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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는 둔촌주공아파트, 길냥이도 같이 갑니다

둔촌주공아파트 길고양이 이주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이유

등록|2017.07.04 20:59 수정|2017.07.05 12:02

▲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길고양이 ⓒ 박은지


지난 6월 22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길고양이 생태적 이주를 위한 사전 연구 모임'이 열렸다.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에 따라 동네에 사는 길고양이의 안전한 이주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모임이다. 동물보호단체 '강동냥이 행복조합'과 동물보호단체 '케어', 강동구청 동물복지팀, 서울시 동물보호과 등이 모여 뜻을 함께했다.

둔촌주공아파트의 독특한 시도

가끔 산불이 났다는 소식이 들으면 우선 인명사고가 없는지 먼저 확인했고, 다행히 인명사고가 없다고 해도 오래된 산림이 불타는 것을 아까워했다. 그런데 언젠가 산림뿐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던 수많은 야생동물이 죽거나 터전을 잃었다는 걸 알게 됐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제야 산이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어떤 생명에게 삶 자체였다는 걸 깨달았다.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의 이주 사례도 마찬가지다. 둔촌주공아파트는 국내 최대의 재건축 단지로, 7월 말부터 향후 6개월간 길고양이 이주를 진행할 계획이다. 강동구 측은 철거 및 재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둔촌주공아파트는 사람뿐 아니라 길고양이의 이주에 대해서도 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단지 내에 사는 수십 마리의 길고양이들도 안전한 이주를 통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얼마 전 '길고양이 생태적 이주를 위한 사전 연구 모임'을 통해 여러 단체와 지자체 등이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이주 준비를 시작했고, 향후 6개월 동안 꾸준히 길고양이 이주를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찾아갈 계획이란다.

길고양이 이주에는 지자체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실제로 길고양이를 돌보고 지켜보는 캣맘들과 민간단체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둔촌주공아파트에서도 캣맘의 도움을 받아 고양이 지도를 만들고 '강동냥이 행복조합'을 중심으로 인근의 적절한 지역을 알아본 뒤 이주를 진행할 계획이다. 강동구청에서도 유기 동물 발생 방지 캠페인 등 행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길고양이 이주가 필요한 이유

실제로 지금까지 여러 재개발 단지에서 지내던 길고양이들은 건물 철거 시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건물 안에 숨어 있다가 그대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공사를 진행하는 이들도 안타까워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한두 명의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하루 이틀 만에 손 쓸 방법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은 기존에 살던 단지가 철거되면 먹을 것을 찾아 길을 건너거나 다른 동네로 넘어오다가 로드킬을 당하기도 하고, 영역 다툼에서 밀려나 다치고 죽기도 한다.

아직 초기 기획 단계이긴 하지만, 둔촌주공아파트에서 길고양이 이주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이어질 재건축 사업에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길고양이에 대한 생태 보호는 지역주민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길고양이 관리가 잘 이루어질수록 발정 시의 울음소리나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등의 관련 민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는 도시에 쥐를 없애는 역할도 한다.

강동구는 수년 전부터 길고양이 TNR(길 짐승을 포획해 중성화한 다음 원래 있던 곳에 방사하는 것, 다음백과사전)이나 급식소 설치, 쉼터 조성 등 길고양이에 대해 친화적인 사업을 진행하여 사람과 길고양이의 공존을 이루는 좋은 지자체로 손꼽히고 있다.

관계자는 "동 주민 센터 위주로 급식소를 설치하고 TNR을 진행하다 보니 개체 수 관리가 수월하다. 4년 전에 비해 더욱 안정적으로 TNR을 진행, 관리하고 있다. 다치거나 아픈 고양이도 (강동구청) 성안별관 옥상 쉼터를 통해 보호한다. 길고양이에 대한 여러 관리나 정책이 실제로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 공사 현장의 길고양이 ⓒ 박은지


길고양이도 그들의 삶이 있다

물론 환경 변화에 민감한 영역 동물인 길고양이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주 이후에 적응하는 동안에도 꾸준한 관찰과 관리가 필요하다. 길고양이는 나름대로의 생태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좋은 의도에서라도 사람들이 손길을 뻗칠 때에는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섣불리 냥줍(길고양이를 주워 집에 데려오는 일)을 하면 안 되는 이유, TNR을 하는 데만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그 이후의 관리까지 신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혼자 울고 있는 새끼고양이를 불쌍하다고 데리고 오면 먹이를 구하러 갔던 어미 고양이는 새끼와 생이별을 하게 된다. 어미는 12시간 이상 자리를 비우기도 하므로, 어미가 나타나지 않아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인지 충분히 지켜봐야 한다. TNR을 할 경우에도 원래 살던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방사할 경우 오히려 얼마 살지 못하고 죽게 될 수도 있다. 방사 이후에는 영역에 다시 잘 적응하는지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도시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길고양이도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고 피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 원래 그 땅에서 살아가던 생태계의 일부로 바라봐야 한다. 사람들의 편의를 추구할 때 그곳에 사는 다른 생명들의 생태까지 존중하는 것, 개발에 있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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