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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시대는 불가능한가?

누구나 한시간 일한 값으로 점심은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등록|2017.07.03 09:55 수정|2017.07.03 09:55
최저임금이 뜨거운 감자를 넘어서 새까맣게 불타버린 감자가 되었다.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 원으로 올린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당시 다른 후보들의 공약이 주요한 근거다. 그런데 그 공약을 추진하려다 보니 다양한 계층에서 최저임금 상향에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소상공인의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다. 경기가 위축되어 어려운 상황인데 최저임금까지 인상할 경우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시야를 좁혀 소상공인만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현재 상태에서 최저임금을 올릴 경우 예상되는 현상은 소상공업인의 크게 두 가지, 소득감소와 물가 상승이다. 전자는 제품(식품)의 가격을 동결했을 때 벌어지는 현상이고 후자는 최저임금을 올린만큼 가격을 올렸을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은, 우리나라 인구 다수가 소상공인이라는 현실을 반영할 때 경제위축으로 악 순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이 반대 측의 논리다.

타당할 것 같은 논리이지만, 여기에는 숨어 있는 모순이 있다. 그 모순이란 '실제 조정 가능한 경제여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중소기업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중소기업이 어려운 까닭은 기술혁신 등의 중소기업 자체 문제가 아니라 원청인 대기업의 횡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중소기업이 제살깎아먹기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여건만 조성된다면, 중소기업의 최저임금 문제는 일정부분 해소될 수 있다. 소상공인의 문제도 비슷하다. 인건비(최저임금)가 주요한 요인을 차지하지만, 그것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소상공인이 지속적인 영업을 보장할 수 없는 환경과, 높은 임대료 문제다. 또한, 일부 업종의 과밀한 경쟁은 가득 찬 총알로 소상공인끼리 러시안룰렛을 하는 것과 같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가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업종이 식당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점심식사는 5천 원이 정석이었으나 이제 7~8천 원을 넘어서며, 적당히 먹었다 생각하면 1만 원을 훌쩍 넘긴다. 음식 가격이 오른 까닭은 단순히 한두 가지의 문제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오른 음식가격에 비례하여 우리의 최저임금은 얼마나 올랐는가?

'경쟁과 최저임금'이 얼마나 끈끈한 연관 관계가 있는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어쩌면 최저임금 문제는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경쟁사회'를 오독(誤讀)한 까닭에 발생한 문제일 수 있다. '기승전-최저임금'이라는 일방적인 공식으로 묶어 최저임금이 모든 문제의 원인처럼 환류(還流)되도록 만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최저임금보다 대기업의 횡포. 독과점과 영세업체가 조밀하게 난립하지 않도록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체질 개선 작업을 선행하는 일이다.

최저임금 문제는 실상 단순하지 않다. 반도체나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산업의 뿌리도 결국 최저임금과 얽힌다. 모든 여건을 그대로 두고 최저임금을 올린다는 것은 한 부분에 압력을 가해 물가를 올리겠다는 의미와 같다. 그러므로 단순히 최저임금이라는 사각의 틀 안에 갇혀 탁상공론만 한다면, 올해의 최저임금도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이 긴 줄다리기를 하다 한해를 넘기는 어느쪽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럭저럭인 결과물'로 갈음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밀고 당김이 서로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풍토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기업을 위시한 사용자 측은 이 문제를 풀 생각이 전혀 없고, 노동자 측에서는 할 수 있는 결단이 투쟁밖에 없으니,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책임 있는 관계자는 정부뿐이다.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공약했으니, 그 가능성을 먼 미래가 아닌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에 실현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시간 일한 값으로 점심 한 끼는, 하루 일한 값으로 온 가족이 하루 세끼 넉넉히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우리의 일상적인 보편으로 느껴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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