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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링크 하고 헌재 조롱한 KBS 국장, '블랙리스트' 지시

KBS 1라디오에 닥친 광풍, 이제원 국장은 직위해제... KBS "블랙리스트 없다" 반박

등록|2017.07.10 17:16 수정|2017.07.11 09:24

kbs 새노조 '퇴진 고대영' 10일 오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노조)가 KBS 연구관리동에서 ‘KBS 블랙리스트'를 폭로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 신나리


[기사수정: 11일 오전 9시 20분]

'이정렬 전 판사는 쓰레기다. (이 전 판사의 출연은) 심각한 방송사고다.'
'4대강 사업 비판을 방송에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공정성을 해친다.'

KBS 1라디오에 '블랙리스트 광풍'이 불었다. 이제원 라디오프로덕션 1담당(국장급)은 특정 출연진과 소재에 대해 '부적절', '방송사고'라며 출연 취소 등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 논란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정렬 전 창원지법 부장판사(현 법무법인 동안 사무장)를 출연시킨 해당 프로그램 PD는 경위서를 썼다. 환경다큐멘터리전문 KBS PD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4대강 사업이 일부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지적을 한 이후, KBS 1라디오 PD들은 '출연자 사전 리스트'를 제출해야 했다.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는 자서전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녹음 당일 출연 취소를 통보받았다(관련기사: 문 대통령에 개혁 당부한 게 KBS 출연금지 사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아래 새노조)는 10일 오후 KBS 연구관리동에서 'KBS 블랙리스트' 폭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황교익 칼럼니스트의 출연정지를 통보한 KBS가 정권이 바뀐 후에도 출연자 검열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새노조가 폭로한 KBS 블랙리스트는 주로 KBS 1라디오 출연진에 해당했다. 1라디오는 지난 2003년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이 취임한 이후 뉴스, 시사, 교양 전문 프로그램으로 운영된 채널이다. 새노조는 "이명박 정부 시절, 1라디오의 시사전문 프로그램이 하나씩 없어지다 고대영 KBS 사장이 취임한 이후 본격적으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일베 링크한 이 국장, 시사프로그램 좌지우지

한 전 부총리의 출연을 막고, 판사 시절 재판부 합의 내용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뒤 퇴직한 이정렬 전 판사의 출연을 문제 삼은 이제원 국장은 고 사장의 임명으로 지난해 11월 이 자리에 올랐다. 그동안 그는 개인 SNS에 '5.18 북한군 침투설' 등 극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의 게시물을 여러 차례 링크해 노조의 반발을 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직후, 헌법재판소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헌재 근조 그림'을 게시하기도 했다.

새노조에 따르면 이 국장은 KBS 1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일일이 간섭했다. 생방송 중인 스튜디오에 와 진행자와 담당 PD에게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의 프로그램 진행자는 "이번 주 촛불집회에 얼마나 모일지 궁금하다"는 발언 때문에 질타를 받았다. '우병우 전 수석의 재산'을 예시로 언급한 진행자는 방송 중 이 국장으로부터 '우 전 수석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문자를 20~30차례 받았다.

'사전 출연자 리스트' 요구도 이때 즈음 나왔다. 특정 인물들의 출연을 직접 솎아낸다는 것이다. 성재호 새노조 위원장은 "이 국장은 시사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사전 출연자 리스트를 요구해 왔다"며 "이른바 불편한 사람을 직접 배제하겠다는 의도였다"고 밝혔다.

지난 5일 한 전 부총리의 라디오 녹음이 당일 취소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 국장은 "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다>는 한 전 부총리의 자서전 내용에 문 대통령을 옹호하는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한 전 부총리의 방송 출연을 막았다.

한 전 총리는 이날 새노조가 공개한 영상 인터뷰에서 "이 국장은 책을 읽지도 않고 문재인 대통령을 옹호하는 책, 자서전이라 판단했다"며 "국장 개인의 돌출적인 행동이 아니라 KBS 문화와 구조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침마당 출연취소' 황교익 "끝까지 KBS 사과 요구할 것"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아침마당 출연 취소 논란'에 대해 "끝까지 KBS의 사과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황교익 칼럼니스트도 KBS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지난해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맛있는 식재료 고르는 요령'을 강의하기로 했지만 출연금지 통보를 받았다.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를 지지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날 새노조가 공개한 영상에서 그는 "(KBS가) 헌법대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영방송으로 운영되길 바란다"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KBS의 사과를 요구할 것"이라 밝혔다.

대선 이후 KBS는 황씨의 출연 금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공영방송위원회를 열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새노조 역시 이 국장의 전횡 뒤에는 그를 임명한 고대영 KBS 사장이 있다고 지적했다. 성재호 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고대영 사장은 KBS 시사 프로그램에서 비판 기능을 없애려고 총력을 기울였고 이 국장은 이를 충실히 이행했다"며 "미필적 고의로 블랙리스트 조장하는 건 고대영 사장"이라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오후 4시께 이제원 1라디오 국장이 직위 해제됐다. 새노조는 "이 국장이 방송문화연구소로 전보 발령이 났다"고 밝혔다.

한편 KBS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했다. 한 전 부총리의 출연 취소는 담당 프로그램 PD와 국장 간 협의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KBS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KBS에는 블랙리스트가 없다"며 "KBS 라디오센터는 담당 국장이 출연자 결정과정에서 주관적인 잣대를 적용했다고 판단해, 한완상 전 부총리에게 정중하게 사과드리고 양해를 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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