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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외대부고 대절 '대치동' 버스 탄 학생들 따라갔더니 '불법' 심야 교습

[잠입취재] 밤 11시 '대치동' 학원 들어갔더니, 모두 용인외대부고생들

등록|2017.06.09 11:42 수정|2017.06.13 09:56

▲ 서울 대치동 학원 밀집지역 근처에 선 용인외대부고 대절 버스. 버스 유리창에 용인외대부고 휘장이 보인다. ⓒ 윤근혁


"빨리 밥 먹어야 되는 거 아냐?"

약속이라도 한 듯 수십 명의 학생들 속 몇몇이 이 같은 말을 서로에게 던진다. 풀 죽은 얼굴을 한 이 학생들은 바퀴 달린 큰 여행 가방을 끌고 어디론가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수상한 빨간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 따라가 보니...

바로 1분쯤 전, 이들은 붉은색 대형버스 3대에서 내렸다. 지난 5월 26일 오후 7시 05분 서울 대치동 학원 밀집지역 근처에서 생긴 일이다.

이 버스 앞 유리에는 '대치동-1, 2, 3호차'란 글귀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이 글귀 위에 다음과 같은 글귀와 휘장도 찍혀 있다.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

▲ 어디론가 걸어가는 용인외대부고생들. ⓒ 윤근혁


'수상한'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은 기숙형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인 경기 용인외대부고생 102명. 이 버스는 용인외대부고가 학교 돈으로 대절한 이른바 '귀가 버스'다. 2005년 외국어고로 문을 연 이 학교는 2010년부터 전국단위 학생모집 자사고로 말을 갈아탔다.

그런데 마중 나온 자동차에 올라타는 학생은 절반 정도. 나머지 학생들은 어디로 걸어가는 것일까?

"여기(대치동에) 사는 학생들은 별로 없어요. 학교 버스를 타고 지방 학생들이 많이 와요. (주말) 학원에 가야 하니까."

자녀를 마중 나온 한 대치동 학부모로 보이는 여성의 현장 전언이다.

버스에서 내린 A학생에게 다가가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했다. 대치동이 아닌 수도권 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이 학생은 30여 분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용인외대부고생 "학교가 대치동 학원행 다 안다"

"저희 학교 수준에 맞춰 수업해주는 데(학원)가 여기(대치동 학원) 밖에 없어요. 금토일 3일간 학원에 가야 해요. 방 얻어놓고 자취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학원 수업 다 들은 뒤 지방에서 부모가 태우러 오는 아이들도 있고요. 절반가량은 대치동이 집이 아닐 거예요."

네 번째 주 금요일인 이날은 용인외대부고가 정한 의무 귀가일. 용인외대부고에 따르면 이 학교는 매달 넷째 주를 의무귀가일로 정한 뒤, 버스를 대절해 학생들을 실어 나른다. 이날은 모두 18대를 대절했다. 이 가운데 3대가 대치동 학원가 근처로 온 것이다.

A학생은 "의무 귀가일이 아닌 나머지 주 금요일에는 한 대표 엄마가 돈을 걷어 버스를 부르는데, 이때는 대치동 학원 코앞까지 데려다준다"면서 "다른 지역 학생들이 집이 아닌 대치동 학원으로 온다는 것 학교도 다 안다. 서울대 몇 명 갔는지 자랑하는 학교니까 (대치동) 학원가는 걸 막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올해 이 학교가 만든 22쪽 분량의 학교소개 책자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두 군데 적혀 있다.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최고 수준의 학업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책자엔 또 '국내대학 합격현황'이 적혀 있는데,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차례대로 앞세워놓았다.

이 학교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린 뒤 4시간 30분이 흐른 이날 오후 11시 30분. 서울 대치동 학원가 한복판에 있는 6층짜리 건물. 빛이 새어 나오지 않는 이 건물에 들어섰다.

이 건물 4층에 올라가 출입문을 열었다.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와 강남교육지원청 학원 단속반 2명의 공무원과 동행해서다.

