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비즈룩' 입으라더니... "애들이라도 꼬셔보게요?"
[시원한데 열불난다 ②] 쿨하지 않은 쿨비즈, 직장 내 복장 간섭 좀 그만합시다
무더운 여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연일 폭염 경보가 날아듭니다. 숨만 쉬어도 열나는 요즘, 옷이라도 시원하게 입고 싶은데 따가운 시선이 돌아옵니다. '쿨비즈' 외치더니 반바지는 안 된다는 직장 상사, 노브라로 다니면 역정 내는 할아버지, 반소매 티셔츠 입으니 제모 안 하냐고 묻는 친구까지. 그야말로 '시원한데 열불나는' 사례들을 모았습니다. 타인의 옷차림을 재고 따지는 건 이제 그만! [편집자말]
▲ 서울과 광주광역시 등 일부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16일 오후 여의도 도로에 지열로 인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올해 서울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것은 처음이다. 2017.6.16 ⓒ 연합뉴스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싶었던 주말 아침. 맞춰놓지도 않은 요란한 알람 소리에 강제 기상했다. 국민안전처의 폭염 주의 문자였다. 매번 '이례적 더위'라지만, 유난히도 빨리 찾아온 더위에 쉽게 지치는 요즘이다. 아침에 지하철역으로 갈 때나, 지하철역에서 사무실로 들어가는 몇 걸음에도 금방 땀이 맺히는 정도니 말이다.
나는 유난히 얼굴에 땀이 많은 편이라 화장이 종종 얼룩지곤 한다. 지난달 말에 사무실 식구들과 구입한 휴대용 선풍기가 없었다면 땀으로 지워진 화장을 수정하느라 하루에 파운데이션 반 통씩은 거뜬히 썼을 것 같다.
출근길은 휴대용 선풍기로 잘 버텼다 치자.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어떨까? 다행히 내가 다니는 직장은 에어컨 사용이나 복장 제한이 없다. 사무실은 본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 곳. 이런 자유도 없으면 어쩌나 싶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어쩌나' 싶게 사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라.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에서, 가만히 있어도 답답한 그 공간에서 쿨하고 싶어도 쿨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봤다. (분노 주의)
▲ 이른 더위로 쿨비즈룩의 시행도 빨라졌다고 한다. 쿨비즈(Cool-biz)룩이란 '시원하다(Cool)'는 뜻과 '업무(Business)'의 합성어다. ⓒ pixabay
쿨비즈룩,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이른 더위로 쿨비즈룩의 시행도 빨라졌다고 한다. 쿨비즈(Cool-biz)룩이란 '시원하다(Cool)'는 뜻과 '업무(Business)'의 합성어다. 넥타이를 매지 않거나 재킷을 벗는 등 비교적 활동성이 좋고, 간편한 옷차림으로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엔 다양한 업종에서 시행 중이라고는 하는데,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물류업계에 종사하는 지인 A씨 회사의 경우, 쿨비즈룩을 입을 수 있는 기간이 여름철 최고 기온에 따라 아주 한시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나마도 긴 바지를 입어야 하는 건 변함 없고, 상의는 카라가 있는 피케티만 허락되는 정도다. 작년 A씨는 시원한 정장 바지를 찾아 '옷가게 삼만리' 여정을 다녀왔다나 뭐라나. 쿨비즈 기간이 끝나면 여지없이 셔츠 필수의 정장 차림을 준수해야 한다.
B씨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방사선사로, 근무 시 유니폼을 착용한다. 하지만 출퇴근 복장 규정은 따로 있다. 상의는 무조건 카라가 있어야 하고, 하의는 청바지를 제외한 긴 바지를 입어야 한다. 어차피 출근하면 곧바로 갈아입는데, 출퇴근 복장마저 제한하는 걸 이해할 수는 없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단다.
공기업에서 근무 중인 친구 C는 '알아서, 눈치껏' 세미 정장 스타일(상의는 긴 팔이나 반소매 블라우스, 하의는 슬랙스나 정장 치마 정도)을 고수한다. 복장 지침에는 반소매이나 반바지도 허용된다고는 하지만, 사무실 안에서 그만큼 자유롭게 입은 동료를 여태껏 아무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업무 특성상 일반 주민도 많이 응대하는 편이라, 적당한 정장 차림을 유지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이미 많은 것들을 포기해버린 듯한 그 모습이 더 짠하게 보였던 이유는 왜일까.
▲ C가 구매를 고려 중인 '쿨 스타킹'. 어차피 신어야 한다지만, 쿨 스타킹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니... ⓒ 쇼핑하우 갈무리
"어려 보이니 적당히" 혹은 "애들이라도 꼬셔보게요?"
영업직의 현실은 더 가혹하다. 절친한 동기 D의 남편은 외부 업체나 고객에게 '어려 보이면 무시 받는다'는 이유로 정장 차림을 강요받는다. 반소매 셔츠보다는 긴 팔 셔츠가 깔끔해 보인다는 상사의 지침에 따라, 여름에도 긴 팔 셔츠가 필수다.
최근엔 날씨가 너무 더워 평소보다 머리를 좀 짧게 깎았더니 상사로부터 "머리를 짧게 자르니 너무 어려 보인다. 적당한 길이는 유지했으면 한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유로울 수 없는 D의 남편은 스트레스가 폭발할 지경이라고.
학원 강사인 E는 일터에서 특별한 복장 규정은 없지만, 사실 평소에도 그렇게 짧은 차림을 즐겨 입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더워도 너무 더워진 날씨 때문에 근무 이래 처음으로 무릎 위로 올라오는 스커트를 입었다고 한다. 소위 짬(?) 좀 높은 동료 강사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폭격을 날렸다.
"선생님, 못 보던 스타일이네요? 애들이라도 꼬셔보게요? 한참 어린 애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으신가.(웃음)"
이후 E는 그냥 문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스커트는 가급적 피한다고 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정신 승리를 도모해본다.
▲ 직장 안에서의 '적당한 선', 대체 어디까지일까. 애초에 그런 게 존재할까. ⓒ pixabay
일터에서 대체 어느 정도의 '적당한' 선을 유지해야 하는 걸까. 카라가 있는 반소매는 일하기에 적절하지만, 카라가 없는 반소매는 그렇지 않다는 건 상식선에서 충분히 납득하기 어렵다. 수긍하기 어려운 규정도 그렇지만, 개인의 지극히도 주관적 기준에 따라 옷차림과 외모를 연결 지어 평가하는 것 또한 엄연히 폭력이다. 논리 없는 기준에 그 편한 반바지를 못 입고, 매번 마음의 상처만 입는다.
보통의 성인이라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보편타당한 복장을 '알아서' 잘 골라 입는다. 타인의 복장을 두고 간섭할 수 있는 영역인지, 아닌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게 더 문제다. 규정과 폭력을 넘나드는 지적질만 덜 해도 사무실 공간이 훨씬 더 쿨해지지 않을까? 오늘도 쿨할 수 없는 사무실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고 있을 친구와 누군가에게 이 글이 잠시나마 '사이다'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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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라, 안 춥니?" 내가 벗겠다는데 당신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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