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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한 공론화 결정의 사회적 의미

등록|2017.07.10 15:42 수정|2017.07.10 15:42
지난 6월 27일, 국무조정실장이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을 잠정 중단하고 시민배심원단의 논의를 통한 공론화과정을 거쳐 향후 일정을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대부분의 언론 기사는 안타깝게도 국무회의 결정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밝히기 보다는 일방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다. 탈핵을 주장해 왔던 시민운동진영도 정부의 이런 결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공론화 결정은 단순히 신고리원전 5,6호기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이렇게 하나의 사안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고 그 사업의 영향이 한국 사회 전체에 미칠 때 그것을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 중심의 기존의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선거시기 외에도 국민의 참여를 통한 결정을 시도하는 실질적인 참여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이정표를 세운 역사적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하였지만, 이후 30여 년 동안 형식적 민주주의에 비해 실질적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확보하고 내용을 채우는 데 부족했다. 이와 비슷한 사안으로 참여정부 시절 법원의 판결로 결정된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보면, 그 중요한 논의가 법원 안에서 몇몇 관계자들과 전문가, 시민운동단체간의 공방으로 국한되고 판사의 판단으로 결정되었다. 절차적 측면에서 권위주의적 정권 시절에 비하면 진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정이 법원 밖에서 지금과 같은 공론화과정을 통해 이뤄졌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민주적 의식과 더불어 역량도 성장하고, 결과와 상관없이 다시 민주주의의 강화로 귀결되는 선순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그 상황은 법치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치적 역량도 보여준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오늘 우리의 역량을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겪으면서 광우병, 4대강 사업, 세월호 침몰, 최순실 국정농단, 탄핵, 촛불 광장 등 사회적, 역사적 사건을 겪으면서 절차적 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실질적 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참여와 자치, 자율, 사회 정의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고, 해야만 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이번 문재인 정부이고, 문재인 정부의 이번 결정은 그 맥락에 닿아 있다. 그래서 이번 결정을 이 정부의 공약이행 여부로만 평가하거나 뜻밖의 일로 보는 것은 그 결정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의 공론화 결정에 대해 언론과 원자력 관련 단체는 매몰비용이니 전기요금 인상, 전력 수급 불안정, 지역경제 붕괴 등 주로 경제적 측면의 손해를 내세우고, 다른 한편으로 국민적 합의가 없다, 전문성이 없다는 등의 배심원단 자질과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두고 왜 일부 배심원에게 결정하게 하냐 하면서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결정이라고 자신들의 지적과 모순되게도 사회적 대립을 조장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양측의 주장이 맞설 때 정부 결정의 사회적 의미를 밝히고, 양측 주장의 사실을 취재하면서 의제를 발굴하고 설정하여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언론의 역할이 사라져버렸다. 언론은 현재, 일방의 주장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기사화해서 전하고 있다. 언론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고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데에서 더 나아가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이번 원전건설 중단에 대한 공론화 결정은 원전세력과 탈핵세력 간의 대립이 본질이 아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과 생명체들, 그리고 이웃 나라의 생존과 생명에 관한 문제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법원 판결이나 전문가들의 판단, 경제성, 지역 경제, 비용의 기준만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그간 전문성, 효율성, 성장을 사회적 가치의 최상에 두고 거의 모든 문제들을 소수에 의해 비공개적으로 결정해왔다. 그 결과 국민들은 토론과 논의를 통한 '참여와 자치'라는 실질적 민주주의로부터 배제되어 왔다. 기껏 선거 때 행사하는 한 표로만 누리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왜소하고 앙상한 것이었다.

건국 유사 이래 처음으로 정책을 두고 시민이 직접 참여하여 자신과 후손들의 미래와 생명을 좌우할 결정을 하려고 한다. 모두 어느 한 쪽의 이해만 주장하지 말고, 국민과 한국사회, 나아가 생명과 평화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갔으면 한다. 그 방식은 어쩔 수 없이 토론과 논의, 민주주의 말고는 방법이 없다.

시민의 참여는 앙상한 대의민주주의에 활력과 생기가 돌게 할 것이고, 사회가 민주적이고 정의로울 때 우리의 삶도, 경제도, 문화도, 정치도, 예술도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다. 그래서 공론화 결정은 반갑지만, 3개월의 논의 기간은 아쉽다. 사안이 가진 중요성에 비해 너무 짧다.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하고 양측 주장의 사실 관계를 밝히는 데에도 3개월은 부족하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는 원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한단계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시간에 쫓기지 말고 제대로 된 공론화를 하는데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하자.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신동혁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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