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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인권 문제, 대선 이슈로 떠오르다

[특집 : 다르거나 틀리거나] 왜, 지금 '성소수자' 이슈인가?

등록|2017.06.05 15:34 수정|2017.06.05 16:57

▲ 성소수자의 인권은 ‘정체’나 ‘지연’ 정도가 아니라, 명백한 ‘퇴행’ 을 보이고 있다. ⓒ 김건우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대학 등에서 동성애자 커뮤니티나 성소수자 인권운동 모임이 공개 활동을 시작한 것이 1990년 중반 무렵이니, 이제 겨우 20년 남짓 세월이 흘렀다. 현실 정치에서 성소수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이슈화 된 것은 더욱 최근이다. 2001년 제정된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 지향'이 포함되었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논란이 없었다.

하지만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법무부가 법안 마련에 나서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부 보수기독교계에서 '성적 지향' 등을 삭제하라고 요구했고, 결국 법무부는 '성적 지향'을 삭제한 채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지만, 이조차 통과되지 못했다. 그 후 17대 국회에서 1건, 18대 국회에서 1건, 19대 국회에서 3건의 차별금지법안이 제출되었지만 모두 통과되지 못했다. 2010년과 2013년에도 정부 차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논의되지 못했으나 역시 빛을 보지도 못하고 사장되었다.

대한민국 성소수자 인권 수난사

2010년 이후에는 국회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대립이 격화되었다. 2011년 인권·시민사회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했는데, 이때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을 놓고 대립이 벌어졌다. 그래도 당시에는 학생인권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컸고, 인권운동가들이 시의회 농성을 불사하는 등 강력한 투쟁 끝에 무사히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매번 난항을 겪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2013년 차별금지법안 2건이 자진 철회된 사건이다. 멀쩡한 법안을 내놓고 반대가 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들 스스로 철회하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같은 이유에서 2014년에는 성북구 성소수자 센터 설치가 좌절되었고, 서울시민인권헌장도 공포되지 못했다. 보수 기독교계에서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을 불러놓고 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약속받는 것이 정례화된 것도 이즈음이다.

최근에는 '성적 지향'이나 '성소수자' 등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도, 국가인권위원회 권한이 강화되거나 인권, 차별금지 등과 연동될 수 있는 관련 법령, 조례, 정책 등에 모두 제동이 걸렸다. 2014년 인권교육지원법안은 동성애와 관련한 어떠한 조항도 없었지만 친동성애 교육을 강화할 수 있다는 항의를 받고 철회되었고, 2014년 생활동반자법은 동성혼 우회 법안이라는 이유로 좌초되었으며, 인권위의 기업인권 업무를 강화하는 2016년 인권위법 개정안은 친동성애 기업을 지원한다는 항의를 받고 결국 철회되었다. 심지어 '가족 형태', '다양한 가족형태'라는 표현이 동성혼을 보호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아동복지법과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에 반대하는 운동까지 전개되었다.

지자체에서도 '성소수자'나 '성적 지향'이라는 문구의 삭제 요구로 조례 통과가 난항을 겪었고 (2015년 과천시, 대전광역시, 2016년 서울 광진구), '사회적 성' (2015년 서울 구로구) 또는 '성평등' (2015년 대전광역시)이라는 표현조차 논란이 대상이 되었으며, 헌법과 인권관련법을 근거로 삼았다는 이유로 조례가 제정에 실패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2016년 인천, 충북). 이 과정에서 성소수자 인권뿐만 아니라 학생인권, 청소년노동인권, 주민인권을 위한 조례 등도 유탄을 맞고 통과되지 못했다.

명백한 퇴행이다. 2000년대 들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했고, 일부 지자체에서 인권조례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국가와 지자체 차원에서 인권제도·정책이 추진되는 성과가 있었지만, 2010년 이후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한번 밀리기 시작하니까 끝도 없이 밀리고 있다. 반대운동 진영에서는 최근에는 국가인권위원회법 폐지, 인권 관련 조례 폐지 주장까지 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그들의 요구를 하나둘 수용하자 탄력이 붙어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정체'나 '지연' 정도가 아니라 명백한 '퇴행'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성소수자 인권 퇴행, 끝날 수 있을까

2017년 5월 대선은 바로 이렇게 퇴행의 징후가 명백한 상황에서 치러졌다. 위대한 촛불시민들이 구체제를 끝장내고 치러진 대선이었다. 범진보진영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가 계속되었다. 이쯤 되면, 성소수자 인권 문제도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해볼만 했다. 성소수자들도 무지개 깃발을 들고 박근혜 퇴진운동에 동참한 '시민'이었다.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번에도 유력 대선 후보들은 보수기독교계 행사에 불려가서 "동성애를 반대합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겠습니다"를 약속했고, 급기야 "동성애를 반대한다", "동성애를 금지해야 한다", "동성애를 엄벌해야 한다" 등의 혐오표현을 대통령 선거 후보자의 입을 통해서 들어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성소수자 문제가 대선 정국에서 이슈화된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어차피 쉬쉬하며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더 많은 얘기가 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논의 수준은 분명히 후퇴했다. 차별금지법은 참여정부 미완의 과제였고,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대부분 후보들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고, 공약 중에는 차별금지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불가피했다.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엄청난 변화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을 테다. 하지만 이 퇴행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다시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최소한의 기대조차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선 시기에 터져 나온 그 분노는, 이 퇴행의 역사를 끝내달라는 간절한 호소였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상정 후보가 성소수자 차별금지정책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일관된 소신을 피력했으며, 특히 TV토론에서 1분 찬스까지 써가며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한다"고 밝힌 대목은 감동적이었다. 6.2%라는 유의미한 득표까지 했으니 더욱 의미가 있었다.

선거운동 기간 문재인 후보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 많았다. 왜 문재인 후보에게만 유독 가혹하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컸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TV 토론 후 강력한 항의를 받고, "성소수자에게 사과한다"라는 입장을 발표한 대목에서 일말의 여지는 남겨둘 수 있었다. 성소수자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유권자이자 시민으로 등장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가 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선 후, 인권연구자인 조국 교수가 민정수석에 임명되었고, 군형법상 추행죄 위헌의견을 냈던 것은 김이수 재판관은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국제인권기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강경화 UN 사무총장 정책특보가 외교부장관 후보자에 지명되었다. 최소한의 여지는 생긴 셈이다. 이 작은 단초들이 모여 퇴행의 역사가 종식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홍성수님은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입니다. 이 글은 월간 <참여사회>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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