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이 '미드' 탓이라고?
[게릴라칼럼] 선정적 접근은 사건 실체 규명에 방해될 뿐
▲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4일 오후 인천시 남구 인천지방검찰청 앞에서 '사랑이를 사랑하는 엄마들의 모임' 회원들이 인천 초등생 유괴·살해사건 피의자인 10대 소녀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17.7.4 ⓒ 연합뉴스
[기사 수정 : 5일 낮 12시 38분]
"저도 (김양을) 사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변호인이 해줄 게 없다."
4일 오후 인천지방법원에서는 형사15부 심리로 인천에서 한 초등학생을 유괴하고 살인한 혐의로 기소된 김양의 재판이 열렸다. 김양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미성년자 약취·유인 후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변호인의 읍소 전략이었을까. 피고석에 앉은 17세 김양은 이러한 변호인의 언행을 손을 들어 제지했다고 한다. 재판장까지도 재판 결과를 예단하지 말라며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열린 재판에서 김양의 변호인은 "성인과 달리 피고인의 경우 만 18세 미만이어서 가장 무거운 형은 징역 20년"이라며 "심신미약이 인정될 것 같지도 않고 징역 20년을 받을 것 같다"며 자괴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변호인은 "(지난 공판준비기일 때 부인한) 피해자를 유인한 부분은 (혐의가) 약하지만 인정한다"고 변호했다. 체포와 구속 당시부터 일관되게 부인했던 '유괴' 혐의를 일부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변호인 측은 피고인인 김양의 사체손괴·유기 및 살인 혐의에 대해 "우발적 범죄"는 물론 "심신 미약" 상태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또 "경찰에 자수한 점"도 양형에 참작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한술 더 떠 검사의 증거조사 중인 검찰에 "현재 여론으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는데 너무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지는 말아달라"는 요구까지 했다고 한다.
이미 지난달 1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비밀 친구와 살인 시나리오' 편이나 복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김양의 변호인 측이 '심신미약' 이나 '미성년범죄', 자수 등을 이유로 감형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심신미약" 주장하는 피고인 측 vs. 거세지는 여론
"인천 8세 여아 살인 사건 엄정한 수사와 합당한 판결을 요청합니다."
이날 인터넷 카페 '사랑이를 사랑하는 엄마들의 모임'(cafe.naver.com/yeonsuisarang) 회원 10여 명은 김양과 공범 박양의 합당한 처벌을 촉구하며 인천지방검찰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인천평화복지연대, 인천여성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함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시민기구를 만들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심신미약'과 '우발적 범죄' 등을 주장하는 피고인 김양과 공범 박양을 향한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달 19일일 피해자인 사랑이(가명) 어머니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탄원 동의 글은 25만 명이 서명했다. 언론과 소셜미디어상에서의 관심도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재판 하루 전날인 3일, 김양이 최근까지 '미드' <한니발> 봤다고 보도한 <동아일보>의 관련 기사('인육 미드' 심취한 IQ 140 소녀... 그 안에 악마가 크고 있었다)가 세간에 이목을 끌었다. 이 기사는 의사인 아버지 영향 아래에서 성적이 높았던 김양은 그림을 곧잘 그렸고, 인체해부학 서적을 토대로 인체해부도를 직접 따라 그리기도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트위터상에서 '캐릭터 커뮤니티'에 심취했던 김양이 인육을 즐겨 먹는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드라마 <한니발>의 시즌 전편을 컴퓨터에 다운받을 정도로 심취했고, 주인공의 대사를 주기적으로 올리는 이른바 '한니발 봇' 계정을 구독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제목과 묘사 탓에 인용보도가 잇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편에선 공범인 박양이 손가락에 집착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손가락에 심취했다는 흔적으로 보이는 사진들을 여럿 올렸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인 3일, 박양의 트위터 계정에 지난달 3일 글이 올라왔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피의자인 공범 박양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문제가 끝나면 앤캐(애인 캐릭터)/관계캐(관계를 맺고 있는 캐릭터) 오너들에게도 사정을 설명할 예정입니다. 오너님들께 사과드리며 관계를 깰 생각은 없으니 알아주세요."
