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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선생의 글쓰기 강좌는 어떻게 다를까

현직 국어교사가 읽은 <헤르메스적 글쓰기>

등록|2017.07.04 09:28 수정|2017.07.04 09:28
토론 전도사, 아니 토론의 전사로 널리 알려진 유동걸 교사가 이번에는 글쓰기 책을 냈다. 2012년 출간한 <토론의 전사> 1, 2권을 시작으로 <공부를 사랑하라>, <강자들은 토론하지 않는다>, <토론의 전사> 3권, <질문이 있는 교실>로 숨가쁘게 이어져 온 유 교사의 글쓰기가 이제 아예 글쓰기 책을 내기에 이른 것이다. <헤르메스적 글쓰기>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의 부제는 '나는 이렇게 썼다'.

▲ <헤르메스적 글쓰기> 책표지 ⓒ 이미혜

글쓰기 책을 낸 사람이 유 교사만은 아니다. 포털 사이트에 '글쓰기 책'이라고 검색어를 입력하면 줄줄이 목록이 뜬다. 글 좀 쓴다는 기자나 저술가들이라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글쓰기 책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다들 글쓰기의 두려움을 덜어 주고 글쓰기의 진수를 전해 준다고 독자를 유혹한다.

인간의 본성이랄 수 있는 순수한 표현과 창작 욕구뿐 아니라, 학교 과제물, 논술 시험, 입시나 입사를 위한 자기소개서, 직장인의 보고서를 비롯하여 실용적 목적의 글쓰기가 평생을 따라다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라는 괴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런 만큼 글쓰기의 어려움과 두려움을 겨냥한 글쓰기 책이 많이 출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터넷에는 "글쓰기 책 추천해 주세요"라거나 "글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같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글쓰기는 난공불락의 요새 같다.

나 역시 이러한 글쓰기의 고민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명색이 국어교사지만 글쓰기는 늘 어렵고,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거나 아이들의 글을 읽고 고쳐 주는 일도 쉽지 않다. 이런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 줄 글쓰기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세부적인 비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 교사는 '글쓰기 책을 쓰는 이유'를 밝힌 서문에서 자신의 글쓰기 방법에 대해 '비법'(秘法)이 있다고 자신한다.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목차는 매혹적이다. 그 내용은 '왜 글을 쓰는가'로부터 시작하여 '글의 열쇳말 역할을 하는 목차, 소재의 선택, 글 쓰는 이의 진정성 문제, 메모와 녹취에 대하여, 독후감 쓰기, 사진의 중요성, 글의 제목 다는 법, 글쓰기의 힘을 기르는 시와 편지, 독서의 역할, 퇴고에 대하여, 인용의 의의, 모방에 대한 생각, 한 권의 책을 쓰는 방법, 멘토의 필요성'까지 총 15가지 키워드를 다루고 있다. 어느 장 하나 소홀히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다. 가히 한 편의 글이 탄생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요소가 망라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글쓰기 지침서로서 손색이 없다.

유 교사는 자신을 헤르메스에 비유한다. 헤르메스는 전령이다. 유 교사는 자신의 글쓰기가 경계를 뛰어넘고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시대성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글쓰기를 헤르메스적 특징을 활용한 글쓰기라고 명명했다. 그의 말처럼 그의 글은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풀어 놓고 어디로 튈지 모르게 종횡무진 내달린다.

사람들은 글을 왜 쓸까? 유 교사의 글에도 나오듯이 '누군가 읽어 주기 바라기' 때문이리라. 자신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 토로하고, 그것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은 소통의 욕구가 내면에 꿈틀거리기 때문이리라. 그럼 왜 글을 잘 쓰고 싶어 할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하여 한 치의 오차 없이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유 교사는 왜 글을 쓸까? 그는 자신의 글을 읽어 줄 독자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글쓰기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타자의 관심과 인식이 없다면 그의 글은 존재 근거와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기에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신과 생각과 노력을 빨아먹으려고 기다리는 독자에게 오롯이 온몸의 피를 내어 주겠다는 심정으로 독자들이 어떤 글을 원하는가를 깊이 읽는 마음이 글쓰기의 첫 단추라고 말한다.

그는 말한다. 글쓰기는 소통이다. 소통의 핵심은 다 벗는 일이다. 즉 쓰는 것은 벗는 것이다. 수없이 자기 검열에 시달리는 비루함을 벗고 번뇌도 쾌락도 욕망도 슬픔도 모두 독자 앞에 커밍아웃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통이 일어난다. 이렇듯이 존재 전체를 투신하는 글쓰기는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자 수련하는 일이다. 그는 그것을 '진정성'이라고 말한다.

