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못 먹는 물, 아이들은 먹어야만 하는 물
[라오스 시골학교 지원 프로젝트] 정수시설 없어 식용 부적합한 물 마시는 학생들
▲ 방비엥 시내에서도 특이한 모습의 산들을 볼 수가 있다. ⓒ 남상태
7월 초 오전 9시 30분.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버스를 탔다. 학교 후원 관계로 라오스 방비엥 근교의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작은 학교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라오스의 남쪽은 평야 지대고 북쪽은 산악지역이다. 방비엥은 산악지역이 시작되는 곳으로 라오스의 작은 계림이라 불릴 만큼 경관이 아름답다. 방비엥 주위는 카르스트 지형의 영향을 받은 특이한 모양의 산들과 남송 강이 흘러 집라인이나 암벽타기, 튜빙, 카약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즐기러 사시사철 많은 사람이 찾는다.
비엔티안에서 방비엥까지는 한국일 경우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현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3시간 반이나 걸렸다.
방비엥에 도착했다. 현지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전권기 선생과 통화해 한 여행사 앞에서 만났다. 50대 후반인 전 선생은 라오스에 온 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라오스 국적의 부인과 결혼한 뒤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와 어린 학생들과 같이 생활 중이다.
방비엥은 한국의 TV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에서 소개된 뒤로 배낭을 멘 한국의 청춘 남녀들이 구름처럼 몰려오는 곳이다. 서양 젊은이들도 많이 오지만 요즘에는 한국 젊은이들이 대세다. 액티비티 투어가 많은 이곳에는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여행사를 통해서 중·장년층도 많이 오기 시작해 거리는 온통 한국 사람 물결이다.
▲ 방비엥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계로 한글로 쓴 간판들이 많이 보인다. ⓒ 남상태
길가에는 노래방, 김밥 등 한국어로 된 상점 간판들이 보인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도 있다. 이 동네는 도로의 시작점부터 끝까지가 한눈에 다 보인다. 걸어서 15분 내외의 거리다.
우리가 방문하는 학교의 학생 수는 40명 정도였다. 빈손으로 가기가 섭섭해 동네의 가장 큰 상점에서 학생 수에 맞게 과자와 음료수를 샀다. 한국 마트에 비해 상품들이 다소 어지럽게 진열돼 있었다.
방비엥 시내에서 학교가 있는 마을까지는 6km 정도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더 들어가야 한다. 1t 트럭을 개조한 동네 버스를 빌려서 타고 가는데 상당히 흔들렸다.
낮에는 농사일 돕고 밤에는 외국어 배우는 아이들
▲ 아이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수도. 어린 학생들은 먹지만 방문객인 우리는 먹을 수 없는 식수 ⓒ 남상태
작은 마을에 도착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그리 넓지 않은 부지에 서 있는 학교 건물이 보였다. 15평짜리 교실 하나가 전부였다. 학교라기보다는 창고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듯했다. 독지가가 건물을 지어준 뒤 계속 후원하기로 했었는데, 개인적 사정으로 지원이 끊겨 후속사업이 중단됐다고 한다.
학교 앞 작은 마당 한편에 학생들이 이용하는 수도가 보였다. '먹는 물이냐'고 물었다. 이곳 아이들이 먹는 물이긴 한데, 우리는 먹으면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지역 지하수는 석회 성분이 많아 식용으로는 부적합하지만, 예산 관계로 정수 시설을 설치 못 해 급한 대로 먹다 보니 이곳 사람들은 적응력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가 먹으면 큰일 나는 물을 이곳 어린 아이들은 날마다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있는 셈이다. 오랜 기간 그 물을 먹다 보면 아이들의 건강이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라오스는 7월 초는 방학 기간이지만, 이 마을 학생들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농번기라서 낮에는 부모의 논밭 일을 돕고, 저녁 무렵에는 공부하러 학교에 나왔다. 학습 과목은 한글과 영어.
이곳은 정식 학교가 아닌 한국의 보습학원 정도다.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지만 앞으로 생활하는데 필요한 외국어 학습을 전 선생과 그의 부인과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이곳 초등학교와 연계해서 교육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 어린 학생들이 자기 키만한 빗자루를 가지고 청소를 한다. ⓒ 남상태
▲ 교실안에 모여 앉아 있는 학생들. 과자 배급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 남상태
교실 안을 살펴보니 책상은 대여섯 개와 이동식 칠판이 전부였다. 손님이 왔다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청소를 시켰다. 몇 명이 빗자루를 들고 교실을 청소했다. 학생 중에는 어린 동생을 안고 궁금해서 학교를 찾은 아이도 있었다.
어느 정도 학생들이 모인 뒤 아이들에게 과자와 음료수를 나눠줬다. 한국의 불량식품처럼 보이는 엉성한 포장의 과자봉지를 하나씩 줬다. 너무 부실한 듯해 민망했지만, 과자를 받는 아이들이 두 손을 모아 고마움을 표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코가 시큰해졌다.
교실 밖에서 부러운 눈으로 과자를 바라보던 아이들
▲ 뒤 늦은 과자 배급. 과자를 받으면서도 표정이 밝지 않다. ⓒ 남상태
교실 안 아이들에게 다 나눠주고 보니 밖에 서 있는 여러 아이가 눈에 띄었다. 그 아이들은 왜 교실에 안 들어 오냐고 물으니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교실 밖에서만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급히 동네 상점에 가서 과자와 음료를 더 사 왔다. 시내보다 상당히 비쌌다. 손님이 없는 가게에 갑자기 물건을 사러 가니, 가게 안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어린 여자아이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뒤늦게 교실 밖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 줬다. 받는 아이들의 표정이 생각보다 밝지 않아서 오랫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 이곳아이들은 밑창이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다니면서도 부모에게 신발 사달라는 소리를 못한다. ⓒ 남상태
▲ 15평 짜리학교 건물. 라오스 시골 건물에는 유리가 달린 창문이 없다. 창문을 닫으면 교실 안은 깜깜하다. 학교 건물 뿐만 아니고 사는 집도 마찬가지다. 유리 창문을 단 집은 부자집이다. ⓒ 남상태
이 아이들과 학교를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이들을 열악한 환경에서 완전히 구해 줄 수도 없다. 6.25 전쟁 후 UN과 미군들에게서 구호물자를 받았던 나는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줘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돌아오기 전 학교의 전 선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빔프로젝터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너무 부담이 많이 될 듯해서인지 콕 집어서 요청하진 않았다.
책상도 중요하지만 영상교육 또한 어린 학생들에게 인식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상 도구는 학습교재가 될 뿐만 아니라, 동네의 영화관으로도 쓰일 수 있을 듯해 지원을 심사숙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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