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배우가 여우주연상... 도대체 어떤 영화였기에
[감독열전⑥] 부조리는 들춰내면서 따뜻함은 잃지 않는 다르덴 형제
어떤 영화감독을 좋아하세요? 한 편 한 편의 영화로는 알 수 없는 영화감독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오마이스타>는 한 시대를 풍미한 국내외 영화감독들을 집중 조명하고자 합니다. [감독열전]은 시민-상근기자가 함께 쓰는 기획입니다. 관심 있는 여러분의 참여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벨기에에서 태어난 다르덴 형제는 1999년과 2005년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을 비롯해 다수의 칸 수상작을 배출한 감독이다. 최근작은 지난 5월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언노운 걸>. 다르덴 형제는 다큐에 필적할 리얼리즘을 영화로 구현하면서 날 것을 고스란히 전하고 관객의 심금을 울려왔다. 날 것의 장면은 영화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현실과 교유함으로써 관객이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은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한다. 한 명이 배우와 카메라맨, 촬영감독과 연출을 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모니터로 장면을 들여다본다고 한다. 본래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영화로 장르를 전환한 다르덴 형제는 1996년 첫 장편으로 <프로메제(약속)>를 내놓는다. 영화는 어디 하소연 할 데 없는 불법체류자를 비추는데, 불법체류자 아미두는 경찰의 단속을 피해 도망치다가 작업장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는다. 집을 짓는 데 아미두를 동원했던 로저는 시멘트로 아미두를 묻어버린다. 심지어 아미두의 아내 아시타를 사창가에 팔아버리려 한다.
▲ 영화 <프로메제> 포스터 ⓒ Les Films du Fleuve
첫 장편부터 다르덴 형제는 인간성이라곤 바닥인 로저의 행위를 통해 인간애가 실종되어 벌어지는 상실감과 비극, 거기서 나오는 먹먹함을 드러내 보인다. 그렇다고 희망을 뭉개지는 않는다. 죄의식을 가졌던 아들 이고르는 아버지 로저를 묶어버리고 불법체류자 아시타와 길을 함께 걷는다. 아시타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다르덴 형제는 아고르가 함께 한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희망을 되살릴 연대 의식을 주문한다. 이는 다르덴 영화가 갖고 있는 일관성이자 지향점이기도 하다.
다르덴 형제의 '한결 같음'
2008년 영화 <로나의 침묵>은 <프로메제>의 연장선에 있다. 배경은 <프로메제>과 유사하지만 내용은 이민 제도의 허점이다. 로나는 시민권을 얻기 위해 생면부지의 클로디와 결혼했으나 이혼할 작정이다. 마약에 빠진 클로디는 로나의 이런 생각과는 무관하게 잠깐이라도 곁에 있는 로나란 사람, 그 자체를 필요로 한다. 클로디는 "로나, 로나, 로나…"라고 반복해서 로나를 부른다.
클로디의 부름은 욕망을 걷어낸 로나를 찾는 과정이자 로나의 공허한 마음을 움직이는 바탕이 된다. 영화는 이름 하나라도 허투루 여기질 않는다. 브로커가 클로디를 마약쟁이라고 하자, 로나는 클로디라며 바로 잡는다. 마침내 로나와 클로디가 발가벗고 서로를 포옹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이것은 성적인 장면이라기보다 클로디와 로나 사이를 가로막던 장벽이 무너지고 인간애가 회복되는 과정이다. 희망은 존재하고, 존재해야 한다는 다르덴 형제의 일관성이 이 영화에도 녹아있다.
다르덴 형제는 다큐의 기법을 차용하면서도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현실을 더 극적이고 적확하게 파악하도록 했다. 이들은 <로나의 침묵>을 제작하면서 실제 위장결혼 사례들을 조사하여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또 초기엔 무명 배우를 영화에 기용했는데, <프로메제>에서 다르덴 형제와 인연을 맺은 올리비에 구르메는 평범한 얼굴에 감춰진 내면 연기로 영화의 사실성을 더했고, 두 번째 장편작 <로제타>에서 로제타역으로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에밀리 드켄은 영화를 찍을 당시 17살로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다.
