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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도 꿈꾸던 청년, 경찰 수사권 독립 말하다

[인터뷰] 노재호 경기도 광주경찰서장 "경찰 수사권 독립 필요, 그보다 먼저 중심에 국민 권익 우선돼야"

등록|2017.06.15 07:40 수정|2017.06.15 14:25

▲ 지난 12일 지역기자들과의 인터뷰중인 노재호 경기광주경찰서장. ⓒ 박정훈


"원래 서울대를 가려고 재수를 하고 있었어요."

1980년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재수를 하던 어린 학생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가난하던 그 시절 이 학생은 그저 막연히 법학도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의 가족도 피해 가지 못한 가난은 이 청년의 꿈을 우연히 법학도로 키워주었다. 어려운 형편의 이 청년은 한창 꿈이 많았을 나이 자신의 집안을 일으키기 위한 책임감이 이미 꿈의 크기를 넘어서고 있었다.

누구나 꿈과 현실이 괴리되는 상황을 마주하는 시기. 바로 성인이 되기 직전의 시간. 가난과 마주해 반항심이 극에 달하는 나이의 한 청년은 뜻밖에도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꿈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처럼 현실의 참여자로 살아온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갑작스레 진로를 바꾼다. 서울대가 아닌 경찰대. 법의 판결자가 아닌 법의 집행자가 되기로 그는 그해 결정한다.

삶에 대한 엄청난 포부와 목표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그. 아버지의 말씀에 덜컥 진로를 바꿨던 1981년 경찰대가 생긴 그해. 예상치 못한 그의 진로변경은 어린 청년의 현실의 삶의 궤적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경찰대 1기. 낯 설은 학교생활. 모든 게 새롭고 혼란스럽던 그 시기. 그는 잊지 못할 소중한 한 스승을 만난다. 바로 국어 과목을 담당하던 박경현 은사. 은사의 지도로 그는 경찰대 학보사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된다. 그 날부터 그는 인천 부평에 있던 경찰 대학교에서 학보신문 인쇄를 위해 수원을 수없이 오갔다. 활자 인쇄를 하던 그 시절. 그는 낯 설은 학교에서 낯 설은 학보신문을 만들고 낯 설은 곳을 오갔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던 그가 신기하게도 부담되고 낯선 일을 겪을 때마다 그는 조금씩 경찰처럼 변해갔다.

'여성 납치 사건' 경찰이 된 청년. 그가 전하는 범죄 현장의 이야기

▲ 지난 12일 지역기자들과의 인터뷰중인 노재호 경기광주경찰서장. ⓒ 박정훈


"112신고로 성남에서 자신의 친구(여성)가 납치된 것 같다는 신고를 받았어요. 차량번호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일단 휴대폰 위치추적을 시작하고 유사한 차량에 수배를 내렸죠."

(노재호 서장)

얼마 뒤 광주 경찰은 의심 가는 차량과 비슷한 남녀를 발견했다. 경찰관들이 검문을 하자 남자운전자가 옆자리 여성분에게 담배를 권하는 모습이 영 자연스럽지 않았다.

이에 경찰들이 남성 운전자를 차에서 내리라고 하자 운전자는 도주했다. 경찰들은 단순한 상황이 아님을 인지하고 긴급배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잠시 뒤 피해가 우려됐던 여성으로부터 112로 전화가 왔다. "아까 일은 별일 아니다. 나는 아무 이상이 없고 괜찮다"고.

"저희는 더 수상하다고 느꼈죠. 그래서 일단 차량번호를 확보한 상태로 경찰들이 추적을 계속했어요. 결국, 산속에서 저희가 피해 여성분을 찾아냈죠. 그때 자세히 살펴보니 여성분 손발이 다 결박돼있고 구타를 당한 상태였어요."

노 서장은 "끝까지 찾지 않았으면 어떤 처참한 일이 생겼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며 "가해 남성은 피해 여성의 차에 적힌 전화번호로 '차 빼 달라'며 연락해 납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슷한 범죄 수법에 여성들의 주의를 당부하며 긴박했던 그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긴박했던 사건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노련한 경찰의 모습이었다.

그는 "평소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이런 사건 해결이 쉽지 않다"며 해당사건을 무사히 잘 해결한 광주 경찰관들에게 공을 돌리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지휘관 돼야 자신의 치안 철학 실현할 수 있어" 그가 실천하는 4대 혁신 가치

▲ 지난 12일 노재호 경기광주경찰서장이 자신의 치안철학으로 강조하는 4대 혁신가치가 적힌 광주경찰서 홍보물 ⓒ 박정훈


"보통 지휘관이 돼야 자신의 치안 철학을 실현할 수 있어요. 그동안 경찰 하면서 느낀 것들과 내가 지휘관 되면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을 펼치는 겁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제 경찰 서장이 된 그. 노재호 서장은 그간 자신이 겪어온 시간들과 현재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4대 혁신 가치'를 자신의 치안철학이라고 강조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4대 혁신 가치, 즉 '존중문화 정착, 엄정한 법 집행, 협력 치안 강화, 공감받는 경찰'를 모토로 자신이 지역 치안과 경찰조직에 대한 시각을 나타냈다. '존중문화 정착'을 통해 '직연(직장에서의 인연)'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며 직장에서의 서로 간의 존중을 강조했다. 엄정한 법 집행을 이야기하며 경찰 본연의 임무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또한 '협력 치안 강화'와 '공감받는 경찰'이 되어 사건 해결은 물론 미리미리 문제를 해결해야 함에 주목하며 범인 검거만큼 봉사하는 경찰도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는 "모두 다 소중한 동료이자 선후배"라며 직장 내 융화를 유독 강조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내부고객인 직원들의 직장 만족도가 높아야 결국 외부고객인 시민들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도 직원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평소 경찰직원들 결혼기념일을 챙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 그는 기혼인 경찰직원들의 배우자를 초대해 결혼기념일을 챙긴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축하카드와 덕담을 건네며 기념사진도 함께한다.

