. 서로 돈을 쓰는 가치관이 달라서 걸핏하면 소리 지르며 싸웠다. 1년 만에 실험을 관두고, 수익은 공유하지 않지만, 공간, 물품, 식료품 등을 공유하는 보통의 댄싱래빗 공동체 규칙을 따르기로 했다. 소리 지르며 싸울 때 생긴 감정의 골이 쉽게 회복되지 않아 반 년 정도 서로 서먹서먹하게 지내다 차차 관계를 회복했다.

댄싱래빗 공동체에 있는 2주 동안 회원 간의 갈등을 목격하거나, 이웃 주민이 댄싱래빗 공동체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건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탁 트인 목초지 위로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면 공동체 사람들은 직접 요리한 접시를 들고 나와 야외 식탁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다 같이 모여 밥을 먹는 게 의무도 아닌데, 다들 뭐가 그리 좋은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식탁에 앉았다. 어떤 날은 7시쯤 저녁 먹으며 시작한 수다가 10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댄싱래빗 공동체에 오기 전 여기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하며 울던 내 모습은 공동체 생활 3일 만에 사라졌다. 33만 평이 넘는 광활한 목초지를 자전거로 가로지르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마음이 뻥 뚫리는 듯했다. 미래의 걱정 따위, 지금의 행복에 묻혀 사라져버렸다. 대안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는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매일 같이 밥을 먹고 서로를 돌보는 댄싱래빗 공동체에서 나는 행복해질 수밖에 없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