▲ 1999년작 <로제타> 포스터 ⓒ Les Films du Fleuve
처음으로 이들 형제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긴 1999년 영화 <로제타>는 삶의 팍팍함에 내몰린 이의 각자도생을 그린다. 소녀 로제타는 알코올 중독에 빠진 어머니를 혼자 부양한다. 영화는 생업이라는 거대한 무게 앞에서는 연대가 쉽지 않다는 점을 내보인다. 그럼에도 연대가 없는 삶은 얕은 바람에도 무너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로제타>의 젊음과 빈곤은 2005년 영화 <더 차일드>로 전수된다. 돈 때문에 혈육인 갓난아기를 무심하게 팔아버렸던 브뤼노는 아기를 도로 되찾아 돌아오는 길에서 꼭 끌어안는다.
다르덴 형제는 브뤼노처럼 인물이 인간의 도리를 스스로 깨달아가길 바라는 듯하다. 강압이 아닌 자율로 깨달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은 하나같이 '인간애'와 '연대'라는 유사한 플롯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루하지가 않다. 다르덴의 주제 의식이 과거나 지금이나 유효하기 때문이다. 다르덴 형제는 시종일관 영화의 배경을 고향 '벨기에'로 삼는데, 이를 통해 복지 국가로 알려진 벨기에에도 빈곤에 몸부림치는 이들이 많다는 걸 보여준다.
▲ <언노운걸> 장면. ⓒ 오드
인간애가 무엇인지 보여주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엔 '아이'가 자주 등장한다. 2002년 영화 <아들>과 2011년 영화 <자전거 탄 소년>에선 범죄를 저지른 아이 곁을 머무르는 성인을 비춘다. 이들이 곁에 있기로 한 배경이나 이유는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이상적인 면모일 수 있겠지만 응당 그리해야 한다는 다르덴 형제의 역설로 읽힌다. 관습화된 성인과 달리, 아이는 후천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해나가기 마련일 것이다. 극 중 아이들은 곁에 머무르던 사람에 맞춰 인격이 변화하는 모습을 내보인다.
일각에선 다르덴 형제를 두고 그저 주제만 조금씩 변주하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자전거 탄 소년>을 기점으로 2014년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선 배경색이 전작들처럼 황량하지 않고 총천연색이다. <언노운 걸>에선 전작과 달리 주인공의 직업이 의사로, 이전 주인공이 목수나 실직자였던 것에 비하면 먹고 살만한 직업을 가진다. 다르덴 형제는 직업의 형식을 깨고, 의사의 시선으로 그것도 진찰로 진실에 한걸음 다가가려고 한다.
▲ <자전거 탄 소년> 장면. ⓒ 티캐스트
다르덴 형제가 비추는 시선은 권위적이지 않다. 철저히 우리의 시선에서 움직인다. 멀리서 내려다보는 식의 숏보다는 인물에 숏을 맞춰 장면이 움직인다. 또 여러 대의 카메라가 여러 곳을 비추는 게 아니라 한 대로, 핸드헬드 기법으로 인물을 조망한다. 장대하고 다채로운 풍경에 우위를 두고 사람을 놓치는 방식은 택하지 않는다. 장면 하나하나에도 사람을 대하는 다르덴 형제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다르덴 형제는 7편의 장편을 통해 사람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을 드러냈다. 이름 하나라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장면 하나에도 사람에 온전히 집중하며, 사람을 속박할 수 있는 권위는 아예 내려놓았다. 부조리에 천착하면서 비관주의에 빠져들지도 않는다. 내용의 찜찜함을 덜어낼 정도로 희망의 여운을 제공한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볼 때면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따뜻함을 느낀다. 마음을 지친 이들의 힐링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각박해지는 세상,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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