그는 인터뷰 내내 몇 명의 범인을 검거하고 누가 어떻게 죄를 짓고 수사했다는 기존의 경찰의 이야기보다 휘하의 경찰관들과 시민들의 틈에 조금이라도 소통을 위한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터뷰 말미 서울대 법대, 법학도가 꿈이었던 그에게 물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촉발되고 있는 경찰 수사권 독립에 관한 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한, 거대 조직인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우려 섞인 시선에 대한 견해도 궁금했다. 그는 가감 없이 자신만의 견해를 나타냈다.

수사권 돌려받은 일본 경찰 신뢰도 1위. 아이러니한 또 다른 신뢰도 1위 검찰

▲ 지난 12일 지역기자들과의 인터뷰중인 노재호 경기광주경찰서장. ⓒ 박정훈


"수사권 정말 조정돼야 합니다. 일본 경찰 신뢰도 1위입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검찰도 신뢰도 1위입니다. 그러나 수사권 독립에 대한 논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 중심에 국민 즉 국민의 권익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신뢰도 1위가 된 일본의 경찰과 검찰의 사례에 대해 말했다. 시민들의 경찰수사권 독립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일본은 한번 빼앗겨 본 후 다시 수사권을 빼앗길까 봐 최선을 다해 신뢰도 1위"라며 "그 덕분인지 몰라도 검찰도 신뢰도 1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수사권 없는 경찰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경찰 수사권독립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노 서장은 "수사권을 한 번 줘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며 "과거 늘 나오던 경찰의 자질(지식적인 부분) 이야기는 이제 없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지원자와 치열한 경쟁률로 인해 경찰의 능력은 과거와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수사권 독립에 대한 가장 중요한 핵심을 국민으로 꼽았다. 어느 조직의 이익과 권력이 아닌 국민의 권익이 우선돼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판단했다. "그 무엇도 국민 앞에 우선하는 것은 없다"며 "수사권 독립이 되지 않아 국민이 2번씩 조사받는 불합리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1808년 프랑스 형사소송법을 기초로 한 1872년 검찰 제도를 도입한 일본. 검찰의 탄생 이후 1949년 경찰 독립적인 수사권을 인정받고 1953년까지 극한 대립과 수정 논의 등을 거친 일본 경찰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현재까지 수사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 지난 12일 지역기자들과의 인터뷰중인 노재호 경기광주경찰서장. 자신이 만든 주폭척결 CM송을 들려주고 있다. 노 서장은 독학으로 작사, 작곡에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박정훈


"경찰들도 교통경찰 보면 움찔합니다."

그의 세세한 설명에도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경찰서를 방문하는 게 유쾌하지는 않다"는 한 참석자의 말에 남긴 그의 농담. 노 서장은 "자신도 움찔한다면서 공감한다"며 씩 웃었다. 그의 의도이든 아니든 그의 농담이 그저 일상의 농담처럼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감시자란 그 누구에게도 긴장감을 주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농담에서 역설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의 치안 철학. 지역에 남겨질 수 있을까?

▲ 광주경찰서 전경 ⓒ 박정훈


1985년 임용돼 벌써 32년이 됐다는 그. 관리자가 돼서 하고 싶은 게 많이 남아있는 듯한 그에게 "평소에 소통을 잘한다고 들었다"고 말을 건네자 "문재인 대통령만 하겠습니까"라며 멋쩍은 미소를 짓던 그. 예상치 않게 길게 진행된 이 날의 인터뷰는 내내 진지함과 유쾌함이 끊이질 않았다.

인터뷰 종료 후 노재호 서장의 환한 얼굴과 인사를 나누고 나오는 시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적막감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도착하는 경찰서. 마주 선 차단기. "무슨 일로 오셨냐"는 물음이 여전히 반복될 그곳. 노재호 서장이 광주경찰서에 남든 떠나든.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 경찰서 정문 앞 차단기가 수없이 열리고 내려도 긴 시간 동안 남아있을 그 낡은 경찰서 건물. 그 오랜 시간 동안 그가 지역 경찰에 심으려던 그의 치안 철학은 세월이 지나도록 남을 수 있을까?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던 햇살 뒤로 경찰서 반대편 경사로를 내려가는 길. 차량 틈 사이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약간의 먼지가 섞인 거센 바람... 그 바람은 이미 경찰의 갈 길을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갑작스런 생각이 밀려왔다. 그날의 길에는 마주 오는 바람과 먼지가 자욱했다.
덧붙이는 글 경기미디어리포트에도 송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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