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무서운 여자, 센 언니, 전도연까지... 올해도 후끈한 부천영화제

21회 BIFAN 예매 오픈, 여성영화와 국제영화제 화제작 대거 포진

등록|2017.07.06 14:11 수정|2017.07.06 16:20

▲ 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메인 포스터. ⓒ BIFAN


아시아 최대 장르 영화축제인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아래 BIFAN)가 일반 상영작 예매를 오픈했다. 21회를 맞아 일부 프로그래머 교체 및 정비를 통해 프로그램의 확장성에 주력한 만큼 BIFAN이 준비한 영화 상차림은 여느 때보다 풍성하다는 평가. <10분>의 이용승 감독의 신작 <7호실>과 만화원작의 블록버스터 <은혼>이 각각 개, 폐막작으로 선정돼 34초, 10초 만에 매진되는 기염을 통했다. 일반상영작 예매도 상당수가 매진됐지만 낙담하기엔 이르다. 기대작의 예매 실패에 따른 실망을 채워줄 만한 근사한 장르 영화가 즐비하다. BIFAN이 준비한 다양한 장르 영화의 상찬을 즐기기 전, 고려할만한 키워드를 소개한다.

▲ <파크>의 한 장면. 하시모토 아이, 소메타니 쇼타 주연의 음악영화. 하반기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 BIFAN


일본영화

올해도 역시 '일본영화=BIFAN'의 공식은 유효하다. 폐막작 <은혼>을 비롯해 무려 22편의 일본영화 신작과 고전이 부천을 찾는다. <은하철도의 밤> <아키라> 같은 애니메이션의 고전부터 스플래터 고어의 대가 니시무라 요시히로의 <미트볼 머신: 고도쿠>, 핑크영화 거장 제제 다카히사의 사회 드라마 <랜덤 라이브>, 하시모토 아이 주연의 음악영화 <파크>까지 장르적 면면이 다양하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와 <너의 이름은.>의 타키역 더빙으로 친숙한 카미키 류노스케와 소메타니 쇼타가 출연한 가족과 우정 이야기 <3월의 라이온>, 인간 사냥에 관한 만화 원작의 실사화 <도쿄 구울>, <린다 린다 린다>와 <오버 더 펜스> 등으로 한국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신작 <나의 삼촌> 등 화제작. 이 외에도, 퇴물이 된 전설의 탭댄서의 마지막 열정 <라스트 쇼>, 부재했던 아버지와의 짧은 재회를 그린 <블랭크 13>, 분열된 가족의 기이한 로드무비 <토터스의 여행> 등 내실있는 서사를 갖춘 발견의 드라마 장르도 고루 포진됐다. 이름만으로도 브랜드인 거장 감독이나 스타, 박스오피스를 휩쓴 흥행작에 의존하기 보다는 독립영화와 장르영화의 적절한 분배를 통해 현재 일본영화의 동시대성을 고민하는 영화들의 호흡을 즐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어미>의 한 장면. 배우 윤여정이 강간당한 딸의 복수를 위해 복수에 나서는 엄마로 열연했다. ⓒ BIFAN


여성영화

작년 강남역 살인 사건을 필두로 대한민국을 들끓게 한 여성 혐오(미소지니)와 젠더 감수성을 반영한 영화들을 대거 만날 수 있다.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는 영화들, 여성이 주체적으로 삶과 관계를 호흡하는 영화들, 여성 주인공이 부차적인 역할이 아닌,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영화들을 선보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무서운 여자들: 괴물 혹은 악녀'는 이 같은 고민이 반영된 특별전으로, 희생자와 보호의 대상으로 수동성을 강요받는 여성의 여성성에 관한 무의식적 공포를 반영하고, 이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담은 영화들을 소개한다. 무의식적으로 강요된 수동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남성적 폭력의 통념과 가부장적 사고의 틀이 만들어낸 공포의 허상에 반기를 들고 기꺼이 악녀가 되길 선택한 여성들의 거대한 반기와 통렬한 복수를 다룬 영화들을 다룬 기획으로, 놓치기 아까운 기획이라는 평가.

<데스 프루프>의 전신이자 '센 언니' 영화의 정석으로 불리는 <더 빨리, 푸쉬캣! 죽여! 죽여!>, 집단 따돌림과 종교적 광기가 낳은 소녀의 피의 복수극 <캐리>, 여성 킬러 복수극의 전설 <글로리아>, 남성들을 응징하는 '괴물' 여성의 장르물 <여죄수 사소리>와 <더 워먼>, 여성을 향한 남성이 느끼는 공포의 집합체 <오디션>, 모성신화를 전복해 스스로 살인마가 되는 어머니의 복수극 <어미>와 <시리얼 맘>, 남성을 선택하고 소유하는 여성들만의 신비로운 세계 <이어도>까지.

여성성을 본질로 삼아 가부장적 통념을 흔들고, 여성을 공포의 대상으로 몰아가는 사회에서 악녀 또는 괴물로 질서를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힘찬 선언을 목격하는 영화들의 쾌감을 즐길 흔치 않은 기회. 어느 한 작품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 망라됐다. 페미니즘의 담론을 관객들과 공유할 '메가 토크: 강한 여자, 못된 여자, 무서운 여자'도 특별전을 풍성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부대 행사.