학원 강사 앞에서 6명의 학생들이 영어공부를 하다 말고 기자를 쳐다봤다. "모두 버스 타고 온 용인외고 학생들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입을 모아 "그렇다"고 답했다.

책상 위엔 '용인 외대부고 2017년,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문과 수업자료 2차'란 글귀가 적힌 책자가 널브러져 있다. 용인외고 기출문제 모음집으로 보였다.

▲ 심야교습 중이던 학원의 강사가 용인외대부고생용으로 만든 학습지. ⓒ 윤근혁


서울에서 밤 10시 이후 학원의 심야 교습 행위는 학원 관련 법규 위반. 이 학원은 영업정지에 처해질 수도 있는 벌점을 받았다(현재 서울·대구·광주·세종·경기는 초중고생의 경우 학원 심야 교습 행위를 10시로 제한, 대전과 울산·경북·경남 등 여덟 곳은 고교생의 경우 밤 12시까지 허용한다. - 편집자 말). 용인외대부고는 서울 학원 법규 위반 '대치동 족집게 과외' 현장에 학생들을 실어 나른 셈이다.

용인외대부고와 대치동 학원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용인외대부고에서 학원행 버스 운행을 묵인, 협조하다 보니 학부모들 사이에서 대치동으로 가는 학생은 진골, 분당으로 가는 학생은 6두품, 학원 못가는 학생은 서민 취급을 당하며 학교 성적도 대략 이 순서"라면서 다음처럼 말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학부모는 학원가의 이른바 '돼지엄마'가 되어 학생들을 모집하여 '귀가 버스'로 포장한 학원가행 버스에 태워 학원으로 데려가고 뒷돈을 받기도 한다."

'대치버스 학부모회' 명의로 550만 원 받은 용인외고

용인외대부고가 만든 학교발전기금 현황 장부엔 '대치 버스 학부모회'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 학교는 이 단체로부터 올해 3월 24일 550만 원을 받았다.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다. 기자가 이 학교 게시물을 직접 확인한 결과다.

이는 '학부모가 구성원인 임의단체의 경우 기탁금은 학부모 개인 명의로 내야 한다'는 경기도교육청의 학교발전기금 지침을 어긴 것이다.

이상한 이름을 가진 임의단체의 법규 위반성 학교발전기금. 이 돈이 대치동 학원가 근처로 가는 버스와 관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생기는 이유다. 이 학교는 2015년 12월 18일에도 '대치동 학부모 일동'이란 명의의 단체로부터 역시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700만 원을 받았다.

▲ 용인외대부고 인터넷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학교발전기금 장부. ⓒ 인터넷 갈무리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의 고유경 상담실장은 "용인외대부고가 대치동 실제 거주 학생 수를 학생명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귀족학교라는 이 학교가 타 지역 학생들까지 대치동의 족집게 불법 심야 교습을 받도록 사실상 협조한 것은 교육 불평등의 주범으로 폐지의 대상이란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 공동대표도 "용인외대부고는 일반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끄럽고 퇴행적인 행동을 한 것"이라면서 "교육부는 이번 기회에 자사고와 외고, 영재고 등이 사교육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실태조사에 당장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용인외대부고 "학원행 버스 아닌 귀가 버스, 남은 버스비 발전기금 받은 것"

이에 대해 용인외대부고 관계자는 "우리 학교가 학생들이 학원에 가도록 편의를 봐주기 위해 버스를 운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억측"이라면서 "학교가 학원에 가는 애들 때문에 귀가 버스를 운행하지 말아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대치 버스 학부모회'가 낸 기금을 받은 것과 관련 "의무 귀가일이 아닌 주에 서울 전체지역 학생들 귀가 버스를 운영하기 위해 만든 모임을 예전부터 대치 버스 학부모회라고 불러왔을 뿐"이라면서 "이 모임이 지난해 1년을 운영하면서 남은 돈을 학교에 발전기금으로 낸 것이지 학교가 반대급부를 받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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