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지훈씨의 조선소 취업기 또는 생존기
하루하루 살아내는 조선소 '그림자 노동자'들
▲ 세계노동절인 지난 5월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다음날 오후 현장의 휜 크레인. ⓒ 윤성효
스물일곱 살 지훈씨는 전남 강진에서 알바천국 광고를 보고 경남 거제로 왔다. 광고에는 "일급 15만원, 4대보험 회사부담, 당일 바로 입사"라고 되어 있었다. 조선소 일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뭐 못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구인광고에 나와 있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하니 당장 오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거제에 와보니 광고처럼 당일 입사가 되는 건 아니었다. 지훈씨 말고도 서울에서, 강원도 원주에서 온 또래가 2명 더 있었는데, 전화를 받았던 '제일ENG' 과장이라는 사람이 모텔을 잡아주며 일단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
며칠 뒤 지훈씨는 '씨엔씨'라는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한 여자 대리는 사정이 생겨서 지훈씨 소속이 현주기업에서 씨엔씨로 변경되었다고 했다. 도대체 뭔 소린지... 지훈씨는 슬슬 불안해졌다.
나의 사장님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런데 같이 일하는 아저씨들은 지훈씨에게 "너는 '맥스' 소속이다"라고 말했다. 이건 또 뭐지. 맥스에서는 전화 한 번 온 적도 없는데 내가 맥스 소속이라니... 지훈씨는 지난 번 통화했던 씨엔씨에 전화를 해 왜 사람들이 자신을 맥스 소속이라고 하는지, 맥스는 어떤 회사인지 물었다. 그러자 "당신은 씨엔씨 소속이 맞고 씨엔씨가 맥스하고 계약을 한 것"이라고 알려줬다.
점점 불안해진 지훈씨는 씨엔씨에 근로계약서는 안 쓰냐고 물었다. 곧 쓸 거라고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또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을 전화하고 나서야 근로계약서를 쓰자는 얘기를 들었다. 씨엔씨에서 삼성중공업 앞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사무실 구경도 할 겸 직접 찾아가겠다고 했다. 또 몇 번 전화를 해서야 겨우 사무실 주소를 받았다. 지훈씨는 저녁에 퇴근을 하고 같은 운명(?)의 또래 2명과 계약서를 쓰러 사무실을 찾아갔다.
알려준 주소대로 찾아갔지만 사무실 같은 곳은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하니 사람이 나와 동네 작은 커피집으로 안내했다. 간판은 커피집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그곳이 책상 두 개가 놓인 사무실이었다. 본사는 김해에 있는데 거제에 사무실을 연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아직 정리가 덜 되었다고 했다. 어쨌든 그 커피집 간판의 사무실에서 지훈씨는 근로계약서, 아니 용역계약서라고 된 계약서를 썼다.
그런데 이상한 건 월급이 맥스에서 반이 들어오고 씨엔시에서 나머지 반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월급이 두 군데서 각각 입금되었고 씨엔씨에서 받은 월급명세서에는 '맥스급여액'이라고 구분되어 적혀있었다. 그러면 맥스하고도 근로계약서를 써야하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여섯 명의 목숨을 앗아간 크레인 사고
2017년 5월 1일 오후 3시 삼성중공업에서 작업 중이던 크레인 붐대가 무너지는 사고가 났다. 무너진 붐대는 마침 쉬는 시간에 간이 화장실 근처에서 쉬고 있던 노동자들을 덮쳤다. 신고를 받고 회사 구급대가 왔지만 수습이 안 됐다. 119에 신고해 구급차가 왔지만 사람도 지나다니기 힘든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장에서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첫 번째 부상자가 병원에 도착하는 데에만 45분이 걸렸다. 결국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이들 31명은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그것도 8개 하청업체에 각각 소속되어 있었다. 8개 하청업체 소속이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하청업체 아래 또 각기 다른 물량팀이나 인력업체 소속으로 되어있었다.
사망자 유족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피 말리고 진 빠지는 보상협상을 했다. 대통령선거를 며칠 앞에 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대선 후보들이 모두 장례식장을 찾았고 유족들에게 "삼성이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갔지만 삼성에서는 부장이 협상에 나올 뿐 실질적인 협상은 하청업체 협의회가 맡았다. 결국 협상에 지친 유족들이 하나, 둘, 셋 보상에 합의하고 장례를 치르는데 2주가 걸렸다.
부상당한 하청노동자에게는 며칠 뒤부터 하청업체 총무나 물량팀장이 찾아왔다. "산재신청하면 삼성에서 다시 일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그냥 공상 하는 게 어떻겠냐"고 은근히 부탁을 했다. 산재신청을 하긴 해야겠는데 정말 앞으로 삼성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하청노동자들은 걱정이 앞선다. 25명 부상 노동자들이 모두 산재신청을 하는데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 더 걸렸다.
25명의 노동자들은 육체적인 부상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상처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 노동자가 입원 중인 거제 백병원은 때마침(?) 증축공사 중이었는데 공사현장에는 타워크레인이 서 있었다. 그 노동자는 크레인이 움직일 때 혹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칼이 쭈뼛 설 때가 있다고 했다.
정신적인 상처를 포함한 부상노동자들의 장기적인 치료를 불법 인력업체가, 영세한 물량팀장이,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하청업체가 책임질 수 있을까. 이 역시 원청 삼성중공업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25명 부상 노동자들에 대한 장기적인 치유대책은 마련되기 어렵다.
스물일곱 지훈씨는 다행이 오늘도 안녕하다
6명 사망자 중에는 91년생이 한 명 있다. 그는 군대 제대하고 나서 곧바로 조선소 일을 시작했다. 대우조선에서만 꼬박 3년을 일했다. 간혹 일이 없을 때눈 삼성중공업에서 잠시 잠시 알바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삼성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크레인 사고가 난 2017년 5월 1일은 삼성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겨 출근한 첫 날이었다.
91년생이면 스물일곱 살. 사고 다음날 문득 지훈씨 생각이 나서 카톡을 보냈다. 연락이 없었다. 혹시 지훈씨도 사고 현장에 있었던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한참 뒤에 전화를 하니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출근했다가 노동부 작업중지 명령으로 일을 안 한다고 해서 통근 버스를 타고 나가는 길이라고 했다. 혹시나 싶어 물으니 자기는 사고 난 곳과는 다른 프로젝트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조금 뒤, 자다 깨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전화를 받아서 미안하다는 카톡이 왔다. 그리고 2주 동안 작업을 안 한다는데 그럼 월급을 못 받는거냐고 묻는다.
2주 뒤 작업중지 명령이 풀리고 지훈씨는 다시 출근해 일을 해고 있다. 사고 전이나 사고 후나 지훈씨가 일하는 현장은 크게 변한 게 없다. 조선소에서 일한 지 이제 4개월, 새벽같이 일어나서 저녁이면 파김치가 돼서 기숙사로 들어오는 지훈씨의 일상도 변함이 없다. 다행히 지훈씨는 오늘도 안녕하다. 다만 월급날이면 자신의 사장이 씨엔씨인지 맥스인지 아니면 출입증에 적힌 서우기업인지 여전히 궁금해지곤 한다.
# 글에 등장하는 회사 이름과 사람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경남노동자민중행동 블로그 '필통'과 사회변혁노동자당 기관지 '변혁정치'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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