▲ <멋진 하루>의 한 장면. 전도연 특별전 상영작. 전도연과 이윤기 감독의 첫 번째 만남. ⓒ BIFAN


1회 BIFAN에서 상영된 <접속>부터 20년간 멈추지 않고 여전히 전진하는 배우의 초상을 보여준 전도연의 출연작 17편이 상영될 특별전 '전도연에 접속하다'도 이 같은 여성영화의 경향을 뒷받침한다. 남성 배우들과의 협업 속에서도 변치 않는 존재감으로 우뚝 선 전도연의 얼굴만큼이나 주체적인 여성의 욕망을 담은 영화들이 돋보인다.

<해피엔드>의 최보라, <카운트다운>의 차하연, <남과 여>의 상민은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욕망을 마주하는 여성 캐릭터. 데뷔작 <접속>부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 <멋진 하루> 같은 일상적 드라마도 무심한 듯 복잡다단한 여성의 감정에 밀착한다. 붕괴의 드라마 <밀양>, <집으로 가는 길>, <무뢰한> 역시 감정의 파고와 현실에 무릎 꿇지 않는 여성의 길을 제시한다. 이혜영과 함께한 여성 투톱 하드보일드 <피도 눈물도 없이>나 전도연만이 할 수 있는 순정의 순애보 <내 마음의 풍금>을 스크린에서 다시 마주할 기회이기도.

거장과 해외 영화제 초청작

아시아 영화, 강한 수위의 영화가 부담스럽다면,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검증받은 영화들로 눈길을 돌려봐도 좋다. 칸, 베를린, 베니스, 선댄스, 토론토, 로카르노, 트라이베카 영화제 등에서 화제를 모은 영화들도 올해 BIFAN을 찾는다.

▲ <빌로우 허 마우스>의 한 장면. 여성감독이 연출한 섬세한 레즈비언 로맨스로 금지구역 섹션에서 상영된다. ⓒ BIFF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에 관한 오마주 < 78/52 >, '개'의 삶을 선택한 엄마의 이야기 <비치>, 호주산 캠핑 스릴러 <킬링 그라운드>(선댄스영화제), 레즈비언 로맨스 <빌로우 허 마우스>, 시체 부검소에 관한 미스터리 스릴러 <제인 도>(토론토영화제), 태아의 사주로 살육을 저지르는 엄마 이야기 <프리벤지>와 <고양이처럼>, <사미 블러드>(베니스영화제), 여성 액션 <타이거 걸>, 양에 관한 기이한 스릴러 <애니멀즈>, 마오이 족과 뉴질랜드 대중가요에 관한 다큐멘터리 <포이 에: 시대를 넘은 우리 노래 이야기>, 아동성장영화 <로비와 토비의 환상 여행>(베를린영화제), <검은 숲속으로>(로카르노), 채식주의와 육식에 관한 호러로 칸에서 화제가 된 <로우>까지.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확장을 선보이며 올해 세계영화제 트랜드의 중심에 있던 영화들이 대거 상영된다.

<커먼웰스>와 <야수의 날>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이 있는 스페인 장르 영화의 거장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대표작들을 상영하는 특별전도 놓치기 아깝다. 적은 개봉관에서 어렵게 개봉했던 영화들 외에도, TV 영화 <잠 못 들게 하는 영화 1- 아기의 방>과 감독의 첫 단편영화인 <칵테일 살인마>가 상영되며, <칵테일 살인마>는 감독이 보유한 35mm 필름으로 상영할 예정. 독보적인 작품 세계에 대해 감독이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마스터 클래스까지 감독의 팬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영화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관객들에게 최상의 만족이 될 것이다.

▲ 홍기선 감독의 유작 <일급기밀>의 한 장면. 방산비리를 파헤치는 스릴러로 김옥빈과 김상경이 주연을 맡았다. 하반기 개봉 예정 ⓒ BIFAN


지난해 12월 작고한 홍기선 감독의 영화 7편이 상영되는 특별전도 필견의 기획. 한국독립영화의 기수였던 그의 대표작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선택> <이태원 살인사건>과 유작 <일급기밀> 외 전설의 단편 <파랑새>와 <수리세>가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최초 공개된다. 8mm 독립영화를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국내 최초 사례를 목격할 남다른 기회.

▲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국내 포스터. 고마츠 나나 주연의 판타지 멜로. 하반기 국내 개봉 예정. ⓒ 엔케이컨텐츠


국내 개봉 예정작

시간은 없고, 화제작들의 티켓을 구하기 어렵다면 국내에 수입된 상영작을 미리 확인해보자. 7월 <47미터>, 8월 <로우>가 영화제 직후 개봉을 앞두고 있고, 폐막작인 <은혼>을 비롯해, <도쿄 구울>,<나는 변태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파크>, 특별상영작 <아키라> 등의 일본영화들도 하반기 순차적으로 개봉 예정. 영화제가 아니라도 기다린 끝에 만남이 예정된 영화들은 관람을 미루고 다른 상영작들을 발견해도 좋을 것이다.

'영화로 기억되는 영화제'를 표방하고 프로그램 진용 확대와 장르의 외연 확장에 주력한 BIFAN. 발견의 영화제이자 무게와 격식 없이 즐기는 여름날의 장르 영화축제인 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7월 13일부터 23일까지 11일간 부천시청 외 주요상영관에서 개최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