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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쑥을 캐주던 당신

조선 최고의 애처가 심노숭이 부여에 남긴 흔적을 찾아서

등록|2017.06.19 16:01 수정|2017.06.19 16:31

심노숭의 도망시 눈물이란 무엇인가 ⓒ 오창경


오늘 우연히 계수씨가 차린 밥상에
부드러운 쑥이 있기에 목이 메이네
나를 위해 쑥을 캐 주던
그 얼굴 위에 흙이 도톰히 덮이고
거기에 쑥이 돋아났다네

이 부분만 읽어도 먼저 간 아내를 애도하는 한 사내의 애절한 마음을 시로 표현해 놓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는 조선시대 심노숭이라는 선비의 한시를 해석해 놓은 것이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로 대한민국 최고의 애처가로 등장했던 도종환 시인이 어느 덧 세월이 흘러 문체부 장관 물망에 오르고 청문회를 치렀다. 소싯적에 그 시를 읽으며 감동하고 세상에는 그런 남자들만 있는 줄 알고 결혼을 했다가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지 않은 것을 깨달으며 살아 온 날들도 세월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도 도종환 시인 못지않은 애처가였던 효전 심노숭(孝田 沈魯崇)이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16세에 동갑내기인 전주 이씨와 결혼하여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았다. 그러나 31세에 되는 해에 아내가 지병으로 먼저 세상을 뜨자, 거의 2년간 눈물 바람을 하며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부인을 잃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조선의 한 사내인 심노숭은 2년 동안 아내를 그리워하는 자기감정에 충실한 시문을 49편씩이나 남겼다.

'눈물은 어디에서 오는 가' 하는 등의 글을 지어 아내를 잃은 슬픈 감정을 솔직히 표현한 것은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감정 표현을 자제하거나 에둘러서 표현하기를 가르친 공자의 말씀을 충실히 따랐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보편적인 정서와는 다른 행보였다. 남편이 먼저 간 아내를 애도하는 애절한 마음을 시로 쓴 것을 도망시(悼忘詩)라고 한다. 도망시를 남긴다는 것은 당시의 성리학적인 분위기에서는 보통 용기 있는 행위가 아닐 수 없는데도 심노숭은 감정 표현에 거침이 없었다.

죽은 아내의 영혼만 붙잡고 살 줄 알았던 그도 나중에는 재혼을 했고 뒤 늦게 벼슬길에 나서게 된다. 그는 군수와 현감 등의 지방직으로 발령을 받을 때마다 꼭 전주 이씨 부인의 무덤을 미리 찾아보고 부임을 했다고 한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죽어서도 부부 간의 의리(?)를 지켰던 로맨티스트였다.

그의 마지막 임지가 현재 충남 부여군 임천면으로 그는 임천 군수로 부임하게 된다. 그가 재직하던 당시였던 1824년에는 보기 드물게 대풍년이 들어서 민관합동으로 정성을 모아서 관아의 문루와 객사를 다시 짓게 되었다.

현재 부여군 임천면에는 동헌과 객사의 흔적도 없고 문루만 부소산으로 옮겨서 '개산루'라는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사자루' 라는 현판으로 바꿔달고 있다. 원래 동헌과 객사, 문루는 한 세트로 조선시대의 지방 행정 기관이었다. 흔히 사극에서 볼 수 있는 사또가 근무하던 곳이다. 임천동헌은 심노숭 군수가 근무하던 곳이다. 객사는 암행어사가 출두하면 머무는 곳이기도 하고 임금의 전패를 모시고 한 달에 두 번씩 배례(拜禮)를 올리는 곳이다. 임천동헌과 객사, 개산루 등은 건물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지금은 임천면 사무소 건물이 자리 잡고 있으니 행정기관이었던 역사만 간직하고 있다.

사자루 원래 임천동헌에 개산루 라는 이름으로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부소산으로 옮기면서 사자루라는 이름으로 현판을 바꿔달았다. ⓒ 오창경


다만 부여군 임천면 사무소 입구에는 3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멋있는 노거수 한 그루가 있다. 향토 유적 89호 '임천 관아터 소나무'로 심노숭이 군수로 재직할 당시에는 수령이 백년 쯤 되었을 때이니 먼저 간 아내 생각을 하며 그 나무 아래를 거닐었을 것 같기도 하다.

부여 임천면사무소 앞 소나무임천군수 심노숭이 근무할 당시에 수령이 1백년이었을 소나무. 지금은 수령이 3백년 가량되었다. ⓒ 오창경


조선 최고의 애처가이며 수필가였던 심노숭과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백제의 유적이 모든 유적을 앞서는 부여군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그가 남긴 도망시와 저서들로 인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흔적은 부여군 임천면의 입구 비석거리에 많은 비석들 속에 '군수심후노숭거사비'(郡守沈候魯崇去思碑)라는 비석으로 남아 있다.

심노숭의 비석부여 임천면 입구에 남아있는 임천군수 심노숭의 거사비 ⓒ 오창경


21세기 도종환 시인이나 조선의 심노숭 못지않은 애처가이며 로맨티스틀 자처하는 남성들이 있다면 사랑하는 여인이나 아내들과 함께 부여 임천에서 애처가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서로 '있을 때 잘하자'라는 마음가짐을 다지는 곳으로 부여 임천면을 찾아와 심노숭의 흔적을 둘러보고 사극의 단골 촬영지인 성흥산성의 사랑나무에 올라서 애틋한 마음을 다져보자. '애처가'로 알려진 도종환 시인의 문체부 장관 청문회를 지켜보며 조선시대에도 최고의 애처가였던 심노숭이라는 인물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살았음을 알리고 싶었다.

성흥산 사랑나무 부여 임천면 성흥산성의 사랑나무. 사극 서동요 등 드라마의 단골 배경으로 출연했다 ⓒ 부여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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