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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감자 반쪽 심어 통감자 15개 수확

3kg로 20kg 얻어... 가뭄 속에서 캐낸 '황금알'

등록|2017.06.26 13:58 수정|2018.01.05 16:53

▲ 모래땅에서 캐낸 황금알, 감자 ⓒ 최오균


믿을 수가 없다! 썩은 씨감자 반쪽에서 이렇게 많은 감자가 주렁주렁 달리다니 말이다. 더구나 사상 최악의 가뭄에다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황량한 사막 같은 모래땅에서 황금알처럼 쏙쏙 감자를 캐내는 재미는 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정말 모른다.

모래땅에서 감자를 캐는데 뜨거운 지열에 손을 그만 데일 것만 같다. 하짓날 캐내는 감자는 캘 때부터 말 그대로 '뜨거운 감자'다. 땡볕에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구슬땀을 뻘뻘 흘리며 감자를 캐다 보니 이거야 정말, 열사의 사막에서 감자를 캐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도 모래 속에서 감자 줄기를 잡아당길 때마다 연한 줄기에 열 개 내지는 열댓 개 정도의 크고 작은 감자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재미에 그만 더위를 잊고 만다.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감자 캐는 재미에 흠뻑 젖어 든다. 모래땅에서 황금알을 캐내는 기분이다. 기적이 따로 없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줄기에 이렇게나 큰 감자가 열리다니!

▲ 가느다란 줄기를 통해 영양을 저장하며 잠잠 커지는 감자 ⓒ 최오균


▲ 소금처럼 피어나는 흰감자꽃과 자주색 감자꽃 ⓒ 최오균


지난 3월 하순에 남작(흰 감자)과 자주감자를 각각 3kg씩 쪼개 두 이랑에 나누어 심었다. 감자를 심을 때 말고는 거의 물을 준 기억이 없다. 비도 거의 오지 않았다.

꽃도 따주지 않았다. 꽃을 따 주어야 감자 씨알이 굵어진다고 했지만, 소금처럼 하얀 꽃과 자주색으로 피어나는 꽃이 관상용으로 볼만했기 때문이다. 꽃은 꽃대로 날마다 감상하며 그대로 두었는데도 이렇게 크고 작은 감자가 열리다니…. 원더풀! 남작 씨감자 3kg을 심어 20kg 정도의 감자를 캐낸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6개월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 칠레의 메마른 산과 남부지역 섬의 습기 많은 숲에서 똑같은 식물이 자란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남미를 탐험할 당시 메마르고 척박한 고산지대에서 자라나는 감자를 보고 이같이 감탄했다고 한다. 그의 말이 실감 난다.

강원도의 척박한 고랭지에서 자라는 강원도 감자와 제주도의 습한 저지대에서 나는 제주도 감자도 같은 이치다. 감자는 고산, 저지대, 극서, 극한지방과 상관없이 어디에서든 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다.

감자와 고구마는 '사촌지간'이 아니다

▲ 아이들 머리통처럼 커진 하지감자 ⓒ 최오균


감자는 나처럼 '못생긴' 식품이기도 하다. 울퉁불퉁한 모양과 우중충한 색깔이 볼품없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페루 안데스 산맥에 유럽으로 감자를 들여왔는데, 한때 유럽에서는 싹을 틔우는 감자의 작은 점들이 당시 무시무시한 병이었던 천연두의 마마 자국처럼 생겼다고 해서 '악마들이나 먹는 식품'이라고 터부시하기까지 했다.

오죽했으면 못생긴 사람들을 두고 감자처럼 생겼다고 했을까? 하지만 이토록 퉁명스럽게 생긴 감자는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배고픔과 기근을 해결해준 구황작물이기도 하다. 이제 감자는 벼, 밀,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작물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식량이다. 세계인의 주식으로, 또한 현대인들이 즐기는 패스트푸드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감자는 도대체 어떤 식물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감자는 뿌리식물이 아니다. 감자는 가짓과에 속하는 쌍떡잎식물로 한해살이 줄기식물이다. 흔히 감자와 고구마가 둘 다 땅속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사촌지간 정도로들 여기지만, 감자는 가지, 토마토, 고추, 토란, 돼지감자 등과 같은 가짓과 식물에 속한다. 반면에 고구마는 메꽃과 식물로 뿌리식물에 속한다. 

감자는 잎줄기에서 땅속으로 뻗은 굵은 줄기 마디로부터 땅속으로 철사처럼 가느다랗고 하얀 '기는줄기'가 뻗어 나와 그 끝이 비대해지며 '덩이줄기'를 형성한다. 감자는 이 덩이줄기의 끝에 양분을 저장하며 점점 뚱뚱해지면서 둥글게 변한다.

감자는 씨앗이 아닌 줄기라는 영양기관을 통해서 영양생식을 하는 줄기식물이다. 태아가 탯줄을 통해 양분을 빨아들이며 점점 커지는 이치와 같다. 우리가 먹는 통감자는 뿌리가 아닌 줄기라는 것이다.

아내에게 감자가 줄기라고 말했더니 "감자가 줄기라니요, 그게 뿌리지 무슨 당치도 않은 억지 말씀을 하세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학술적으로 감자는 하얀 줄기를 통해 영양을 빨아 먹는 줄기식물이다. 하지만, 나 역시 감자가 뿌리라는 아내의 생각과 별다름이 없다. 덩이줄기는 괴경(塊莖)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덩이줄기의 오목하게 팬 자국에서 작고 어린 싹이 돋아난다.

아침 식탁에 오른 햇감자의 맛이란!

▲ 감자는 줄기를 뻗어 맨끝에 덩이줄기를 형성하는 한해살이 줄기 식물이다. ⓒ 최오균


하짓날 남작을 캤더니 완전한 흰색은 아니지만 다소 노리끼리한 감자가 쏟아져 나왔다. 아직 자주감자는 캐지 않고 있다. 보나마나 캐보면 자주색 감자가 열렸을 것이다.

"자주꽃 핀건 자주 감자/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하얀꽃 핀건 하얀 감자/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자연의 섭리를 노래한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은 단순하면서도 명약관화하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이 시를 개사해 이렇게도 불렀다고 한다.

"조선꽃 핀 건 조선감자/파 보나 마나 조선감자/왜놈꽃 핀 건 왜놈감자/파 보나 마나 왜놈감자"

일제강점기 춘궁기에 배고팠던 우리 민족의 설움을 대변했던 시이기도 하다.

이처럼 감자가 열리는 것은 흰 깃털을 가진 흰색 레그혼(Leghorn, 흰 닭)은 흰색 달걀을 낳고, 갈색 털옷을 입은 갈색 레그혼(갈색 닭)은 갈색 달걀을 낳는 이치와 똑같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격이다.

▲ 아침 밥상에 올라온 뜨거운 햇감자 ⓒ 최오균


어떤 감자는 달걀만큼 크고, 어떤 것은 거짓말을 좀 보태면 아이들 머리만 하다. 이렇게 심기만 하면 황금알을 낳아주는 감자는 우리에게 참말로 고마운 식물이다.

감자를 캐낸 하짓날 다음 날 아침. 아내가 감자를 압력밥솥에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감자'를 밥상에 올렸다. 뜨거운 햇감자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 맛이 그만이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삼킬 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를 식탁에 올려놓고 논쟁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서민들이 먹기 좋고 배고픔도 해결해 줄 수 있는 '뜨거운 감자'를 밥상에 올려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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