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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보따리 메고 어린이 찾아 나선 시인들

한국동시문학회 시인 6명, 시골학교 찾아 '맛있는 동시교실' 열어

등록|2017.06.16 10:37 수정|2017.06.16 10:48
지난 6월 12일, 초록이 짙어가는 초여름 아침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느닷없이 아이들이 시를 읽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 크지 않던 낭송 소리는 이내 합창처럼 교정을 채우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동시를 읽고 있는 이는 중견 아동문학가 조두현(60) 시인이다.

20여 년 가까이 어린이를 위한 동시를 써온 조 시인은 동시를 읽지 않는 요즘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동시를 읽혀주기 위해 직접 동시 보따리를 메고 아이들을 찾아왔다. 조 시인은 안성 현매초등학교 4~6학년 어린이들과 함께 2시간이 넘게 다양한 방법으로 동시를 낭송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는 아이들과 동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졌으며, 자신의 동시집을 어린이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어린이들은 책을 쓴 시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신기한 듯 목소리를 높이고, 동시집도 뒤적거리며 열심히 찾아 읽었다.

맛있는 동시 - 조두현 시인조두현 시인이 안성시 현매초등학교를 찾아 재미있는 동시 낭송법을 알려주고 있다. ⓒ 한국동시문학회


조 시인이 아이들과 함께 특별한 시간을 가진 이날 행사는 한국동시문학회(회장 전병호)가 전교생 60명 미만인 작은 학교를 찾아가 어린이들에게 동시의 재미를 알려주기 위해 기획한 '맛있는 동시' 프로그램이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조두현 시인을 비롯해 이묘신 시인, 김금래 시인, 이옥용 시인, 김경우 시인 등 한국동시문학회 소속 시인 5명과 전병호 회장이 함께 했다.

시인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안성시 서운면에 위치한 현매초등학교와 산평초등학교를 찾았다. 조두현 시인과 함께 현매초등학교를 찾은 이묘신 시인은 '작가가 된 나의 꿈'에 대해 들려주었으며, 교과서에 수록된 시인의 동시 '응, 그래서?'를 같이 읽었다.

우리 반 지훈이는
친구들 고민 해결사예요.
걱정거리 털어 놓고
제자리로 가며 웃는 아이들.
지훈이 곁에서
가만 귀 기울여 들어 보니
응, 그래서?
응, 그래서?
이 말만 하는 거예요.
말허리 뚝 자르지 않고
미리 결론부터 내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며
얘기 들어 주는 것이
지훈이가 고민을
척척 해결하는 방법이래요.

<'응, 그래서?' / 이묘신>

맛있는 동시-이묘신 시인과 현매초등학교 어린이들이묘신 시인과 함께한 현매초등학교 어린이들 ⓒ 한국동시문학회


이묘신 시인은 또 아이들의 '시를 어떻게 써야 할까?'라는 주제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시 창작법을 들려주기도 했으며, 동시집을 어린이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산평초등학교를 찾은 김금래, 이옥용 시인도 아이들에게 '동시의 맛'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했다. 김금래 시인은 '나를 사랑하는 동시'를 골라서 아이들과 같이 낭송하고, 자신이 쓴 동시에 곡을 붙인 '고추잠자리'와 '배꼽'을 함께 불렀다. 김 시인은 준비해간 우쿨렐레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로 아이들에게 동시를 들려주었고, 아이들도 마치 레크레이션처럼 즐겁게 동시를 배웠다.

어디에 앉을까
고추잠자리

뱅뱅 돌다
뱅뱅 돌다

부러진
싸리나무 가지 끝에
앉았습니다

아픈 가지에
빨간 잠자리꽃
피었습니다

<'고추잠자리' / 김금래>

맛있는 동시 프로그램시인들이 직접 아이들을 찾아 동시의 재미를 전하는 '맛있는 동시' 프로그램 ⓒ 한국동시문학회


이옥용 시인은 1~3학년 어린이들과 함께 일상생활에서 겪은 체험을 시로 쓰는 수업을 진행했다. 칠판에 '이웃', '안성', '컵' 등 아이들에게 친숙한 낱말들을 가득가득 채워가며 쉽게 시를 써 보게 했는데, '고래'를 뒤집어 '레고'를 만들어 내는 말놀이도 곁들이는 등 어린이들이 즐겁게 참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수첩을 선물해주고, 틈틈이 글감을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동기부여 했다. 아이들은 수첩을 받자마자, 작은 글씨로 비밀스럽게 뭔가를 적기 시작하는 등 시인으로부터 배운 시 쓰는 법을 연습해 보기도 했다. 

맛있는 동시-이옥용 시인이옥용 시인과 산평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함께한 맛있는 동시교실. ⓒ 한국동시문학회


"우리 학교 아이들이 유명한 시인들과의 만남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산평초등학교 박현숙 교장의 말이다.

"어린이들이 시인과 만난 오늘, 아마도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을 것 같아요."

현매초등학교 구영애 교장도 '맛있는 동시' 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한 전병호 시인은 "동시의 재미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시인들의 교육 기부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2학기에도 희망 학교 신청을 받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동시문학회는 지난해에도 경기도 안성에서 찾아가는 동시 교실을 열었으며, 지난 5월에도 서울시 가재울초등학교를 방문, 동시 교실을 연 바 있다.

어른들도 시를 읽지 않는 요즘, 만화와 게임에 빠져 있는 어린이들에게 동시의 참 맛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선 시인들의 마음이 동시처럼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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