"지금 트윗들은 제 지인이 써주시는 겁니다. 감사해요."
이른바 '캐릭터 커뮤니티'의 관계 유지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글 4건이었다. 이렇게 박양이 지인을 통해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린 것을 두고 박양 측 변호인이 정신분열과 같은 심신미약의 증거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앞서 김양과 박양의 신상이 하나둘 알려지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공분'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짚어볼 문제는 있다.
선정적인 접근은 지양할 때
▲ 지난달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김양과 공범 박양의 모습. ⓒ sbs
영화로도 만들어진 일본의 베스트셀러 <고백>은 이른바 '소년범'에게 자식을 잃은 여성 교사가 예상치 못한 수법으로 그 소년범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은 그 여성 교사의 심리는 물론 10대 청소년들의 이상 심리를 탁월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 일본은 이 '소년범'들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는 한편 양형 기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벌여온 지 오래다.
이번 인천 초등생 사건의 경우도 피의자들이 17세와 19세 고교 자퇴생과 입시 준비생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적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특히나 이들이 소셜미디어, 즉 트위터상의 '캐릭터 커뮤니티'와 같은 '그들만의 활동영역'에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러한 관계를 통해 '사냥' 운운하면서 8세 여아의 납치·살인을 공모했다는 점에서 경악을 더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인천 여아 살인사건 피해자 어머니의 절절한 호소)
흉악범죄를 저지른 성인 피의자들보다 한층 더 '왜'라는 범죄 동기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고 선정적인 보도와 접근이 난무해서는 곤란하다. 김양이 <한니발>을 즐겨봤다는 보도와 같이 자칫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미디어로부터의 노출이 이러한 경악할 만한 범죄를 키웠다거나 주요 원인이라는 단순하고 과장된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영 이후, 김양이나 박양과 같이 '캐릭터 커뮤니티'를 즐기는 사용자들이 즉각 반박에 나선 것도 엇비슷한 맥락일 수 있다. 정황만 놓고 봤을 때, 계획적으로 8세 아이를 유인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시신까지 훼손하고 유기한 김양의 잔혹한 범죄가 미디어의 노출이나 SNS 사용만으로 가능했겠는가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한니발>이란 드라마나 원작인 <양들의 침묵> 시리즈나 소설을 본 전 세계인들이나 수많은 트위터 사용자들이 이러한 보도를 두고 어떤 생각을 갖겠는가. 피의자들이 '고어물 파티', '인육 파티' 등을 언급했다는 것이 큰 특종인 것 마냥 보도하는 행태들은 자제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나 정치하지 못한 '모방범죄' 이론의 제기야말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경악할 만한 이 10대 흉악범죄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방해만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 검찰 측은 김양의 통합심리분석 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검찰 측은 김태경 정신심리학 교수의 말을 빌려 김양의 심신미약과 관련 "가능성이 낮다"며 "정신장애 가능성이 낮고 개인적 견해로는 사이코패스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김양의 경우 현실 검증력이 온전히 유지되고 사고 및 지각장애가 드러나지 않는다"면서 "다중인격 증상은 본인이 필요에 따라 꾸며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심신미약이나 정신병에 의한 범죄라는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재판부의 판단에 달렸다. 하지만, 그와 달리 '소년범' 즉 미성년인 김양이, 그리고 박양이 왜 이런 흉악 범죄를 기어코 저질렀는가 하는 제대로 된 원인과 환경적 요인을 짚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것이야말로 경찰의 엄정한 수사, 그리고 사법부의 합당한 판단과 함께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우리 사회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일지 모른다.
더욱이 같은 상황에 처한 청소년들이 경중은 다를지언정 또 다른 범죄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또 김양이나 박양과 같은 또 다른 청소년들이 직면하고 있을 비정상적인 상황을 함께 고민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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