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떨어진 최순실, 삼성에 입금 독촉했나
[36차 공판] 독일서 도움 준 이상화 전 하나은행 본부장 "최순실 영향력 두려웠다"
▲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최씨는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학·학사 비리 사건과 관련해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씨가 기소된 여러 사건 중 법원의 판단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 연합뉴스
삼성이 '비선실세' 최순실씨 모녀의 편의를 위해 힘쓴 정황이 법정에서 드러났다.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36차 공판에는 이상화 전 KEB 하나은행 본부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독일 법인장 시절 최씨 모녀에게 도움을 준 인연 덕에 승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과정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도 받고 있다.
이 전 본부장은 최씨가 거래내역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나은행 계좌 개설을 삼성에 요구한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최씨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은 없지만, 삼성에서 송금할 당시 예금거래 명세서상 용도란에 '말·차량 대금 지급'이라고 썼기 때문에 삼성이 최씨 모녀 말 값을 치르기 위해 이 계좌를 만들었다고 봤다. 또 "개인적 생각"이라며 삼성의 스포츠사업은 미래전략실 담당이라 이재용 부회장이 최씨 모녀 승마지원에 관여한 것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삼성이 해외 계좌 만들고, 용역대금 미리 입금한 이유는?
삼성이 최순실씨를 적극 도운 정황은 더 있다. 2015년 11월경 최씨는 독일 호텔 매입을 추진했으나 자금이 부족했다. 그는 삼성이 입금한 돈을 담보로 대출받을까 생각했다. 용역대금을 자신의 개인 돈처럼 운용하려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삼성은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질 수 있다며 거절했고, 최씨는 일단 코어스포츠 계좌를 담보로 대출받은 돈과 본인 자금을 합쳐 호텔을 매입했다.
그런데 2015년 11월 1일 삼성전자는 코어스포츠에 2016년 1/4분기 용역대금 명목으로 71만 유로를 입금했다. 최씨는 이 직후 대출금을 갚았다. 이 전 본부장은 "최씨가 돈이 부족해서 삼성한테 미리 요구해 용역대금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과 최씨의 용역 계약 내용은 모르지만 "2015년 11월 1일 들어온 돈은 컨설팅비인데, (최씨가) 자금이 모자라서 들어왔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삼성이 최씨에게 무언가를 요구한 적도 있었다. 이 전 본부장은 "최씨가 '저쪽에서 코어스포츠란 이름이 글로벌적이지 않아 변경하라'고 했다"며 "'저쪽'은 삼성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작명소에서 이름 몇 개를 받아와 최씨 쪽에 전달했는데 "그쪽에서 준 이름"이라며 '비덱'이 최종 후보가 됐고, 이때도 '그쪽=삼성'으로 알아들었다고 했다. 실제로 코어스포츠는 2015년 11월 비덱스포츠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사용 중이다.
이즈음 최씨는 하나은행이 유럽총괄법인 설립을 추진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 전 본부장은 국정농단의혹 특별검사팀 조사 때 "외부에서 개입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서 최씨에게 개입하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최씨가 '자기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고 했다.
그는 법정에서 이 진술을 유지하며 "며칠 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전화가 왔다"고 했다. 이어 "최씨에게 말했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며 "두 사람의 관계가 밀접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비선실세'의 막강한 영향력을 실감해 "두렵다는 느낌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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