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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증 까!"... 장애인 학교 토론회 아수라장

[현장] 강서지역 공립특수학교 신설 주민토론회, 반대측 반발로 파행

등록|2017.07.07 07:15 수정|2017.07.07 07:15
"지겨워죽겠네"
"꼴값 떨지 말고 알아서 나가"
"좋은 말 할 때 나가"
"어디 눈깔을 그렇게 뜨고 XX이야"

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는 이 말을 듣고도 자리를 박차고 나설 수 없었다. 17년 숙원인 장애인 학교(특수학교) 설립을 위해선 버텨야했다.

지난 6일 오후 7시 30분께 서울 강서구 가양동 탑산초등학교에서 '강서지역 공립특수학교 신설 주민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가 열리기 30분 전부터 장맛비가 쏟아졌지만, 주민 수백여 명이 초등학교 교실 2개 규모인 토론회장에 모여 들었다. 사전에 마련된 120석이 가득 차 의자를 더 가져왔지만 부족했다. 수십 명의 주민들이 서서 토론회를 들어야했다.

강서구에는 특수학교가 단 1곳 있다. 그마저도 정원이 넘쳐 강서지역 장애학생들은 인근 구에 위치한 특수학교로 통학을 해야 한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8월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을 행정예고했다. 다른 곳으로 이전한 서울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2019년 3월 1일까지 '서진학교(가칭)'라는 특수학교를 짓기로 한 것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서울시에 특수학교가 세워지는 건 17년 만의 일이다.

하지만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허준이 태어난 동네이고 ▲대한한의사협회도 인근에 자리하고 ▲보건복지부의 설립타당성 조사에서 이곳이 적합도 1위를 차지했다며 국립한방의료원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강서구 주민 아니면 나가라" 퇴장 요구에 토론회 파행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에서 설전 벌이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특수학교 설립 반대 쪽 주민 지난 6일 열린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특수학교 설립 반대 쪽 주민이 대치하고 있다. ⓒ 신지수


이날 토론회에는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토론자 8명과 찬성하는 토론자 2명,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서울시교육청 인사 등이 참석해 서로의 생각을 나눌 예정이었다. 하지만 토론회는 제대로 시작도 못 한 채 중단됐다. 특수학교 설립 반대 쪽이 설립 찬성 쪽 토론자인 김남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대표가 강서구 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퇴장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주민대표로 나선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반대추진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가 "강서지역 현안이기 때문에 강서지역 토론자만이 자격이 있다고 교육청에 이미 말했다"며 "그런데 강서지역민 아닌 사람이 토론자로 나왔다"고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자 설립반대 쪽 주민들은 "타지역 주민을 색출하고 시작해야한다", "강서구 주민 아니면 나가라", "주민등록증 까라", "신분 확인"을 외쳤다.

조희연 교육감은 "(김남연씨가) 양보를 해서 발언을 안 하기로 했다"며 "그래도 (서로) 만났는데 말씀을 좀 하자"고 달랬지만 반대 쪽은 수긍하지 않았다. 일부 주민은 토론회 무대 앞까지 몰려와 "조희연 사퇴하라"고 외쳤다. 주민 3~4명이 무대 위로 올라 교육감에게 다가서려 해 교육청 직원들이 막아섰다. 한 주민은 의자를 들고 토론회 무대로 난입하다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어 반대 쪽 한 주민이 마이크를 잡고 "교육청과 이야기 할 것도 없다. 돌아가자"라고 외치자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한 시민은 연단 천장쪽에 붙어있던 '강서지역 공립특수학교 신설 주민토론회'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뗐다.

흥분한 일부 주민은 기자들에게도 "공정하게 보도하라", "사진찍지 말라"고 외쳤다.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기자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리치며 "사진 찍지 말라고"라고 소리쳐 휴대폰이 날아갔다.

현장 분위기가 격양되자 조 교육감은 30분 정도 현장을 떠났다 돌아왔다. 긴급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어 토론회장 인근에 경찰과 119구급차 한 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토론회장으로 다시 온 조 교육감은 "9월 5일 다시 토론회를 열겠다"고 밝힌 뒤 현장을 떠났다.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서라면 "때리셔도 돼요"라고 말하는 장애인 부모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에서 울음을 보인 장애인 학부모 이은자씨지난 6일 열린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에서 장애인 학부모 대표로 참석한 이은자씨가 설립 반대쪽의 고성과 욕설 등에 울음을 터뜨렸다. ⓒ 신지수


찬반 주민 사이에 실랑이가 2시간 가량 이어졌다. 김남연씨와 함께 '장애인 학부모대표' 자리에 앉아있던 이은자씨는 내내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반대 쪽 주민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삿대질을 하고 "뻔뻔하다", "나가라", "왜 이렇게 고집이 세냐"고 소리치자 그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주체하지 못 해 옆에 있던 김남연씨에게 안겨 울기도 했다.

이씨는 "흥분한 주민 몇 분이 장애인이 싫다고 하셨을 때 너무 속이 상했다"며 "의연해지지가 않는다"고 고통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아이들이 이 지역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야 하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할 수 없다며 이 말을 남겼다.

"욕을 하시고 때리셔도 돼요. 상관 없어요. 하지만 저희는 포기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심한 모욕을 주셔도 저희는 변하지 않아요. 입장을 바꾸지 않아요. 통과의례라 의연하게 버텨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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