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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의 낡은 시대인식, TK에 갇힌 개구리 같아...

등록|2017.06.29 10:38 수정|2017.06.29 10:38

▲ 자유한국당의 당 대표 최고위원 선출 제2차 전당대회가 지난 25일 오후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당 대표 후보(왼쪽부터 신상진·홍준표·원유철)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정민규


자유한국당의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7.3 전당대회가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총선 직후인 지난해 8월 열렸던 전당대회와 단순 비교해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총선 패배의 여진이 있는 가운데 치러진 당시 전당대회는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나름 흥행에도 성공했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명색이 제1야당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언론은 물론이고 대중의 관심 역시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6월 3주차 주간동향 조사에 따르면, 한국당의 정당 지지율은 전주보다 0.2%포인트 빠진 14.5%를 기록하고 있다. TK·PK라는 탄탄한 지역기반과 보수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40% 안팎의 안정적인 지지율을 보이던 1~2년 전의 상황에 비하면 믿을 수 없는 결과다(※ 여론조사 결과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두가 안다. 미증유의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분당, 그리고 이어진 대선에서의 패배. 한국당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번 전당대회가 중요한 것은 바로 그래서다. 참담한 실패의 과정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낡은 정치 관행과 결별해서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길만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당이 재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당 안팎으로부터 뼈를 깎는 혁신의 요구가 분출되고, 지역주의·색깔론 같은 구태의연한 정치 문법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한국당에 덧씌어져 있는 '수구'의 이미지를 벗겨내지 못하는 한 당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한국당의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입으로는 미래와 혁신을 주창하고 있으면서 정작 그들의 시선은 과거를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거의 잘못에 대한 냉혹한 평가도, 책임도 없다. 행동이 따르지 않은 외침, 반성과 책임이 결여된 혁신과 개혁은 어디까지나 기만이자 자기부정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당의 변화가 기대난망인 이유다.

한국당 당권주자들의 TK지역 합동토론회가 열렸던 28일 경북 경산실내체육관. 과거를 붙들고 열심히 씨름하는 노쇠한 정당의 현주소를 이곳에서 엿볼 수 있다. 이날 당권주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TK지역 민심을 얻기 위해 지역주의와 색깔론, 그리고 편향된 이념과 철학을 드러내 보였다. 이 와중에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TK의 희망이며 중심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산 자들의 욕망은 이처럼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교묘하게 뒤섞으며 대중의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는다.

 "역사의 공과가 있지만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대통령들이 TK의 희망이었고, 또 중심이다"(홍준표 후보), "우리당이 국민과 함께 국정불안의 씨앗을 파헤쳐서 안보불안감을 해소시켜드리고 우리당이 대한민국 경제성공신화를 만든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어낸 한강의 기적을 반드시 만들어 내야 한다"(원유철 후보), "우리는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고 한국당의 위기를 막지 못했다. 지금 너무 어렵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번영을 이끌어온 보수의 자존심을 저와 다시 살려 내야하지 않겠나"(신상진 후보).

세 사람은 무너진 당을 일으켜 세우고, 보수진영을 재건하겠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동원하고 있는 수단과 방법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과거를 소환함으로써 현실의 곤궁함을 탈피하려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구시대적인 정치 문법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그런 낡은 정치 공세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그런 구태 때문에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저들 중 누구도 호명된 인물들의 과거의 잘못과 오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거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공과는 존재하기 마련이며, 그로 인한 논쟁 역시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과'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공'만 취합해 기억하겠다는 것은 반쪽짜리 기억을 이식하겠다는 것밖에는 안 된다. 일례로 이 땅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저들이 이구동성으로 예찬하는 박정희의 이면에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독재의 그림자가 어려있다. 박정희 시대에 비약적인 경제성장이 이뤄졌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철권통치의 악몽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과 '과'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홍준표·원유철·신상진 후보의 인식이 이 기본적인 상식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저들의 박정희 찬가가 지극히 불편한 이유다. 물론 저들이 저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TK지역은 박정희의 그림자가 지배하는 땅이다. 죽은 독재자가 '반인반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곳에서라면 박정희에 대한 찬가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에 맞는 '시대정신'이라는 것도 있다. 촛불정국에서 확인된 2017년의 시대정신은 구시대적인 시스템, 관행과의 절연이다. 사회를 관통하는 시대적 요구인 적폐청산의 요체가 바로 그것에 있다. 정경유착, 권위주의, 부정 부패와 같은 개발독재시대의 유산과 결별하라는 것이 이 시대의 명령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탄핵'은 박정희 시대의 종언을 구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박정희 시대를 뛰어넘어 21세기에 걸맞는 정치·사회적 패러다임을 구축하라는 소명이 이 사회에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 지역주의에 의존하고 철 지난 색깔론으로 무장한 채 시대정신과는 동 떨어진 얘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 모습은 흡사 TK에 갇힌 개구리를 연상케 한다. 낡은 것에 집착하는 정당이, 변화와 혁신을 주저하는 정당이,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는 정당이,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당이 쇠락하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어쩌면 한국당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노쇠한 정당의 미래가 지극히 불투명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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