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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80대 농부의 한숨, "이런 가뭄은 처음"

소류지, 둠벙 등 물관리 자주화 노력 주장도

등록|2017.06.23 09:07 수정|2017.06.23 11:31

말라 버린 모평리 논7월 중순까지는 물이 필요한데 벌써 말라버린 논 ⓒ 최효진


대호 간척지 염해 피해 논갓 심은 모는 염해에 저항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 최효진


오지 않는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이 원망을 넘어 자포자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충남 당진시는 최근 몇 년간의 봄 가뭄에도 삽교천 덕분에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을 보여줬지만 올해는 농민들의 인내도 한계치를 넘어선 분위기다.

삽교천 농업용수의 영향권 밖에 있어 모내기를 늦게 하게 된 장석철(80·모평리)씨의 논은 갓 심은 모에 물을 대지 못하고 말라 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어렵게 심은 모가 죽을 것은 확실하다. 당진에 비가 내린 지난 6일과 7일 만난 장석철씨는 "충분하지 않아도 비가 오니 물이 내려올 것이다. 좀 더 내려주면 써레질하고 며칠 후에는 모를 심을 수 있다"고 안도 했었다. 하지만 21일 찾은 장씨의 논은 바닥이 모두 말라 버렸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늦게 심어 놓은 모는 타 죽는 것이 시간문제로 보였다.

인근에 논을 갖고 있는 이우창(77·봉생리)씨 역시 "을사년(1965년)에도 가물었다. 하지만 그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양수 기술이 발전한 요즘에 이런 상황이면 당시보다 훨씬 심한 것이다. 7월 중순까지는 물이 필요한데 비가 오지 않으면 갓 심은 모는 다 죽는다고 봐야 하고 설령 산다고 해도 쭉쩡이가 될 것이다. 당장 소방차라도 와서 살수를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한탄했다. 이이자(77·모평리)씨 역시 "마늘 심어 놓은 것은 물을 줄 수가 없어 다 말라버렸다. 집에서 먹을 것조차 없다"라고 말했다.

당진시내의 생활용수까지 공급할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던 역천 역시 바닥을 드러낸 상태다. 농민들이 물을 끌기 위해 깔아 논 주황색 호스만이 뱀허물처럼 곳곳에 늘어져 있을 뿐이다.

모평리 들판뿐이 아니다. 간척지는 부족한 농업용수에 때문에 염해가 심각하다. 대호간척지의 경우 조사료로 사용하려고 심어 놓은 옥수수는 자라지 못했다. 대호간척지에서 일하고 있는 이성선(48·송산리) 씨는 "옥수수는 끝났다. 총채벼를 심어야 하는데 비가 오지 않아 걱정이다. 집 근처에 심은 양파 역시 부피는 괜찮은데 막상 들어보면 무게감이 전혀 없다. 봄철 밭농사도 망쳐버렸다"라고 말했다.

대호간척지는 일반벼의 경우 모내기를 거의 마쳤고, 최근에는 총채벼(사료용벼)를 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심어 놓은 일반벼 역시 염해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간척지에서는 염해 를 입어 노랗게 변해 버린 논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씨는 "일요일(24일)에 비가 온다고 예보하는데, 반드시 와야 한다. 용수를 끌어다 쓰는 것과 하늘에서 오시는 비는 천지 차이다"라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당진시는 대운산리, 모평리, 덕마리, 행정동 등 산동지구의 경우 고풍저수지와 역천이 바닥을 보임에 따라 산동지구 농업용수개발 사업을 2020년 완공예정보다 빠르게 앞당기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완공시기를 지금 예측하기는 힘들다.

한국농어촌공사가 담당하고 있는 담수호도 문제다. 농촌수자원 자료를 보면 23일 기준 삽교호저수율은 5.7%, 대호호 저수율은 7.8%를 기록하고 있다. 석문호의 경우만이 저수율 77.6%를 기록하고 있는 상태다.

농민들이 담수호 관리에 있어서 분통을 터트리는 이유는 대호호의 경우 농업용수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 10만 톤을 대산공단으로 보내며 소위 '물장사'를 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최소한 갈수기만큼은 농업용수의 목적에 맞게 대호호 수계를 유지했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농민들의 감정이 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7일 농림부를 방문한 당진시농민회 역시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20% 이하로 저수율이 떨어지면서 대호호의 공업용수 제공은 멈춘 상태다. 충남도는 비교적 풍부한 아산호의 물을 삽교호와 연결하는 도수로 공사를 추진 중이고, 삽교호 담수량을 높이기 위해 준설작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당진내의 거대 담수호인 삽교호, 석문호, 대호호의 수계를 연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충남도의 구상에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아산호까지 삽교호 연동범위 내에 넣는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이런 장기 대책 말고도 비교적 짧은 시기에 만들어야 할 것 중에 소류지를 언급하는 농민들도 있다. 수리시설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지역의 경우 소류지와 작은 둠벙과 생태연못 등이 가뭄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진시우리농업살리기운동본부 김희봉 상임대표는 "이번 가뭄에 마지막까지 용수를 공급받지 못한 지역들이 있다. 이 지역에는 소류지와 둠벙 같은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농민들이 관만 처다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물관리도 자주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 향후 비교적 깨끗하게 관리된 물을 통해 친환경 우리쌀을 재배해 소농들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충남서북부 지역은 봄가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왔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충남도와 당진시 그리고 농어촌공사에서 내 놓는 대책들이 봄가뭄이 지난 후에도 확실하게 실행되어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당진신문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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