유 교사의 글쓰기 스승은 이오덕 선생이다. 그는 유 교사의 글쓰기의 시작이자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자신감과 원체험을 준 이로 소개된다. 유 교사가 현재 재직하고 있는 영동일고등학교로 옮기기 이전, 첫 사랑 같은 교사 체험을 안겨 줬으며 동시에 뼈아픈 상처로 남기도 한 동구여중에서 유 교사는 윤구병, 이오덕 선생이 진행하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이라는 글쓰기 강좌를 처음 접했고, 그 강좌가 유 교사의 삶을 바꾼 최초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유 교사는 좋은 교사로 살아가려면 용기와 지혜와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오덕 선생의 글쓰기 교육은 유 교사가 좋은 교사로 살아가도록 열정과 깨달음의 불씨를 지펴 주었고, "삶이 바르게 되어야 바른 생각이 만들어지고 바른 생각에서 바른 말이 나오고 그걸 글로 써야 좋은 글이 된다"는 선생의 말은 유 교사의 글쓰기의 평생 좌표가 되었다.

이제 처음의 내 고민으로 돌아가 보자. 글을 잘 쓰고 싶지만 생각 따로 글 따로, 늘 표현이 생각을 따라가 주지 못해 답답하다고 느끼는 나는 비법을 찾았을까.

애초에 이 책의 부제는 '나는 이렇게 썼다'였다. '이렇게 쓰면 잘 쓴다'가 아니었다. 유 교사는 그의 관심사와 살아온 역정과 사색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유려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고, 토론 선생답게 구어체에 강세를 보이며 말하듯 글을 쓰고, 요모조모 자신이 글쓰기를 하면서 정리한 팁들을 대방출한다.

하지만 그가 서문에서 말했듯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글을 쓰는 과정을 보여줄 뿐, 독자도 그처럼 쓰라거나 쓸 수 있으리라는 것은 아니다. 유 교사의 책이 내게 혀를 내두르게 한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유 교사처럼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사랑을 논하는 책을 아무리 많이 본들 사랑을 글로 배울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글은 '비법'이나 '요령'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유 교사는 '글이란 삶의 기록물'이라는 식의 표현을 여러 번 사용한다.

그러므로 글이 한계에 부딪치고 벽을 만난다면, 그것은 글을 고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삶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글쓰기를 '기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삶과 사색이 깊어지고 탐구와 학습이 켜켜이 쌓일 때 글은 저절로 좋은 글이 되고 잘 쓴 글이 된다.

그렇다면 글쓴이의 실제보다 더 요란해 보이는 글은 잘 쓴 글이 아니라,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글쓴이가 생각한 만큼을 다 표현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조금 더 훈련이 필요한 경우가 될 것이다. 가장 잘 쓴 글은 다른 글과 비교해서 문체가 유려한 글이 아니라, 글쓴이 자신의 삶을 잘 반영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담아낸 글이다.

유 교사가 서문에서 '비법'이 있다고 자신한 것이 빈 말은 아니다. 그가 토론 선생으로 출발하여, 즉 말을 하다가 그 말을 글로 풀어내게 되기까지, 또한 헤르메스를 자처하며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구축하게 되기까지 스스로 터득한 글쓰기의 기술들이 책에는 장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열쇳말을 잘 찾으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횡재를 만나기도 한다거나, 메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녹취의 힘이 글쓰기의 바탕이 된다거나, 사진은 상상력을 죽이지만 기억력을 살려준다거나, 제목은 글에 얼을 불어넣는 정령이라거나, 퇴고 과정에서 과감하게 덜어 내는 것은 살을 내어 주고 뼈를 취하는 글쓰기라거나, 인용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이라거나, 책을 쓰려면 자기만의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등 밑줄이 필요한 순간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그런 '비법'들에 있지 않다. 이 책은 글 쓰는 사람의 자세와 독자와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말 걸 듯 편안한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주기도 하고, 글을 이렇게 쓰라고 훈계하는 대신 한 판 흐드러진 말 잔치판에서 놀다가 무릎을 치게 만들기도 한다. A4 한 장에 1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유 교사와 달리 이 글 쓰는 데 하루가 걸린 나처럼 글쓰기가 고민이라면, 이 책 한 권이 그 고민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지 않을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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