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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때 일본경찰 피해 부상자 치료한 의사 김형철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 선생 관련 '삼성병원 표지석' 제막식 15일

등록|2017.06.14 17:29 수정|2017.06.14 17:29

▲ 고 김형철 선생이 경남에서 처음으로 병원을 개원했던 자리에 '옛 삼성병원 표지석'을 세워 15일 제막식을 연다. ⓒ 손재현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일본경찰을 피해 병원 내실과 지하실뿐만 아니라 왕진가방을 들고 부상자를 치료했던 고 김형철(지전, 1891~1965) 선생을 기리는 표지석이 세워진다.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는 15일 마산합포구 불종거리(창동공영주차장 옆)에서 '옛 삼성병원 표지석 제막식'을 갖는다. 도시재생지원센터와 마산의사회가 협업으로 마련한다.

마산 동성동에서 태어났던 김형철 선생은 마산성호초교(제1회)를 나와 일본 '오카야마'의전을 졸업했다. 선생은 1918년 10월 마산합포구 남성로 131번지, 현 한국투자증권 마산지점에 '삼성(三省)병원'을 개원했다.

개원 이듬해인 1919년 3~4월 사이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다. 만세운동에 나섰던 함안 군북과 마산지역 청장년들이 일본경찰에 부상을 당했고 사상자가 늘어났다.

선생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선생은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병원 내실과 지하실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했고, 왕진가방을 들고 일본경찰이 무서워 병원을 찾지 못하는 부상자를 찾아가 치료했다.

그 뒤 일본경찰이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고 선생을 경찰서에 연금하기도 했다.

김형철 선생의 이런 공적은 옛 <마산일보> 사장을 지낸 김형윤(1903~1973) 선생 유고집인 <마산야화-신간회> 편에 "항일 민족통일전선 연합정신에 기간을 둔 신간회 소속으로 창산 이재형, 허당 명도석, 일파 김용환 선생 등과 함께 객원으로 김형철 등이 활동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 <경남매일신문> 1968년 4월 21일자에 실린 '마산의 명가-김선집씨가'에 보면 "마산에서 개업한 지전 형철 선생은 3·1운동과 해방 후의 콜레라 창권 등 일제의 학대와 염병 속에서 동포와 이웃을 구한 향토의 은인이자 숨은 항일지사로 너무나 잘 알려진 분"이라 소개해 놓았다.

김형철 선생이 1965년 1월 세상을 뜨자 당시 마산시의사회 등이 그해 8월 15일 마산대학교 교정에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김형철 선생은 정부로부터 애국지사에 선정되지는 못했다. 보훈지청은 관련 자료 미비로 보고 있다.

창원시는 "이번 표지석 설치를 통해 지역의 역사적인 현장을 확인하고 마산 구도심을 중심으로 민주항쟁의 역사 자원 등이 연계된 성역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 손재현 사무국장은 "도시재생이 물리‧환경적 기반시설을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어떠한 내용을 담느냐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창원시의 도시재생은 문화예술과 관광을 접목하여 진행되고 있으며, 지역 역사 발굴을 통해 창원시 도시재생사업이 다양해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제막식은 안상수 창원시장과 마산시의사회, 김녕김씨마산종친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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